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69)화 (169/207)

31. 바다와 첫사랑의 상하 관계.

아이들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궁금했다.

두 아이를 보며 내가 느낀 그 묘한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리 봐도 둘 사이에 무언가 있는 건 같았는데.

의문은 갈수록 커졌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루비아와 만날 수 없었다.

웨일즈 가족과 우리의 동선이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같은 호텔이기에 실비아는 간간이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루비아는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니, 같은 호텔인데 한 번쯤은 마주쳐야 하는 거 아니야?

어느덧 휴가의 마지막 날이 되었고 나는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처지가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함께 바다로 나왔다.

“마지막 날인데 결국 인어는 못 보나 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게 다가온 자스민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이유는 이틀 전 라스라의 밤바다에서 인어가 목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에는 꽤 많은 사람이 바다에 나가 있었기에 수많은 목격자가 탄생했고 빠르게 퍼져나간 그 소문은 아이들에게도 들려왔다.

아이들 모두 인어를 직접 보고 싶어 해서 우리는 매일 아침부터 바다에 나가게 되었다.

인어공주 동화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어를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존재가 실존한다는데, 그 누가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오크나 오우거, 드래곤은 직접 보고 싶지 않았다.

걔들은 무섭잖아.

“나는 인어가 부르는 노래 들어 보고 싶어! 들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를 가지고 싶어.”

동심이 가득하면서도 그러지 않은 소원이었다.

레몬의 말에 리리안은 언제나처럼 당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인어공주 말고, 인어왕자. 잘생겼을 거 같아.”

리리안 다운 말이었다.

그런데 너희 동심은 다 어디 갔어.

나는 너희를 이렇게 키운 적이 없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 하나 없는 말들 뿐이네요.”

그리고 그린이 제일 심했다.

나는 정말 그린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무조건 이과였을 것이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장난도 잘 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시 딱딱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렌 못지않게 그린 또한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걱정되었다.

“너는 그런 흐름 깨는 말 좀 하지 마.”

그의 말에 표정을 굳힌 리리안이 말했고 그녀의 말에 그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하지만, 저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 이제 알았으면 하지 마.”

리리안은 그린의 뒷말을 무시하며 죄송하다는 사과만 받아들었고. 우리 애지만 그린은 정말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밖으로 볼 때나 그런갑다 하면서 귀엽게 보였지 이렇게 직접 보면 주위 사람의 속이 터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리리안이 있어서 다행인가.

단호한 리리안의 말에 그린은 그녀에게 다시 한번 말했고 그의 말에 리리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친구는 만들어야 할 거 아냐? 그런 식으로 굴어봐. 친구 하나도 안 생긴다?”

리리안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그린은 입을 열었다.

“저는 친구는 한 명이면 충분해요.”

그린의 말에 리리안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친구가 있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린은 손을 들어 리리안을 가리켰다.

그의 행동에 리리안의 표정이 아주 잠시 붉게 변했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맞, 맞지! 내가 너랑 친구 해주는 걸 감사히 여기라고.”

평소와는 다르게 리리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그린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굴어도 친구가 생기긴 하네요.”

오랜만에 보는 그린의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그의 말에 낚였다는 것을 눈치챈 리리안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친구끼리 이 정도 장난은 괜찮죠?”

답지 않게 목소리에서도 장난기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리리안 또한 눈치챈 것인지 얼굴을 식히며 한숨을 내쉰 그녀는 손을 뻗어 그린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짝!

강한 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졌고 어느새 리리안 또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친구니까, 봐준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은 싸우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딱 봐도 다른 성향의 리리안과 그린은 붙어만 있으면 싸우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 진짜로만 안 싸우면 되는 거지.

한 번씩 티격태격하는 것을 제외하면 레몬을 포함한 세 사람은 늘 사이가 좋았으니 말이다.

“어린애도 아니고, 쟤들은 맨날 저러고 논다니까요. 그렇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들려온 레몬의 말에 나는 생각했다.

너희 다 똑같아…

언제나처럼 사이 좋게 놀기 시작한 세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바로 옆에서 자스민과 놀아 주고 있는 토마와 레이안에게 시선을 옮겼다.

“부선장, 전방을 예의주시해라!! 인어가 어디서 나올지 몰라!”

“…예.”

“조종사는 후방을 주시해라, 나는 위를 보고 있겠다! 인어가 나오면 내게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선장님.”

잘 놀아주네.

토마는 자스민이 조금 귀찮아 보였으나 그에 비에 레이안은 자스민과 잘 놀아 주고 있었다.

“그래, 나는 너희를 보좌해 좌우를 살피도록 하겠다!”

황태자와 공작가의 자제를 저렇게 대할 수 있는 건 리리안과 자스민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렌의 경우 저런 놀이를 할 나이가 아니었고 레몬은 레이안과 친한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렇게까지 좋아하는데, 인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서류를 읽고 있는 바리다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현재 황실에 암시장에서 구출해 보호하고 있는 인어가 한 명 있긴 합니다, 기밀이긴 하지만 원하신다면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바리다스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으나, 이건 내 개인적인 욕심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인격이 있는 생물을 구경거리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뇨, 괜찮아요.”

내 대답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먼 제국의 언어를 사용하며 마카롱을 좋아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정말 만나 보고 싶기는 했다.

나는 뭐 강제로 끌고 와서 내게 구경시켜주는 그런 걸 상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구나.

하긴, 아필레와 아킬레스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지.

그런 거라면 만나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얼마나 있겠어.

“인어 분께서 괜찮다고 한다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님께서 인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아마 괜찮다고 하실 겁니다.”

라스 당신은 다 생각이 있군요.

순간적으로 이상한 오해를 한 것이 미안해졌다.

“네, 고마워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미소 지으며 내 이마에 입을 살짝 맞춘 뒤,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가만히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다 깜빡 잠에 들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내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서류를 읽고 있는 바리다스의 옆 모습이었다.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나는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내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챈 바리다스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잘 잤어요?”

다정한 목소리에 왜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네, 고마워요.”

주변을 돌아보자, 어느새 노을이 저물고 있었다.

그렇다면 꽤나 오래 잔 것일 텐데, 어떻게 한 것인지 목이 하나도 뻐근하지 않았다.

로판 남주는 베개 역할도 잘하나…?

이 정도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나 인어 안 봐도 될 것 같아, 내 남편이 판타지인데 뭘 더 원해 여기서.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호텔에서 한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공작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그에게서 편지를 받아든 바리다스는 표정을 굳히더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알겠어요.”

그는 그 말과 함께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고 빠르게 호텔 쪽으로 사라졌다.

바리다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이제 들어가야지.”

아이들은 오늘이 인어를 보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군말 없이 떠날 준비를 했다.

어느덧 우리는 모두 돌아갈 준비를 마쳤고 나는 마지막까지도 인어를 보기 위해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자스민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너무 아쉬워 하지 마.”

“웅… 다음에는 인어님을 볼 수 있겠지?”

귀여운 말에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하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자스민은 바다를 바라보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인어님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어, 나는 이 추억을 잊지 않을 거야.”

어떻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사랑스러워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스민을 끌어안았다.

오늘 밤에라도 인어가 나와 그녀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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