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52)화 (152/207)

14. 황녀님은 황실이 싫다.

리리안과의 이야기를 마친 아필레는 쉬고 갈 시간도 없는 것인지 바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리리안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그녀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리리안을 잘 부탁하네.”

리리안에 대한 걱정이 잔뜩 담긴 아필레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요.”

바쁘다고 또 텔레포트로 가지 말고.

제발 조심해서 들어가요, 아필레.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지은 아필레는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는 정말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아필레의 말에 왜인지 간질간질해졌다.

조금 머쓱하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마찬가지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친구 사이에, 이 정도로 뭘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아필레는 내게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와 다름없었으니까.

그런 내 진심이 닿은 것인지, 아필레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접혔다.

우아하게 미소지은 그녀는 고개를 내려 내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 상태로 시선을 위로 올려 나를 바라본 아필레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대가 내 친우여서, 정말로 다행이야.”

그 말을 끝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한 아필레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고.

나는 아직도 아필레의 온기가 남아 있는 손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 아킬레스가 왜 아필레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

저렇게 예쁜데 누가 안 반하고 배겨.

내가 속으로 아필레를 찬양하고 있으니 리리안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언제 울었냐는 듯,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채로.

“언질도 없이, 찾아온 제가 저택에 머무는 것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이 정도로 감사까지야.

저택에 남는 방이야 많았고 리리안이 온다면 아이들 또한 기뻐할 테니, 나 또한 그녀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가 언질도 없이 찾아온 것은 잘못이 맞았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네, 다음부터는 방문하기 이전에 미리 연락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내 말에 리리안의 표정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런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래야, 제가 황녀님이 좋아하시는 디저트를 준비해 둘 수 있으니.”

내 말에 시무룩해졌던 리리안의 두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와 나를 끌어안은 리리안은 내 품 안에 얼굴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저랑 황궁에서 같이 살면 안 돼요? 제가 공작님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오늘따라 이 모녀는 내게 왜 이러는지.

이러면, 나 진짜로 황궁에 빈대 붙어버리는 수가 있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은 순간,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뒤를 돌아보자 언제 온 것인지, 그린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공작부인은 앞으로도 계속 저희와….”

하지만 그린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린을 본 리리안이 달려가 그를 끌어안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넘어졌고.

그린은 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리리안을 바라봤다.

“보고 싶었어.”

그녀의 말에 그린의 귓가가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양팔을 하늘로 올린 채 어떡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리리안을 바라보던 그린이 팔을 아래로 내린 순간.

“리리!!!”

“멍!!”

레몬이 루이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레몬의 등장에 지금까지 내가 본 미소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은 리리안은 그린을 밀어내고 일어나 레몬을 끌어안기 위해 달려갔다.

다시 한번 우당탕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넘어졌고 리리안은 레몬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정말, 정말로, 보고 싶었어.”

그녀의 말에 레몬 또한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나도, 진짜, 진짜, 진짜로, 보고 싶었어. 리리안.”

정말로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미소에 나까지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오가던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미야옹!”

그건 바로 루이를 보고 겁에 질린, 자스민의 고양이가 내는 소리였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루이와는 별개로 자신의 몇 배는 거대한 루이가 많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양이에게 다가간 루이가 뺨을 그루밍하듯 핥아주자, 고양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경계를 풀고 배를 보이기 시작했다.

“먕, 먕먕!”

그리고는 더 핥아달라는 듯 루이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빠르게 친해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스민의 고양이는 개냥이가 분명했다.

어떤 고양이가 저렇게 강아지에게 다가간단 말인가.

세 아이의 시선은 순식간에 귀여운 두 동물에게로 넘어갔다.

자스민은 신이 나 세 사람에게 고양이에 대해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내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전보다 열 살은 더 늙은 것 같은 데이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일 때문에,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만 돌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정말로 지쳐 보이는 데이든의 모습에 나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황후랑 황녀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겠어.

차마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못 한 채 몇 시간째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좋지 못했다.

“고생했네.”

나는 그 말과 함께 레나를 시켜 그에게 몇 개의 금화를 더 건네주었다.

그러자 데이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를 찾고 내가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언제나 불러주십쇼!”

저게, 금융치룐가 뭔가 하는 그건가.

나는 빠르게 저택을 빠져나가는 데이든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형수님, 얘 이름은 뭘로 할까?”

그때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다가온 자스민이 내게 물었고.

잠시 망설이던 나는 입을 열었다.

“민, 네가 직접 지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내 말에 자스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고뇌 끝에 자스민은 입을 열었다.

“초코?”

그리고 그녀의 말에 리리안과 레몬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별로야.”

“민, 이름을 짓는 건 네 자유지만 초코는 너무 흔하지 않을까?”

두 사람의 단호한 반응에 자스민은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는 두 사람과 고양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언니들이 지어줘.”

자스민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두 사람은 루이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각자 고민에 빠졌다.

그러기를 잠시, 리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아지들의 이름이 리리, 라라, 루이니까, 비슷하게 짓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녀의 말에 두 아이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 나를 보며 미소지은 그린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린린은 어때?”

…설마.

과거 아이들이 강아지들의 이름을 지을 때 내 이름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저 린린의 의미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 예린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이다.

두 아이는 그린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고양이의 이름에 만족한 듯 보였으나 리리안은 그러지 않은 듯했다.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리리안 잘 한다!

고양이까지 내 이름을, 심지어 본명을, 따오는 것은 조금 많이 부담스러웠기에 나는 속으로 리리안을 응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잘 생각해 보니 어울리는 것 같아. 나도 린린에 찬성.”

…나는 찬성 못 해.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다른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당분간은 많이 시끄럽겠어.

* * *

안녕, 오빠.

잘 지내고 있나 몰라.

나는 지금 차일드 가에 와서 지내고 있어.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오빠가 없는 황궁은 생각보다 많이 지루하더라.

차일드 가도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하긴 한데, 세 사람이나 빠지니까 한 번씩은 조금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해.

그러니까, 여름 방학 때 집에 갔다가 같이 차일드 가로 가자.

여기서 여름 방학의 반을 보내고, 나머지 반은 집에서 다 함께 보내는 거야.

아, 그리고 렌 언니가 보내준 고양이.

잘 기르고 있다고 전해줘, 이미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린린은 내 마음에도 들거든.

집에 돌아간다면 나도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울까 고민 중이야.

여기까지만 쓸게.

건강 관리 잘하고, 성적 잘 유지해, 친구도 많이 만들고.

렌 언니와, 토마 오빠에게도 안부 전해줘.

참, 혹시나 이웃 나라의 잘생긴 왕자님이 있다면 꼭 친해지길 바라.

난 여전히 왕자님이 좋거든.

잘 지내, 안녕.

리리안 다운 솔직한 편지에, 레이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혼자 남을 동생이 걱정이었는데, 편지를 보아하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일드 가가, 있어서 다행이야.

레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를 넘긴 순간, 토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 더 늦장 부리면 지각하게 될 거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이안은 편지를 내려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답장은 다녀와서 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너도 잘 지내고 있으렴, 리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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