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바다와 첫사랑의 상하 관계.
“역시 닮은 것 같아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엇이 무엇과 닮았단 말인가.
그런 나를 대신해 먼저 입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리다스였다.
“예린과 닮았다면 나도 꼭 알고 싶은걸.”
그의 말에 토마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외모나 성격이 닮은 건 아닌데, 분위기가 되게 비슷해요.”
아무래도 토마는 나와 닮았다는 누군가가 굉장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말하는 토마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토마의 마음을 이렇게 뺏어가다니 대체 누구일까.
시선을 옮겨 바리다스를 바라보자,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누군지 궁금하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꼭 데려오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말에 토마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웨일즈 가의 둘째 영애를 말하는 거거든요.”
웨일즈 가의 둘째라면, 설마 루비아?
토마의 말에 나와 바리다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선을 교환했다.
루비아가 나와 비슷한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첫인상을 그렇게 망쳤는데 토마가 저런 표정을 짓게 할 수 있는 거지?
그런 첫인상을 심어 주고도 렌과 친해진 것도 모자라 토마의 마음에까지 들다니.
루비아의 매력은 대체 어디까지인 거야?
“그렇구나. 너와도 많이 친해졌나 보네.”
“아뇨, 아직 그렇게 친하지는 않아요.”
미소 짓고 있는 얼굴에 비해 단호한 대답이었다.
아니, 그 와중에 친하지는 않아?
오늘따라 토마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토마의 성격은 이렇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사차원 같이 행동하는 것인지.
루비아에게 옮아버린 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바리다스가 속삭였다.
“웨일즈 영애가, 당신과 같은 세계 사람이라 분위기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 아닐까요?”
어, 그런가?
아니, 잠시만. 근데 당신은 어떻게 알아 그걸?
눈을 크게 뜨고 바리다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성녀님께 들었어요, 당신은 알고 있을 테니 같이 루비아 좀 잘 챙겨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구요.”
아하.
유아가 루비아를 아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기에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이 석연찮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 다시 토마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바리다스의 말대로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되었다.
토마는 예전부터 감이 좋았으니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바리다스의 말에 대답한 나는 작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웃는 걸 보니 웨일즈 영애가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루비아가 착하고 좋은 아이라는 것을 알기에,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토마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시선을 옮겨 반대편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런 거 같아요.”
평소와 다른 어색한 대답이었다.
그 뒤로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던 토마는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식사도 마쳤으니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나는 평소와 조금 달라 보이는 토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춘기라도 온 건가?
토마가 올해로 열네 살이니, 슬슬 사춘기가 올 때기는 했다.
이해할 수 없는 토마의 행동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 애들한테 사춘기가 오기 시작했나 봐요.”
그런 내 말을 들은 바리다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머리를 쓸어넘겼다.
“제가 봤을 땐…”
거기까지 말한 바리다스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어쩌면 사춘기의 일부일 수 있겠네요.”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바리다스는 내게 알려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희도 이제 슬슬 올라가서, 휴가 계획이나 마무리 지을까요?”
아, 맞다!
나는 그제서야 아이들에게 여름 휴가를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다시 모이려면 저녁때는 돼야 할 테니, 몇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된 거, 더 완벽한 계획을 짜 아이들에게 알려주겠다 생각하며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좋아요.”
* * *
“저희 진짜, 바다에 가는 거예요?”
“진짜, 진짜로 가는 거예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라스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며 레몬과 자스민은 입을 열었다.
저 질문만 벌써 몇 번째인지.
기뻐할 아이들을 보기 위해 일정이 정리된 날 바로 여름 휴가를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처음엔 믿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특히 행선지가 라스라, 바다라는 것에 가장 기뻐하는 듯했다.
아이들은 바다에 처음 가는 것이니 기뻐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바로 믿지 못할 줄은 몰랐다.
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니까 다시 묻는 것이겠지.
“그래, 바다로 가는 거야.”
내 말에 두 사람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여기 리액션 맛집이네.
아이들이 기뻐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좋아하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바다에 더 일찍 데려가 주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스민의 모자를 벗겨주고 있을 때 뒤이어 기차에 오른 그린이 입을 열었다.
“애도 아니고, 무슨 바다 가지고 그렇게 기뻐해?”
그의 말에 레몬은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 앉았다.
