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44)화 (144/207)

6. 토마와 렌의 아카데미

그 시각, 토마와 레이안 또한 입학시험을 보고 있었다.

검술학부는 인기가 많은 학과였기에, 시간을 나눠 시험을 치르는 데도 꽤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레이안과 토마 또한 그들 사이에서 시험이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던 그때, 단상에 두 남자가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입학시험을 담당하게 될 감독관 헬리오스라고 합니다.”

자신을 소개한 헬리오스는 레이안 쪽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그와 레이안은 약간의 안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헬리오스가 과거 황실 기사단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연약하고 철없는 황자를, 그가 많이 걱정했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레이안 또한 그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레이안은 그에게 살짝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헬리오스의 뒤를 이어 조금 연륜이 있어 보이는 초록 머리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군. 나는 합격자들의 담당 교사가 될 예정인 테하라고 하네. 여기서 몇 명이나 내 제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동안 잘 부탁하겠네”

그렇게 말을 마친 태하의 시선 또한 두 아이를 향했다.

그는 헬리오스처럼 두 사람과 안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태하가 그들을 바라본 이유는 그들이 황태자나, 공작가의 자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 바리다스와 아킬레스가 아카데미에 다니던 시절, 태하가 그들의 담당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신분을 제외하더라도 바리다스와 아킬레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언제나 눈길이 갔으니 말이다.

그들은 오히려 신분이 족쇄였지.

기사가 되었다면, 그 명성을 드높이 떨쳤을 텐데.

공작과 황제라는 신분에 얽혀 매일같이 서류만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태하는 왜인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안과 토마는 그런 재능을 가졌던 사람의 자제와 동생이니, 태하가 두 사람에게 기대를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두 사람에게서 과거의 바리다스와 아킬레스를 겹쳐보며, 태하는 아주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공자 쪽은 3학년 수석, 페인까지 이겼다고 하니.

오늘 시험은 정말, 기대가 되는군.

아주 잠시, 작게 미소지은 태하는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와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이 치르게 될 시험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마와 레이안의 발치로 나무로 만든 검과 끈이 떨어졌다.

다만 문제가 있었는데.

그 검이 한 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하다는 사실이었다.

검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무 막대에 끈을 감아놓은 것이 전부인 그 목검을 레이안과 토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바닥의 떨어진 리본과 검을 걸고 결투를 한 다음 두 번의 승리를 거두어 세 개를 모으게 된다면 첫 번째 시험은 합격입니다.”

헬리오스의 말에 토마와 레이안은 검을 주워들고 각자 손목과 팔뚝에 리본을 묶었다.

항상 고품질의 목검만 사용해오던 두 사람에게, 이런 조잡한 목검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준비를 마친 그 순간, 이번에는 태하가 입을 열었다.

“모두 준비되었다면 바로 시작하겠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첫 번째 시험의 시작되었다.

“조금 있다가 보자, 레이안.”

“이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도록.”

며칠 전 같이 기사의 역사를 공부하며 읽었던 설화의 한 구절을 토마가 따라 하자 레이안 또한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내 친히 적진의 목을 따오겠네.”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이 된 두 사람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결 신청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귀족 자제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 몇 합 겨루지도 못한 채 두 사람 앞에 무릎 꿇고 말았지만.

그들 덕분에 토마와 레이안은 생각보다 빠르게 리본을 모으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학생들 중 삼분의 일이 탈락했고, 합격자들은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너는 어땠어?”

토마의 질문에, 레이안은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여기 학생들과 차이가 심하긴 하네.”

“나도 그렇게 느꼈어, 시험이 상대평가라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더라.”

그의 말에 무언으로 긍정한 레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금 재미없긴 하다.”

레이안의 말에 토마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그들이 재미없다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두 사람의 대련 상대는 언제나 정식 기사, 그들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들뿐이었고 그들이 두 사람의 실력에 맞추어 상대를 해주었으니 말이다.

항상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만 상대해 오던 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낮아진 수준에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으니 말이다.

