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바다와 첫사랑의 상하 관계.
호텔 안으로 들어간 직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샹들리에였다.
수백 개의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샹들리에는 그 크기가 삼 미터는 족히 넘는 듯했다.
이렇게 큰 샹들리에는 황실 말고는 본 적 없는데.
확실히 귀족들이 선호할만한 고급 호텔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샹들리에뿐만 아니라, 주위의 가구들과 장식에서도 기품이 느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니, 진짜 비싼 값 하네.
호텔의 인테리어를 둘러보며 작게 감탄사를 내뱉다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히 호텔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내가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하게 미소 지은 그때, 우리 쪽으로 다가온 필이 은 쟁반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고급스러운 모양의 열쇠 여섯 개가 놓여 있었다.
“그럼, 편안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바리다스가 열쇠를 받아들자 허리를 숙여 인사한 그는 자리를 비켜주었고.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우선 짐부터 정리하고 바다에 가자.”
“네!”
아이들도 각자의 방에 어서 가보고 싶은 것인지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바리다스는 건네받은 열쇠를 나이 순서대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열쇠를 받자마자 호수를 확인한 뒤, 자신들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아이들이 귀여워 작게 미소 지었다. 아이들의 뒤를 이어 방으로 가려 하니 처음 보는 얼굴의 종업원이 나와 바리다스에게 다가왔다.
“태자 저하께서, 손님을 네 분 초대했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손님?
우리가 쓰는 층인 사 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은 모두 황실에서 빌린 것이기에, 상관없긴 했으나 그가 초대한 손님이 누구일지는 조금 궁금해졌다.
“알겠어요.”
내 대답에 필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사라졌고, 바리다스가 내 손을 붙잡았다.
“저희도 들어갈까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와 바리다스는 한 방을 사용했다.
같은 방을 쓰는 거야 항상 있던 일이지만 왠지 오늘따라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나와 바리다스의 방은 아이들이 오가기 쉽도록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달칵.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자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와 바리다스의 방은 오 인실의 스위트룸으로, 호텔에서 가장 큰 방이었다.
커다란 거실과 세 개의 침실 그리고 세 개의 화장실과 욕실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대부분 한 가족들이 사용하는 방이었다.
방을 따로 사용한다 해도 함께 있을 장소나 식사할 곳이 필요했기에, 다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거실을 미리 준비해 달라 부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신경을 써 줬을 줄이야.
방 한가운데에는 성인 열 명은 앉아도 될 정도로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었고 구석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보드게임이 있었으며 바닥에는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었다.
게다가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에는 축음기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비싸 보이는 그림들 또한 걸려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실의 한쪽 벽면은 완전히 유리로 되어 있어 아름다운 바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건 정말로, 굉장하네.
작게 감탄사를 내뱉은 나는 바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막 해가 저물기 시작해 노을로 물든 라스라의 바다는 정말로 아름다웠기에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이리 와요, 예린.”
창밖에 정신이 팔려 시간 지나는 줄도 모르고 있던 나는 옆 방에서 들려온 바리다스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향했다.
바리다스가 나를 부른 장소는 흰색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 발코니였다.
가슴까지 오는 흰색의 펜스를 잡고 바다를 내려다보자,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물론 방금까지도 방 안에서 노을을 보고 있었으나, 이렇게 보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정말 예쁘네요.”
홀린 듯 감탄사를 내뱉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 또한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예뻐요.”
조금 먼 곳에서 무리 지어 지나가는 돌고래 떼가 보였다.
전생에서도 본 적 없는 광경에 깜짝 놀란 나는 그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바리다스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깨달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돌고래가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온 바리다스가 고개를 내렸다.
“우와 돌고래다!!!”
깜짝 놀라 바리다스를 빠르게 밀어냈다.
옆 발코니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은 자스민이었다.
다행히도 자스민의 방은 나와 바리다스의 방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그녀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바리다스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는 조금 짜증이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층을 통째로 빌릴 걸 그랬어요.”
