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49)화 (149/207)

11. 루비아

그 뒤로, 루비아는 세 아이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식사도 같이하고, 겹치는 수업인 검술은 함께 들었으며 렌과 함께 라라를 산책시켜 주기도 했다.

심지어 친구는 절대 만들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던 렌 또한, 루비아를 정말로 마음에 들어했다.

루비아는 꽤 오랜 기간 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녔기에 어지간한 귀족들보다 훌륭한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등, 렌과의 공통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제외한다 하더라도, 렌은 루비아와 친구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녀의 순수함과 밝음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언제나 자신들의 이득만을 취하려는 귀족들만 봐오던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루비아의 모습에 서서히 스며들게 되었다.

루비아가 세 아이와 어울리기에는 평범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시기하던 귀족들 또한 있었으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꽤나 많은 선행학습을 걸쳐왔던 루비아는, 수학과에 수석 입학자였고 그녀의 가문인 웨일즈 또한 최근 큰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울릴 만하다.

그들에게 루비아를 평가할 자격은 없었으나,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과 어울릴 만해서, 어울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만을 품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한 명을 꼽자면 세 아이에게 거절당한, 외국의 공주 티티아나가 있었다.

크레센트의 속국 중 하나인 아센트의 공주인 그녀는 짙은 금발 머리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미소녀였다.

그런 그녀는 토마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고.

그 마음은 그가 공작가 자제이며, 검술학부의 수석 입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더더욱 커지고 말았다.

토마의 어머니 쪽이 공작과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못한 평민인 것이 조금 걸리긴 했으나, 뭐 어떤가.

공작이 직접 그가 공작가의 일원인 것까지 인정했는데.

이 정도면 뭐, 내가 좋아할 만하지.

내가 이렇게 예쁘고, 이렇게 완벽한 데다가, 공주인데, 설마 공작가의 사생아가 날 거절하겠어?

그것이 티티아나의 생각이었다.

정작 토마 본인은, 그녀에게 관심조차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티티아나는 엄청난 근자감과 함께 세 아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차게 차이고 말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거절해 왔으니까.

루비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자신보다 예쁘지 않은 얼굴, 평범한 가문, 학년에서 가장 작은 키, 모든 것이 자신보다 부족한데도 토마와 아이들은 루비아를 거절하지 않았다.

루비아가 처음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티티아나 또한 식당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가 아이들에게 거절당할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자신과 그녀가 무엇이 다른 것인지, 그들은 루비아를 거절하지 않았고.

심지어 같이 다니니까지 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자존심에 흠집이 난 것은.

그녀와 다른 루비아의 천진함과 순수함은, 티티아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로.

질투심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티티아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질투를 하는 대상과 하게 만드는 대상 모두가, 그녀 자신보다 낮다 생각해왔기에 티티아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루비아가, 자신을 거절한 토마가 너무 미웠다.

그들과 같이 다니는 레이안과 렌 까지도.

하지만 티티아나는 그들을 함부로 건들 수 없었다. 그들 모두 그녀와 대등하거나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그랬기에 그녀의 분노는 모두, 루비아에게로 향했다.

감히, 겨우 백작가의 딸이 주제도 모르고.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티티아나 또한 그녀와 같은 수학과였는데, 어릴 때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당연하게도 수학과에 지원해 입학시험을 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수석일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수석은 루비아가 되었고 그녀는 차석조차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미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한 티티아나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루비아가 없었다면 자신이 수석이고 아이들과 같이 다니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루비아는 티티아나와 같은 학과였기에 아이들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았다.

그 덕에 티티아나는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과 함께 루비아를 은근히 괴롭히기 시작했다.

키가 작아 안 보였다며 그녀를 치고 지나가는가 하면, 아이들보다 신분이 낮은 그녀가,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크게 떠들기도 했고, 부탁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하지만 티티아나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루비아가, 그녀의 생각보다 더 순수하고 순진했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루비아의 모습에 티티아나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괴롭혀도 루비아의 해맑음을 이길 수 없었다.

자신이 자꾸 건드는 것이, 괴롭힘이 아니라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말을 걸며 친근하게 구는 루비아에게, 어느 순간부터 티티아나 또한 빠져들고 말았다.

아이들이 왜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지, 납득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티티아나는 인정하고 말았다.

루비아는 사람을 재며, 필요에 의해 친하게 지내려 하는 자신과는 달랐다.

그녀는 티 없이 맑으며 누구에게나 상냥했고 그랬기에 사랑스러웠다.

이제, 그만하자.