“너무 자만하지는 않도록 해야겠어.”

“맞아, 우리보다 뛰어난 학생들도 많을 테니.”

다른 학생들이 듣는다면 기겁하고 아니라고 할 만한 말들이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태하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다들, 충분한 휴식들 취했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한들, 지금 이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학생은 이 장소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학생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답했고 그들의 반응에 태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2차 시험을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네.”

토마와 레이안 또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1차 시험을 여유롭게 합격한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자신감과 자만심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시험장에서 가장 뛰어난 우리가 탈락할 리가.

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그런 생각은 태하가 시험 내용을 설명하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2차 시험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겨뤄, 그의 리본을 뺏는 것입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면.

토마와 레이안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큰일 났다.

저 말대로라면 둘 중 한 명은, 여기서 탈락하게 되는 것이었다.

토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그 또한 레이안과 함께가 아니라면 아카데미 따위, 의미 없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친구에게 욕심을 가지고 검을 겨눌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너무나도 불리한 시험 내용 때문에, 작게 이를 간 토마는 태하를 향해 소리쳤다.

“저는 저의 친우에게 검을 겨눌 수 없습니다!”

토마의 말에 레이안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완강한 두 사람의 표정에 태하는 수염을 쓸어넘겼다.

이런 경우도 과거에 본 기억이…

그렇게 생각하며 아킬레스와 바리다스를 떠올린 태하는 고개를 저었다.

없었다.

그분들은 안 그랬어.

공작 쪽이, 바로 황제 폐하 쪽을 망설임 없이 공격했던 기억이 났다.

무려, 중간 평가였는데 말이다.

공작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지, 폐하께서 한 합 만에 나가떨어졌고.

폐하께서 시험 하나를 F를 받고 말았지.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지게 된 것인지는, 아카데미 최대 의문 중 하나였다.

사실, 같은 방을 사용했다는 간단한 이유 하나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황태자가 다른 학생들처럼 룸메이트를 둔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그 누구도 저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태하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헬리오스를 바라봤다.

그 또한,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이런 시험 하나로 탈락시킬 리 없지 않은가.

아까의 시험은 경우는 실력자를 알아보는 눈과 그를 뒷받침해 줄 실력이 있는지를 테스트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 시험은 완전히 운에 의존해야 하니 말이다.

그냥 탈락이 아니라고 설명해주기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결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때문에, 열심히 시험에 임하는 다른 학생들의 사기를 꺾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학생들이 납득할 정도의 난이도를 지니고 있으며, 두 사람에게도 어려운 시험.

그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시험을 고민하던 헬리오스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아주 조금 사악하게 웃은 그는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두 분께서 함께, 저를 상대로 십 분을 버티신다면 합격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 조건이라면,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못할 것이었다.

헬리오스는 두 사람이, 이 조건을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검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의 대답에 헬리오스는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성장하셨는지 궁금하군요, 태자 저하.

그렇게 두 사람과 헬리오스의 대련이 성사되었다.

십 분.

어떻게 보면 되게 짧은 시간이지만.

적어도 한때, 황실 기사단 소속이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기사와 검으로 부딪혀 버틸 시간이라 생각하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헬리오스는 한 가지 실수를 범했는데.

바로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대련을 해왔던 두 사람은 서로의 버릇과 습관, 실력을 모두 알고 있었고.

가끔씩 정식 기사들을 상대로도 함께 해왔다.

이번 시험에서 처음 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두 사람과 대련을 시작한 헬리오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합이 잘 맞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은, 뛰어난 기사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졌다.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 또한, 느꼈을 것이었다.

헬리오스가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검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헬리오스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태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학생이 선생을 이긴 건 이것으로 두 번째인가.

이런 점은 자기 형을 쏙 빼닮았군.

당연하게도, 처음은 바리다스였다.

“고생했어, 레이안.”

“그동안 연습한 게, 도움은 되네.”

당연히 이길 것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은 두 소년은 고개 숙여 헬리오스에게 인사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모습에 헬리오스 또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더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자라셨군요,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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