저희 이미 건물 하나 빌렸는데요.
작게 한숨을 내쉰 바리다스의 말에 그렇게 생각한 순간, 레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으로 들어가 있어, 자스민.”
레몬, 너도 있었구나.
조용히 말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아쉽게도 나와 바리다스에게까지 들리고 말았다.
이건 정말로 민망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레몬은 우리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내가 마른세수를 하고 있던 그때.
이번에는 그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들어가 있어.”
…그린 너도 있었어?
아니, 바리다스 당신은 알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의미를 담아 그를 바라보자 바리다스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곧 우리를 위해 다 같이 들어가자는 레몬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유일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자스민은 불만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지만, 순순히 두 사람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차례대로 세 번 들려왔다.
아이들이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이런 배려 필요 없어 얘들아.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바리다스가 나를 끌어당겼다.
“역시, 저는 동생들을 참 잘 둔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리다스와 내 입술이 맞닿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나는 다시 한번 그를 밀어내며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얼굴이 붉어진 채, 떨어트린 책을 급하게 줍고 있는 렌이 있었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빠르게 책을 챙긴 렌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나는 렌이 사라진 방향을 허망하게 바라보다, 바리다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두 번씩이나 방해를 받은 바리다스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니 어쩔 수 없지만, 둘이서 가는 여행은 절대 안 봐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입 맞추는 것으로 키스를 끝낸 바리다스는 겉옷을 벗어 내게 덮어준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을 들은 직후 내 얼굴은 아이들에게 들켰을 때 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아마 그는 편하게 바다를 구경하라고 나를 배려해 준 것이겠지만, 더 이상 바다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간 바닷바람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언제 저렇게 가져온 것인지 책상 가득 채워진 서류를 읽고 있는 바리다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방해하지 말고, 리리안과 레이안을 데리러 가야겠다.
나는 그가 이번 여행을 위해 겨우 시간을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이안이랑 리리안의 방이 아래층이던가.
분명 그들이 우리보다 일찍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나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한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 텐데.
우리가 도착했다는 말을 못 들은 건가.
두 사람을 찾아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기던 내가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레이안도 리리안도 아니었다.
왜 삼 층에 있는 것인지, 먼발치에서 토마가 빠른 속도로 복도를 달려오고 있었다.
왠지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토마.”
토마는 그제서야 내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아까의 나만큼이나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슨 일 있니?”
레이안과 리리안을 만난 것 같지는 않은데.
저렇게 달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질문하자, 토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 일 없어요.”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정말로 토마의 상태는 많이 이상해 보였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호흡 또한 불안정했다.
복도를 너무 뛰어다녀서 힘들었다고 하기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고 말이다.
“병원이라도 가 볼래?”
“아뇨, 정말 괜찮아요.”
아까와는 다르게, 정말로 단호한 대답이었다.
토마라면 아프더라도 여행을 망치기 싫다는 이유로 참을 것 같았기에 걱정이 되었다.
“아프면 말해도 괜찮아, 여행은 다음에 와도 되는 거잖아.”
하지만 더 이상 토마에게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내 뒤쪽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자 레이안과 리리안 그리고 루비아가 손을 흔들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레이안의 손님이 루비아였어?
이건 정말 예상도 하지 못했는데.
나한테도 손님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당연히 정치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루비아일 줄이야.
세 아이는 먼저 내게 인사를 한 뒤 마찬가지로 토마에게도 인사를 했다.
“토마!!”
자신을 반갑게 부르는 레이안의 모습에 토마도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말 아픈 건 아니었는지, 어느새 토마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올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그러면 재미없잖아.”
레이안의 말에 토마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 답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루비아와 리리안은 내게 다가왔다.
“렌은 어디 있어요?”
“레몬은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것이, 어서 그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귀여운 두 사람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렌과 레몬의 방 호수를 그녀들에게 알려 주었고.
두 소녀는 언제 친해진 것인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위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