루비아를 괴롭힌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티티아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못된 짓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루비아에게,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사과하면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와 진짜 친구가 되고 싶어.

티티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루비아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그녀는 얼마 돌아다니지 않아, 루비아를 찾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녀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최근 아카데미 안에는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있었고 루비아는 그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곤 했다.

그래, 고양이와 루비아 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루비아와 함께 있는 것은 그녀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큰 남학생들이었다.

“그 덩치로 이렇게 작은 고양이를 괴롭히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그 작은 키로, 저 사람들에게 대들다니. 무섭지도 않은 거야?

루비아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그들은 아무리 봐도, 신분이 높은 고학년이 분명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얼굴도 몇몇 껴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간다 해도, 그들에게서 고양이와 루비아를 데려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루비아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지금이라면 루비아 혼자는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티티아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루비아에게 발걸음을 옮긴 순간, 루비아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고양이를 그 이상 괴롭히면, 선생님을 불러올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드디어 남학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갔다.

짜증이 난 듯, 표정을 구긴 그들은 위협하듯 루비아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게 어딜 봐서 괴롭히는 거야?”

“맞아, 괴롭힌 게 아니라 놀아주고 있는 거라고.”

“신경 쓰지 말고 비켜.”

하지만 그들의 말에도 루비아는 굽히지 않았다.

“고양이, 놓아주세요.”

덜덜 떨면서도 굽히지 않는 모습에, 세 명 중 가장 키가 큰 남학생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 손으로 고양이를 잡은 채, 루비아의 앞에 내밀었다.

잡은 힘이 강한 것인지 고양이가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고 그 모습에 루비아의 표정이 굳어갔다.

“데려가 봐.”

그의 뻔뻔한 태도에 루비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득, 작게 이를 간 그녀는 남학생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라이온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것이 부끄럽네요. 고양이를 괴롭힌 것과 저를 위협한 것 모두 선생님께 전하겠어요.”

더 자극해서 어쩌자는 거야!

그녀의 말에 일그러지는 남학생의 표정을 본 티티아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로 루비아가 맞기라도 하면 어떡해!

티티아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서려는 순간, 그녀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죠?”

그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렌이었다.

차일드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눈동자를 모르는 귀족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렌이 누구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최근 토마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들은 차일드 가의 자제들을 건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별일 아닙니다, 공녀님.”

“맞아요, 고양이를 놀아주고 있었는데. 이 후배님이 갑자기 끼어들더라고요.”

그 상황을 모두 지켜본 티티아나로서는 어이가 없어지는 말이었다.

루비아를 대신해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파 보이는데, 힘이나 풀고 말하시죠.”

렌의 말에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남학생은 깜짝 놀라 손을 폈고 그로 인해 불쌍한 고양이는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렌이 반응할 틈도 없이 고양이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렌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그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루비아가 놀라운 순발력으로 고양이를 받아낸 것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인지 고양이는 멀쩡해 보였고 그 모습에 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양이를 괴롭히던 남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린 렌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일은 그대로, 선생님들께 전하겠습니다.”

루비아가 한 말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렌이라면, 아니, 차일드 가의 자제라면 그 말의 여파가 미칠 차이는 상당히 클 것이었다.

남학생들이 뒤늦게 그녀에게 사죄를 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들은 아마 큰 징계를 받을 것이었다.

“괜찮아요, 루비아? 늦게 와서 미안해요.”

남학생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렌은 루비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에 작게 웃은 루비아는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지었고 사이좋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티티아나는 왜인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솔직하게 다가갔다면 그녀와 이런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그녀에게 솔직하게 다가가지 못한 자신이.

그녀를 괴롭혔던 과거가, 뼈저리게 후회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말을 걸고 사과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함께 있는 렌 때문에 함부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티티아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던 그때, 렌이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할 것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루비아가 혼자 남게 되었고.

렌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루비아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영애?”

티티아나의 부름에 그녀를 돌아본 루비아는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공주님.”

자신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녀를 돕지 못했는데.

그녀는 이런 자신에게도 저렇게 웃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왜인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티티아나는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다.

자신이 그녀를 질투한 것과, 괴롭히려 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애, 저는 사실. 영애를 매우 싫어했어요.”

티티아나는 솔직하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녀의 말을 듣는 내내 루비아는 정말로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그렇게 상처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티티아는 용기를 내어, 이 말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반성하고 있어요. 우리, 진정한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요?”

부드럽게 비추는 노을 아래, 루비아는 티티아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아뇨?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녀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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