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60)화 (160/207)

22. 아카데미의 여름방학.

“언니, 오빠! 보고 싶었어!”

“오느라 고생 많았어.”

“렌 언니! 토마 오빠아!!”

저택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스민과 그린, 레몬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토마와 렌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잘 지냈니?”

“우리도 보고 싶었어.”

그들의 말에 렌과 자스민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끌어안았고, 민망한 것인지 눈치를 보던 그린 또한 분위기에 휘말려 그들과 함께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식사나 할까?”

내 말에 아이들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입을 모아 네, 라고 대답했고 귀여운 그들의 모습에 나와 바리다스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의 식사는 평소보다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렌과 토마가 델아트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아이들과 함께 떠날 휴가를 계획했고.

식사가 끝난 뒤, 아이들에게 그 계획을 알려줄 것이었다.

우리는 크레센트에서 가장 발전했다 불리는 항구 도시, 라스라에 갈 것이었다.

바다를 통한 무역과 개척의 중심지이자, 아름다운 석양 때문에 외국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기에 라스라는 많은 귀족이 매년 여름에 휴가를 오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사람이 많아, 예약이 힘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나는 라스라에서 가장 큰 호텔인 신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몇 개의 방이 아니라 건물 자체를 말이다.

귀족들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신리 호텔은 예약 자체로도 반년이 넘게 걸리는 데다가, 여름철에는 그 가격이 배로 뛰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신리에는 예약이 모두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쉽게 예약을 할 수가 있었는가.

당연히 첫 번째는 차일드 공작가의 재력 덕분이었고.

그다음으로는 나의 배후에 바리다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더 있었던 덕분이었다.

크레센트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 말이다.

그들은 내가 레이안과 리리안을 이번 휴가에 데려가도 되냐 묻자,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며 뭐 필요한 것이 없냐 물었고.

나는 괜찮다 대답했지만, 그들이 바리다스에게 연락을 취해 호텔 예약을 도와준 모양이었다.

호텔 전체를 예약해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레이안과 리리안의 안전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황태자와 황녀니 말이다.

그들은 델아트를 거치지 않고 수도에서 바로 내려오기로 했으니, 우리는 예약한 날짜에만 맞춰 출발하면 되었다.

분명 즐거운 휴가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미소지은 나는 아이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와 렌이 좋아하는 메뉴들이 가득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 또한 오랜만에 맛보는 집밥에 행복해 보였다.

주방장부터 은퇴한 셰프이기에 흔히 생각하는 집밥과는 조금 다르긴 한 것 같았으나.

이곳이 아이들의 집이니까. 이게 집밥이지,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해 보이는 토마와 렌을 바라봤다.

그렇게 식사가 끝이 났고 디저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렌은 그것들 중 오렌지 초콜릿 타르트를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리웠어.”

렌의 말에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레몬은 기대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녀의 질문에 렌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오렌지 타르트가.”

실로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녀의 말에 레몬의 표정이 시무룩해진 반면 나와 바리다스 그린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눈을 크게 떴다.

렌이, 저런 장난을 치다니.

아이들 중 그린과 함께 무뚝뚝한 편에 속하는 렌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장난이야, 레몬. 당연히 네가 더 그리웠지.”

이어진 렌의 말에 레몬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오묘한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렌이 장난을 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았으나 기분은 좋아 보였다.

“흥, 이미 늦었거든?”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미 그녀의 입꼬리는 씰룩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렌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다시 입을 열려 한 찰나, 조용히 타르트를 먹고 있던 자스민이 입을 열었다.

“언니, 식사 끝났으면 린린 보러 갈래?”

자스민의 말에 렌의 관심은 완전히 그녀에게로 돌아갔고 레몬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언니는 루이 보러 갈 건데?”

아니, 얘들아. 갑자기 왜 그래?

레몬의 반응에 내가 그들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자스민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 같이 놀면 되겠다.”

귀여운 그녀의 말에 레몬의 표정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과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이 민망한 것인지, 헛기침을 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언니인 내가 양보해야지.”

“와아!”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자스민…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도 눈치를 좀 길러야 할 것 같아.

왜인지 그녀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그렇게 세 소녀는 우리에게 인사를 한 뒤, 식당을 빠져나갔고 토마의 시선은 혼자 남아 있는 그린에게 향했다.

“그린.”

“응?”

책을 읽으며 녹차를 마시고 있던 그린은 갑작스러운 토마의 부름에 시선을 떼었다.

