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59)화 (159/207)

21. 아카데미의 여름방학.

그로부터 이틀 뒤, 아이들이 탄 기차가 예정보다 일찍 델아트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바리다스 그리고 실비아와 함께 그들을 마중 나가기로 했다.

실비아가 분명, 기차역 앞 민트색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칙칙한 가게들 사이, 확실하게 눈에 띄는 화사한 민트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민트 맛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민트색이 눈에 띄고 예쁘긴 하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화사한 민트 향이 느껴짐과 동시에 민트색 소품들과 함께 꾸며져 있는 옅은 브라운 톤의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정말 예쁘네.

유행에 민감한 실비아가 왜 이 카페를 약속 장소로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인X타 카페 느낌인가.

“어서 오세요!”

점원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나와 바리다스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와, 메뉴판도 민트색.

자리에 앉자마자 보이는 옅은 민트색의 메뉴판에 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심지어 첫 페이지에 그려져 있는 메뉴도 모두 민트였다.

여기 가게 주인은 민트를 정말 좋아하나 보네.

“저는 그냥 아메리카노, 라스는 뭐 마실래요?”

오늘따라 단 것이 끌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음료를 고른 나는 바리다스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내게서 메뉴판을 건네받자마자 첫 페이지로 넘어가 진지하게 음료를 고르던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아메리카노와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에 얼음은 반만 쉐이킹. 자바칩 그리고 생크림을 추가해 주게. 아, 민트는 진하게 부탁하네.”

바리다스의 주문에 점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리고는 걱정이 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희 민트는 정말로 진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없어요.

제가 마실 게 아니거든요.

하긴 어떻게 저 외모에 민트 초코에 토핑을 저렇게 추가해서 마실 거라 생각하겠어.

책 한 권 읽으면서 여유롭게 아메리카노, 아니. 에스프레소나 마실 거라 생각하겠지.

“상관없네.”

그 순간 들려온 바리다스의 대답에 직원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알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쟁반 위에 아메리카노와 생크림이 가득 올라간 프라푸치노를 들고 등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앞에 프라푸치노를, 바리다스의 앞에 아메리카노를 차례로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났고 나는 가만히 나와 바리다스의 앞에 놓인 음료를 바꾸어 주었다.

역시 사람의 인상이 심어주는 이미지가 참 무서워.

나 또한 과거 카페 알바를 했던 경험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손님이 딸기 초코 바나나를 주문하면 의외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생김새로 사람의 입맛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풍기는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나라도 내가 프라푸치노고 바리다스가 아메리카노라고 생각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나는 바리다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으나, 그의 붉은 눈은 평소와는 다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입맛에 맞나 보네.

그가 귀엽다 생각하며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입을 열었다.

“맛있어요?”

내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를 인수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듭니다.”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런데 이 가게까지 인수해 버리면, 안 그래도 많은 라스의 할 일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내가 진지하게 가게 인수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때 바리다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입니다.”

이봐요, 당신이 그러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당장 내일이라도 이 가게를 인수해서 전국에 체인점을 내버릴 것 같아.

“다행이네요.”

농담이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컵을 내려놓은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공작부인!!”

언제나처럼 활기찬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비아… 나도 널 보고 싶긴 했는데, 이런 식의 인사는 곤란해.

나는 놀라 철렁이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실비아의 팔을 풀고 얼굴을 들었다.

그러자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실비아의 모습에 하려 했던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 심장 좀 철렁거리게 할 수도 있지.

이렇게 나를 좋아해 주는데, 어떻게 뭐라고 해.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은 나는 입을 열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실비아.”

“꺄아아! 저두요!!! 공작님도 반가워요!!!”

실비아는 내 목을 다시 한번 끌어안은 뒤,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했다.

바리다스는 실비아의 저 텐션을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연 실비아는, 바로 보이는 민트 초코 음료에 표정을 구기며 딸기 라떼를 주문했다.

