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50)화 (150/207)

12. 입학 그 이후

“조심해서 다녀와요, 라스.”

그 말에 작게 미소지은 바리다스는 내 이마에 살짝 입 맞추는 것으로 화답한 뒤 입을 열었다.

“저녁은 아이들이랑 다 같이 먹어요.”

바리다스는 요즘 들어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들어오려 노력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린과 레몬, 자스민 때문이었다.

토마와 렌의 빈자리 때문인지, 세 아이들은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다섯 명이 매일같이 붙어 다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 또한 아이들의 입학 이후, 저택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바리다스도 그런 사실을 느낀 것인지, 집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집에서 처리하려 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대폭 늘렸으니 말이다.

나 또한 아이들을 공허함을 달래주기 위해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 했으나.

토마와 렌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엔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아이들이 괜찮아질 때까지, 내가 더 노력하자.

그렇게 결심하며 아이들에게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나무 아래 앉아있는 자스민의 모습이 보였다.

렌과 함께 떠난, 라라의 장난감을 들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말이다.

아이들 중 가장 걱정이 되는 사람은 바로, 자스민이었다.

레몬에게는 루이가, 그린에게는 리리가 있는 반면 자스민은 렌과 함께 라라를 돌봤으니 둘의 빈자리뿐만 아니라, 라라의 빈자리까지 느껴질 것이었다.

“자스민.”

정원으로 내려온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라라의 장난감을 숨기고 내게 달려왔다. 그녀의 모습은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팔에 힘을 주어 자스민을 안아 들자 그녀는 웃으며 내 목에 팔을 감았다.

“저 안 무거워요?”

“그럼.”

그 상태로 정원을 걷기 시작하자, 자스민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의지했다.

그녀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언니랑 오빠가, 보고 싶지는 않아?”

두 사람이 떠난 이후로 나는 자스민에게 한 번씩, 이 질문을 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대답은 괜찮다는 말뿐이었지만 지금이라면 자스민이 솔직하게 대답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맞은 것인지, 자스민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그녀는 울음을 참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자세를 고친 뒤,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자, 내 어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언니랑 오빠가 보고 싶어요.”

속삭이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였지만, 바로 옆에 있는 내게는 똑똑히 들렸다.

“한, 번도, 이렇게 길게, 흑, 떨어진 적 …없었는데.”

아이구야.

눈물까지 흘릴 줄은 몰랐는데.

나는 자스민을 토닥여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보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뒤, 자스민이 많이 외로워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미안해, 이렇게까지 외로워하는지 몰랐어.”

다정한 목소리로 다독여주자, 자스민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에 왜인지 마음이 아팠다.

“언니랑, 오빠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애처로울 정도로 눈물에 젖은 목소리였다.

자스민에게 아직 이별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인 것 같았다.

그 일이, 누구에게 안 두렵겠냐만은.

“누구나 그래.”

내 말에 자스민은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눈물로 젖어 촉촉해져 있었다.

“되게 슬픈데, 두 사람이 하고 싶은 걸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너무 슬퍼서, 자꾸 눈물이 나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나요?”

나는 이렇게 슬퍼하는 자스민에게 차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이럴 때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말고는 모르는걸.

잠시 망설이던 나는 손을 들어 자스민의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땐,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울어도 돼.”

내 말에 자스민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왜인지 내가 그녀를 울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울어도 괜찮아요?”

“슬픈데 왜 억지로 참으려고 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스민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정원 가득 울려 퍼졌고 나는 그녀가 편히 울 수 있도록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래, 혼자 참느라 고생했어.”

눈물을 닦아주며 말하자 자스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터진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자스민은 한참 동안이나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이제 괜찮아졌어?”

얼마나 지났을까, 자스민이 눈물을 멈추었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자스민은 얼굴을 붉혔다.

“네, 위로해 주셔서 고마워요.”

“외로운 걸, 나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었는데.”

두 사람에게 숨기는 것은 이해해도, 이렇게까지 슬퍼하면서 나한테까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가 그녀에게 의지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스민은 고개를 저었다.

“언니랑 오빠는 나만큼 어릴 때, 이겨냈으니까. 나도 그렇게 이겨내고 싶었어요.”

…아.

