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65)화 (165/207)

27. 바다와 첫사랑의 상하 관계.

“그런데, 웨일즈 영애가 왜 이 호텔에 있는 거야?”

루비아와 리리안이 멀어져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자 토마는 레이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바다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서, 내가 초대했어.”

레이안은 구차하게 설명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깔끔하게 본론만 전달한 그는 이어 들려올 토마의 반응을 기다렸다.

레이안은 눈치가 빨랐다.

황태자라는 그의 직위상, 눈치를 볼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치가 좋아졌다.

상황을 살피고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았으며, 감이 좋은 편이었다.

레이안은 최근 토마와 루비아 사이에 묘한 기운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루비아만 토마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지만 요즘은 토마 또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토마가 저런 질문을 한다는 것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구나.”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에 레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친구는 마음을 자각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루비아 영애 정도면 나쁘지 않은 상대지.

성격도 좋고 신분도 높은 편이며 다른 이들처럼 토마의 배경을 보고 접근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것보다, 이 앞에 연무장이 있더라고. 거기나 갈래?”

근데 뭐, 그건 둘의 일이니 알아서 할 것이고.

레이안은 토마와 대련이나 하고 싶었다.

루비아 영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레이안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방해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운동할 기분은 아닌 것 같아.”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토마는 레이안의 생각보다 루비아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머리를 쓸어넘긴 토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다, 미안. 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

토마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레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저희는 나가 볼게요.”

두 아이는 내게 인사를 한 뒤 멀어져갔고 나는 둘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사춘기가 온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오늘따라 이상한 토마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도 분명 몇 년 전까지 저런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은데, 벌써부터 이해가 가지 않는다니.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요즘 애들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작부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자 환하게 미소 지은 실비아와 웨일즈 부부가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손님이 네 명이라 했었지.

루비아만 초대한 것이 아니라 웨일즈 가를 전부 초대한 거였구나.

“오랜만입니다, 백작 그리고 백작 부인.”

웨일즈 가문과는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 또한 그들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잘 지냈죠.”

휴가에서까지 공적인 일을 가져오고 싶지 않은 것은 똑같은 것인지, 우리는 가벼운 안부 인사만을 나누었다.

실비아는 나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말하며 자리에 머물렀다.

두 사람이 사라지기 무섭게 나를 끌어안은 실비아는 내 품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보고 싶었어요.”

“얼마 전에 봤으면서.”

“그래도요.”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실비아는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래에 카페가 있던데, 거기 가서 얘기나 할래요?”

아니, 카페까지 빌린 거야…?

호텔 전체를 빌리긴 했으나, 안에 있는 다른 가게들까지 운영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원래 이렇게 해주는 건가.

조금 의문이 들었으나, 서서 계속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우리는 함께 카페로 향했다.

붉은색의 원단과 진한 브라운의 가구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카페에는 황실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 여럿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내게 인사를 하기 전 손을 흔들어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고.

그들은 빠르게 나의 의도를 알아들었다.

나와 실비아는 창가에 위치해 있는 테이블에 앉았고 실비아는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음료 전부 무료래요, 지금까지 다닌 호텔은 안 그랬는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깨닫고 말았다.

카페까지 빌린 거구나.

이런 호텔에 위치한 카페나 다른 가게들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만 빌려주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더욱 가격이 비쌌다.

그런데 그런 카페를 운영하게 만들고 음료까지 무료라고?

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그렇구나, 좋다.”

이 호텔 전체를 빌렸다는 사실을 알려봤자, 실비아가 부담스러워할 것이 뻔하기에 나는 능청스럽게 대답한 뒤, 캐러멜 라떼를 주문했다.

“아 맞아, 공작부인 그거 들었어요? 우리 루비아랑 둘째 공자님이 아카데미에서 동시에 수석을 한 거.”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루비아가 저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역시 조금 독특해 보이는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가.

루비아가 수석이라는 건 마치, 매일 놀러 다니길래 성적이 안 좋을 줄 알았던 친구가 알고 보니 전교권인 느낌이었다.

“언니를 닮았나 보네.”

내 말에 실비아는 조금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에이 아니에요. 루비아가 노력한 덕분이죠. 애가 조금 사차원 기질이 다분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그건 맞지.

사실 나도 처음 루비아를 보고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실비아의 말대로 너무 사차원이기도 했고 지구와 다른 분위기에 아카데미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처음 접하는 분야 때문에 학업에서 밀려날까 봐.

유아 또한 그 부분을 많이 걱정했고 말이다.