“응, 우리 애 맞으니까. 조용히 해.”
“맞아!”
둘의 대답에 그린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밖을 내다보며 앉았다.
“우리에서 나는 빼 줘.”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티가 나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그린도 처음 가보는 바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귀여워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린의 머리를 쓰다듬은 순간, 토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린, 휴가까지 와서 운동을 할 수는 없으니까, 당분간은 기초 근력 운동만 하자.”
그의 말에 그린의 안색이 순식간에 나빠졌다.
토마 얘도 가끔 보면 대단한 것 같아.
어떻게 휴가를 와서까지 저렇게 운동을 할 생각을 하지.
그린 또한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으나, 그는 토마에게 반박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응.”
탐탁잖은 듯한 그린의 대답에도 토마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렌, 너도야.”
마지막으로 기차에 오르던 렌 또한 토마에게 잡혔고 그녀 또한 반박할 의지가 없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다시 한번 내가 토마의 동생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힘내라, 얘들아!
내가 속으로 아이들에게 작은 응원을 건넨 그때.
마지막으로 바리다스가 기차에 올라탔다.
“이제 곧 출발하니, 잠시 의자에 앉아있으렴.”
아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하는 모습은 귀여웠다. 바리다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미소를 짓고는 내 앞자리에 앉아 속삭였다.
“태자 저하와 황녀님도 비슷하게 도착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온다는 사실은 아이들을 놀라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기뻐하겠네요.”
그런 내 말에 바리다스 또한 미소지었다.
“네, 그리고 이번 여행이 끝나면 황제께서 아이들을 맡아 주시기로 했어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안과 리리안을 돌봐준 것이 고마워서 그러시는 건가?
다 얌전한 아이들이라 괜찮은데.
원래 이런 경우에는 한 번씩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봐 주는 것이 예의인 건 알고 있었지만, 크게 말썽을 부리는 아이도 없으니 괜찮았다.
아이들이 없으면 조금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도 수도로 가 있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개를 숙인 바리다스가 귓가에 속삭였다.
“저희 둘은 따로, 휴가를 보내기로 했잖아요.”
달콤한 목소리에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깜짝 놀라 붉어진 얼굴로 그에게서 멀어지자 바리다스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죠?”
나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겨우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머지않아 기차가 출발했고 아이들의 설렘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일어나도 될 것 같구나.”
기차가 출발하고 안전하다 판단됐을 즈음 바리다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도착할 때까지, 저희랑 놀아요.”
“네, 지난번처럼 놀아주세요.”
그렇게 바리다스는 아이들에게 끌려갔고 나는 자리에 앉아 그들이 함께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섯 명은 다 함께 모여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그들의 모습에 나까지도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 나흘 정도는 계속 기차에 있어야 하니, 아이들이 가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꽤나 많은 게임들을 준비해 두었다.
“아니, 오빠는 어떻게 이것도 잘하는 거야?”
게임을 한참 이어가던 중 어이가 없다는 듯 레몬이 중얼거렸고 바리다스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말에 시선을 옮겨 게임판을 바라보자, 아직 출발지점에 서 있는 아이들의 말과 혼자 완주를 한 바리다스의 말이 보였다.
주사위 게임이라 봐 줄 수도 없었기에 저런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근데 저건 실력보다는 운으로 하는 게임이잖아.
“운이 좋았단다.”
“세 번 연속으로?”
아니 세 번이나 저렇게 이긴 거면… 진짜 실력인가.
이제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임 하자.”
계속해서 바리다스 혼자 게임을 이기니 조금 짜증이 난 것인지 자스민이 다른 게임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고 계속해서 바리다스가 승리했다.
바리다스는 져주고 싶어 보였으나, 이번에도 운으로 하는 게임이었기에 그럴 수 없어 보였고.
그를 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이제 경외에 가까워졌다.
“…우리 다른 게임 할까?”
그 사실을 느낀 바리다스가 답지 않게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으나.
이미 늦은 듯했다.
이런 승부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토마와 렌, 그린마저도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바리다스는 자신이 져줄 수 있을 만한 게임을 골라 몇 판을 일부러 져주었고 그제서야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다.
게임을 너무 잘해도 힘들겠구나.
황제 앞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는 바리다스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유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맞춰주기 위해 노력 중인 바리다스를 보며 속으로 응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