두 사람이 아이들의 곁을 떠났을 때의 토마와 렌의 나이가 지금 자스민과 비슷하겠구나.

자스민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두 사람이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있었기 덕분이야.”

그 둘의 경우는 너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 자스민의 마음도 둘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겨내려 할 필요 없어.”

“하지만, 항상 의지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항상 의지만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의지할 사람이 있는데 안 할 필요도 없지.”

나는 손을 뻗어, 붉게 물든 자스민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나는 너희에게 언제나,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 싶어.”

내 말에 자스민은 미소를 지었다가 바로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 떠나실 거에요?”

예전에도 왜인지, 이런 질문을 들은 것 같은데.

누구한테 들었더라.

아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금 오래된 일이라 그런 것인지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어라 대답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안 떠나.”

그렇게 말하며 자스민의 뺨을 쓰다듬자, 그녀는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눈을 감고 내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너희가 정신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아니. 그 뒤에도 너희가 원한다면 계속 곁에 있을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너희의 보호자니까.

너희의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줄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자스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햇살처럼 밝고 맑은 그런 미소였다.

“네!”

소리치듯 대답한 그녀는 내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우울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제 전보다 괜찮아질 것 같아요.”

“다행이네.”

내 말에 자스민은 내 품 안에서 벗어나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니까, 한동안은 곁에 있어 주셔야 해요?”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정말로 사랑스럽게 빛났다.

그 어떤 누구도, 지금 자스민의 모습을 본다면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당연하지.”

그 순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보자, 로나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꽤나 급한 일인 것인지 헉헉거리며 숨을 고른 그녀는 나와 자스민을 번갈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라이온 아카데미에서 손님이 오셨어요.”

엥?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카데미에서 사람이 오는 거지?

토마와 렌이 사고를 쳤을 리도 없고.

이제 두 아이를 무시하는 귀족이 있을 리도 없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별것도 아닌 일로 학교 측에서 사람이 올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자스민과 함께 빠르게 응접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먕!”

응접실의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소리는 절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응접실 안에는 갈색 머리를 한 남자 한 명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듣기라도 한 건가.

귀를 의심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갈색 머리의 남자가 내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부인. 저는 아카데미 소속 우편부 데이든이라 합니다.”

그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혹시라도 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쁜 일로 찾아온 것은 아닌지, 미소 지은 남자는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바구니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공녀님께서 막내 공녀님에게 전해달라 부탁한 것이 있어,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상자를 덮고 있던 흰색의 천을 치웠다.

그러자, 흰 쿠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작고 검은 털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내 예상이 맞은 것인지 작은 털 뭉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먕!”

꼬리에 보라색 리본을 묶은 새끼 고양이가 바구니에서 내려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내게 달려와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먀앙!”

놀아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귀, 귀여워.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나와 자스민, 로나까지 모두 그 고양이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우리가 홀린 듯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내게 다가온 데이든이 이번에는 편지를 내밀었다.

“공녀님께서는 이 편지를 함께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고생했네.”

그에게서 편지를 받아든 나는 망설임 없이 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렌이에요.

갑작스러운 방문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죄송해요.

그 고양이는 아카데미 내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받는 것을 저와 제 친구가 구조한 아이예요.

그런데, 규정상 교육받지 못한 애완동물은 데리고 있을 수 없어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저택으로 보내게 되었어요.

자스민이 많이 외로워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말썽도 안 부리고 착하고 얌전한 아이예요.

그럴 리 없을 테지만, 혹시나 자스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좋은 주인을 찾아 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드린 편지가, 안부도 근황도 아닌 이런 내용이라 죄송해요.

그래도 꼭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아니, 편지에 대체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내가 저런 부탁도 못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나.

그리고 애초에 어려운 부탁도 아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느새, 고양이와 장난을 치고 있는 자스민을 바라봤다.

주인을 찾아 줄 필요는 없어 보이니 이건 부탁이 아니라.

자스민에게 온 선물에 가깝잖아.

가족이 또 늘어났네.

나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환하게 웃는 자스민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온 손님은 새끼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다.

데이든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누군가가 레나와 함께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황실의 상징인 백금발을 흩날리며.

당당하게 들어온 그녀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내게 인사한 뒤 입을 열었다.

“저, 당분간 여기서 지낼래요.”

우리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리리안이었다.

…너는 또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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