그가 자신을 보건 말건, 그린을 아래위로 훑어본 토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린, 너는 아카데미에서 조기 졸업이 목적이라고 했지?”

토마의 말에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라이온 조기 졸업이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이었다.

전 과목에서 수석이나, 차석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한 학기뿐만이 아니라, 다음 학기의 시험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랬기에 조기 졸업은 매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며, 기한을 당긴다 하더라도 한 학기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조차 한 번도 등수에서 밀려나면 안 되기에 매우 힘들었지만 말이다.

애초에, 아카데미의 목적이 사회성과 사교계의 진출까지 염두에 둔 것이기에 조기 졸업의 조건이 까다로웠다.

“전 과목에서 차석 안에 들어야 조기 졸업이 가능한 건 알 테고.”

그린의 표정을 보아하니 왜 토마가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토마가 왜 그린에게 저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린의 표정은 무너져 내렸다.

“필수 과목에 체육이 있는 건 알았으려나?”

…몰랐구나, 그린.

그린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왜, 그딴 걸…”

그린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토마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체육만 아니라, 음악과 춤을 포함한 기본적인 사교계 예법도 있어.”

그린은 뇌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잘했다.

수학과 과학, 역사 인문학에 경제학까지.

서재에 있는 모든 책을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읽었으며 그로 인한 독해력과 암기력까지 뛰어났다.

다만, 신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그린은 예체능에서 처참한 재능을 보였다.

렌의 경우 몸을 쓰는 것을 제외한 음악과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면 그린은 그녀와 반대였다.

체육은 하지 않는 것이지, 유전자 덕에 나름대로 재능을 보였으나.

음악과 미술, 그리고 렌과 같이 춤에서 처참하다 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춤을 봐온 내가 표현하자면 렌은 실이 풀린 목각 인형에 비유할 수 있었고, 그린은 너무 꽉 조여진 목각 인형 같았다.

그래, 그린은 뛰어난 암기력 덕에 본 것을 곧잘 따라할 수는 있었으나 못 췄다.

엄청 못 췄다.

그는 우리에게 가정교사를 붙여달라 말했고, 우리는 그가 원하는 과목의 가정교사들을 붙여 주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뛰어난 두뇌와 노력파인 그린을 칭찬했으나, 단 한 명 그를 포기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춤 선생이었다.

악기 정도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기에 음을 아예 외워버리는 그의 두뇌로 어떻게든 커버가 되었으나.

춤은 그럴 수 없었으니 말이다.

아직도 생생했다. 그에게 이 주일 정도 춤을 가르친 가정교사였던 에리타는 나를 찾아와 울먹이며 말한 것이.

절대 못 가르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자신의 학생이라는 것이 사교계에 알려지면 자신의 학생들이 모두 도망갈 것이라고.

돈을 두 배로 돌려드릴 테니, 제발 해고해 달라고.

그린이 들었다면, 정말 상처받을 만한 말이었지만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갔기에 나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한 뒤,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린도 그 뒤로 춤에는 재능이 없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내게 말했기에 춤에 관해서는 따로 선생님을 붙여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아카데미 필수 과목에 춤이 들어간다니.

그린에게는 정말로 끔찍한 소리일 것이었다.

“연습해야겠지?”

토마의 말에, 그린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토마가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저 정도로 그린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페이스를 찾은 그린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수님, 저 춤과 체육 가정교사를 붙여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 그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마가 끼어들었다.

“체육 쪽은 좀 미뤄주세요. 검술도 과목에 있으니 아카데미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제가 봐 줄게요.”

그의 말에 그린의 표정은 다시 굳어갔다.

하지만 이해가 갔다.

토마의 훈련법은 어지간한 기사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그린 또한 알고 있기에, 머뭇거리고 있던 그는 토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

“사양하지 마.”

“아니, 형.”

“춤도 내가 봐 줄까?”

웃고 있는 토마의 모습을 보며 모습에 나는 생각했다.

토마의 동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서 거절했다간, 춤까지 토마에게 배우게 생긴 그린은 빠르게 말을 정정했다.

“체육으로 충분한 것 같아, 고마워.”

“좋아.”

그렇게 토마에게 지고 만 그린은 터덜터덜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식당에는 나와 바리다스, 토마만이 남게 되었다.

시끄러웠던 식상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그 분위기가 어색해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토마가 나를 불렀다.

“형수님.”

“왜?”

갑작스러운 그의 부름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작게 웃은 토마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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