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이들의 기말고사.
왠지 요즘 두 사람에게 말을 거는 영애들이 늘어난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저 사람들에 비해 평범하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편 아닌가?
아니, 왜 그리 나를 아니꼬워하는 거야.
이런 거 귀찮고 짜증난다고.
루비아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석이 된 뒤로 루비아는 저런 시선이 조금은 줄어들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예법 시험을 토마가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루비아가 절대 수석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예법 시험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음에도 루비아의 실력과 노력은 이미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루비아의 상황을 모르는 아이들은 이미 그들에게 줄 관심은 사라진 채, 이번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루비아도 바로 델아트로 가는 거죠?”
시선이 신경 쓰인 루비아가 식사에도 이야기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렌이 루비아를 불렀다.
“네, 바로 갈 것 같아요.”
“그러면 저희랑 같이 가면 되겠네요.”
“그래요, 루비아 같이 가요.”
저도 둘과 같이 가고 싶은데, 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요.
쟤들 시선으로 사람 죽일 수 있었으면, 나 이미 진작에 요단강 건넜다니까!
하지만 아무리 무섭게 노려본다 해도 거절할 루비아가 아니긴 했다.
“저야 좋죠, 고마워요!!”
루비아는 다른 사람들 들으라는 듯,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녀의 수락에 아이들의 근처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훔쳐 듣고 있던 영애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이유는 바로 기차 때문이었다.
차일드 가에서 기차역 건설에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은 대부분의 귀족들이 알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바리다스가 아이들을 위해 구매한 기차 또한 유명해졌는데.
한 칸을 통째로, 그것도 호텔 정도의 비주얼로 직접 리모델링까지 한 그의 노력은 기사까지 날 정도였다.
저런 일들은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안 그래도 유명했는데.
최근 외국에서 방문한 중요한 고위 귀족들이 기차를 타야 한다는 말에 차일드 가에서 흔쾌히 그 기차를 빌려주었고.
그 귀족들 또한 기차가 마음에 든 모양인지 공식적인 자리에서 계속 칭찬을 건넸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이 그 기차 칸을 구매하고 싶다 말했으나 바리다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다른 귀족들 또한 바리다스에게 거금을 주며 기차를 빌려달라 제안했으나, 그것 또한 모두 거절당하고 있었다.
위 상황은 특별한 경우였고 이 기차는 아이들을 위한 기차기 때문에 절대 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말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델아트로 갈 때, 분명 그 기차를 타고 갈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차에 루비아를 태울 것이라 말하니, 질투가 어찌 안 나겠는가.
기차의 존재를 모르는 루비아는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다른 영애들의 질투에 더 큰불을 붙이고 말았다.
“저희 기차 되게 좋아요, 더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을 거예요.”
거기에 이어진 렌의 확인 사살까지.
“와, 고마워요!”
“이 정도로 뭘요.”
루비아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자, 렌 또한 뿌듯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소리를 들은 테이타는 식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토마와 레이안에게 관심이 없는 영애들은 그녀를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들과 렌에게 관심이 있는 영애들은 한층 더 표독스러워진 눈빛으로 루비아를 노려보았다.
그에 비해 이미 그들에게 관심을 끈 루비아는 웃으며 렌이 주는 푸딩을 먹을 뿐이었다.
이번 방학에는 공부 하나도 안 하고 렌이랑 놀거나 푹 쉬다 와야지.
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잠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시작도 안 한 방학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혼자 편지를 부치지 못한 렌은 잠시 우체국으로 향했고 혼자가 된 루비아의 앞에 세 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한 명은 루비아에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영애인 테이타였고.
다른 두 명은 처음 보는 영애들이었다.
아, 왜 또 이러는데!
딱 봐도 자신에게 불만이 있어 보이는 그녀들을 애써 무시하며 루비아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거기 잠깐 서 보시죠, 웨일즈 영애?”
너넨 강도가 멈추라고 해서 멈추냐!
루비아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 척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으나.