실비아 너도 반민초파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문을 마친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기차에 루비아도 함께 태워 주셔서 감사해요!”

“그 정도로 뭘, 루비아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줘서 오히려 고맙지.”

하지만 내 말에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무려 차일드 가의 그 기차인데 루비아가 고마워해야죠.”

엥, 그 기차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실비아가 눈을 크게 뜨며 내게 차일드 가의 기차가 왜 그 기차라 불리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 가격에도 판매를 거부했고, 그 일로 유명해져 모든 귀족들이 차일드 가의 기차에 타보고 싶어 하고 있어요.”

실비아의 설명을 모두 들은 내가 진짜냐는 의미를 담아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물론 유명해질 정도로 화려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긴 했는데. 저 정도 가격이 나왔다고?

나는 다시 한번 바리다스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멍하니 대답하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거면, 그냥 팔아 버릴까요?”

“네? 아뇨?!”

가격에 조금 많이 놀라긴 했으나, 그가 우리를 위해 기차 내부 인테리어와 설계를 직접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건 그냥 아직 내게 남아있는 소시민의 심장이 놀란 것이었다.

바리다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린은 간이 너무 작아요.”

내가 작은 게 아니라, 당신 씀씀이가 너무 큰 거예요.

물론 그만큼 벌긴 하지만 아직 나로서는 받아드리기 힘들다고.

“어쩔 수 없는걸요.”

“저는 예린이 무얼 해도 좋지만, 그래도 자신이 공작부인이라는 것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데, 그때마다 부담스러워할 수는 없잖아요.”

거기까지 말한 바리다스는 씨익 웃으며 내 손을 잡아 그 위에 입을 맞추었다.

“당신 남편이 누군데.”

낯간지러운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기분이 좋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비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또한 민망한 것인지 애써 우리를 모른 척해주고 있었다.

이 상황을 만들어 놓고 혼자서 멀쩡해 보이는 바리다스가 조금, 아주 조금, 얄밉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좋아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놓았고 실비아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부럽네요, 커플.”

“커플이 아니라, 부부입니다. 영애.”

“헉, 그건 더 부러운걸요.”

민망해서 모른 척해준 게 아니라, 일단 배려만 해 준 거였구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를 더 민망하게 만드는 두 사람을 내가 살짝 노려본 순간 종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탄 기차가 도착한 것이었다.

카페 밖으로 나가자,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기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멈추었고 그 안에서 렌, 토마 그리고 루비아가 내려왔다.

“렌, 토마!”

기차에서 내린 두 아이는 빠른 속도로 달려와 내 품 안으로 쏘옥 들어왔다.

못 본 사이에, 그들이 많이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었어요.”

“잘 지내셨습니까, 형수님.”

나를 꼭 끌어안는 그들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들의 이마에 한 번씩 입을 맞춰주었다.

“당연히 보고 싶었지.”

내 말에 두 아이의 표정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아이들을 놓아주자 바로 바리다스에게 달려간 아이들이 그와 인사를 나누고 있던 그때, 실비아와의 인사를 마친 뒤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루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하는 루비아의 모습에 나는 무릎을 굽혀 그녀와의 시선을 맞춰주었다.

“너도 잘 지냈니, 루비아?”

“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맑고 환한 대답이 들려왔고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생각했다.

저 활기참은, 언제 봐도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아.

그게 그녀의 장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가 루비아와의 인사를 마친 그때, 렌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망설임 없이 루비아를 끌어안은 렌은 조금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저도요.”

아니, 렌의 마음을 저렇게까지 열었다고?

두 사람이 친해졌다는 것 정도는 예상했지만, 렌이 누군가를 저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나는 렌의 친구가 된 루비아에게 속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하지만 이별이 아쉬운 것인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두 사람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보다 못한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공작가 갈 때. 루비아 데려갈게요.”

해석하자면, 좀 떨어져 봐. 이제 집에 좀 가자는 말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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