그런데 걱정과는 다르게 루비아는 두 가지 모두 잘 해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대단하지.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던 렌과 친구가 되어줬으니 말이야.

사실 우리는 루비아의 아카데미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닐까.

솔직히 렌과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단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학업 쪽으로도 이렇게 뛰어날 줄이야.

루비아 아카데미에서 인기 많겠는데.

“루비아는 정말로 착하고 대단한 아이라고 생각해.”

진심이었다.

그 순수함과 맑음 그리고 친화력을, 대단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수 없었다.

“과찬이에요.”

내 칭찬에 실비아는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실비아.

너희 동생은 대단해.

친화력도 좋고 순수하고 착한데다가, 공부까지 잘하잖아.

조금 심하게 사차원이지만.

그 순간이었다.

카페의 입구 쪽에서부터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호텔에서 저렇게 떠들만한 사람은 몇 없었기에 크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예상대로 레몬과 리리안, 루비아와 렌이 서로 짝을 짓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민트초코를 왜 싫어하지?”

“그러게. 민트는 초콜릿의 새로운 변화잖아.”

레몬과 리리안의 대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두 소녀는 원래 자주 저러면서 노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 대화에 렌도 같이 끼어있다는 사실이었다.

“리리안의 말이 맞아, 민트를 왜 싫어하지?”

장난스러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로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렌이 친구와 저런 장난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니…

많이 컸구나 우리 렌.

“민트의 맛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여기 민트초코 프라페 맛있더라. 내가 사줄게, 너희도 먹어봐.”

여기 음료 지금 공짜잖아. 리리안.

리리안의 귀여운 뻔뻔함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황실 측에서 전세를 내준 거니까 사주는 게 맞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이 좋게 수다를 떨며 카페 안으로 들어온 네 아이는 곧이어 우리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우리 쪽으로 달려온 레몬과 리리안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두 분도 민트초코 좋아하시죠?”

나랑 실비아 둘 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뇨, 전 민트 싫어요.”

내 기억대로 실비아는 민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공작부인은…!”

루비아가 기대를 담아, 나를 바라봤지만 아쉽게도 나 또한 실비아와 같은 생각이었고 말이다.

“미안, 나도 별로야.”

내 말에 네 아이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합류한 네 아이는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차례로 주문했다.

당연하게도 리리안과 루비아는 민트초코 프라페를, 렌과 레몬은 각자 녹차라떼와 딸기 스무디를 디저트는 다 함께 치즈 케이크를 선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진짜, 이 맛있는 걸 모르다니.”

리리안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초콜릿이 가득 올라간 민트 크림을 작게 퍼 한입에 넣었다.

처음에는 민트초코였던 주제는 어느새 루비아와 렌이 아카데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나와 실비아는 리리안과 레몬에게 아카데미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두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대련을 마친 것인지 토마와 레이안이 자스민을 데리고 우리를 찾아 카페로 내려왔다.

“형수님!!”

자스민은 나를 부르며 달려왔고 그렇게 그들 또한 자연스럽게 우리와 합류했다.

아무리 전세를 냈다 하더라도 우리가 있는 곳은 카페였기에 당연히 그들 또한 음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조건 민트초코!”

리리안과 루비아가 먹고 있던 프라페를 본 것인지 자스민은 단호하게 소리쳤고.

“나는 민트 별로, 그냥 그린티로.”

민트 선호 한 명과, 불호 한 명.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토마가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했다.

하지만 내 기억상. 분명 토마는 민트초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그가 좋아하는 딸기 음료를 주문할 것이라 예상했다.

“나도 그러지 뭐.”

하지만 그는 내 예상을 무참히 깨고 민트초코 프라페를 주문했다.

그의 말에 루비아는 웃으며 토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역시,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의 손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준비한 음료가 차례대로 나왔고 레이안과 자스민은 빠르게 잔을 비워나갔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 토마의 잔은 비워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늦게 도착했음에도 우리 중 가장 먼저 잔을 비운 레이안이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토마, 더 마실 거 아니면 나랑 나가서 대련이나 하자.”

“그래.”

두 아이는 나와 실비아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아직 반 이상이나 남아있는 토마의 잔을 바라보다, 그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토마가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두 아이를 따라 호텔 밖으로 나간 순간, 레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트도 별로 안 좋아하는 놈이, 어떻게 용케 참았대.”

“…좋아해.”

“다른 걸 좋아하는 거겠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눈 그들은 연무장으로 이동했고 무언가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에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화를 들어보니 토마가 아프진 않은 거 같은데.

대체 뭘 좋아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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