상대는 이미 예전에도 루비아를 한 번 따라잡은 적이 있는 테이타였다.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루비아는 그녀에게 붙잡혔고 세 명의 영애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어딜 도망가시는 겁니까.”
그 재능으로 차라리 달리기를 해, 나한테 이러지 말고.
“제가 살던 곳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고.”
루비아가 한 말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영애들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어떻게, 그런 상스럽고 천박한 말을.”
“살던 곳이 어딘진 모르지겠만 천박한 것이 역시 출신이 뻔하군요!”
“역시 당신 같은 사람은 렌님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내가 한 말은 지구 출신이긴 한데.
지금 여기서의 내 출신은 렌과 같기는 해?
루비아가 아이들과 같은 델아트 출신이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테이타는 이어진 그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이 대화에 끼었다는 사실이 들킨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테이타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고 남아 있는 두 영애는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계속해서 루비아를 비난했다.
루비아는 그들이 언제까지 하는지 구경이라도 할 생각으로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언제까지 하려나.
슬슬 지루해진 루비아가 작게 하품을 내뱉은 그 순간.
“이래서 천박한 시골 출신들이 안 된다니까!”
분을 이기지 못한 한 영애가 소리쳤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델아트가 천박한 시골인지는 나도 몰랐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상당히, 화가 나 보이는 토마였다.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는 장소를 무시하는데 화가 나지 않을까.
심지어 토마는 그냥 사는 것 정도가 아니라 델아트의 주인인 바리다스의 동생이었다.
그제서야 루비아가 사는 곳이 델아트 라는 것을 깨달은 두 영애는 가장 먼저 루비아를 찾아가자는 의견을 내민 테이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도망간 뒤였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그들은 토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네, 저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웨일즈 영애가 먼저…!”
“먼저?”
피식, 웃음을 터트린 토마가 되묻자 그들은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아까 식당에서부터 웨일즈 영애를 둘러싼 분위기가 이상해 따라와 본 것이었는데, 이런 소리를 듣고 있었을 줄이야.
이건 나로서도 상당히, 화가 나네.
“…죄송합니다.”
그들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델아트를 천박한 시골이라 말한 영애였다.
그리고 그녀가 사과하게 무섭게, 다른 한 영애 또한 그의 앞에 허리를 숙였다.
“저희가 실언을 한 것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멍청하면 주작도 못 한다더니.
루비아는 변명하는 것도 포기한 채 빠르게 사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영애는 어떻게 하고 싶나?”
그 순간, 토마의 시선이 루비아에게 향했다.
마치 그녀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듯이.
그 사실을 깨닫고 잠시 고민하던 루비아는 입을 열었다.
“운동장을 돌고 반성문을 써오게 하죠.”
상상도 못한 벌에 토마와 영애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곧이어 토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지구의 생활이 더 익숙한 루비아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벌이었으나 토마에게는 귀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한참 동안 웃던 토마는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영애를 바라봤다.
“들었지? 우리 웨일즈 영애는 그대들에게 큰 벌을 내리길 원치 않으니, 그렇게 하도록 해.”
아니, 저 정도면 엄청나게 큰 벌인데.
간식도 한 달 정도 압수하라고 할 걸 그랬나.
루비아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토마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를 원하지, 영애?”
“음… 운동장 서른 바퀴 그리고 반성문 열 장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잔인하지, 엄청 무섭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루비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으나, 토마의 앞에서는 귀여울 따름이었다.
서른 바퀴면 내가 운동 삼아 달릴 정도는 되는군.
토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내 맘이 바뀔지 모르는데.”
`
그의 말에 두 영애는 빠르게 운동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저 정도 벌이면 매우 관대하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바리다스의 귀에 자신들이 델아트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듯 사라지는 두 영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토마는 손을 들었다.
“어떤가요?”
무언가를 원하는 듯한 토마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루비아는 마찬가지로 손을 뻗었다.
“뭘 물어요, 최고였지! 고마워요.”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