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바다와 신혼의 상하 관계.
“라스, 저기 봐요.”
내가 가리킨 손끝에는 돌고래들이 무리 지어 헤엄을 치고 있었다.
현재 나는 바리다스와 단둘이 얕은 바다에 나와 구경하는 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던 휴가는 모두 끝나 레이안과 리리안을 포함한 아이들 모두가 수도로 올라간 뒤였다.
아필레는 우리에게 아이들을 돌봐주어 고맙다는 의미로 조각배와 머물 수 있는 호텔을 선물로 주었고 우리는 그 덕에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아예 배 자체를 선물로 준 것이기에 부담스럽긴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예쁘네요.”
그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우리가 현재 있는 바다는 신기할 정도로 투명해 바닷속이 한 번에 들여다보였다.
얕다고 생각할 정도로 맑아도 상당히 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육안으로만 보았을 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바다는 아름다웠고 날씨는 좋았으며 단둘이었기에 방해받을 일 또한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무조건 신혼을 즐기겠어.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바다를 구경하고 있는 바리다스를 바라봤다.
그 순간 그의 주변으로 배를 탄 다른 가족과 연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긴 이렇게 예쁜 곳에 사람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지.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우리가 있던 바다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말았다.
사람이 몰린 것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 바다가 고급 호텔 소유였기에 당연하게도 모인 사람 중 대부분이 귀족이었기에 나와 바리다스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그들 중 높은 신분의 몇몇 귀족들은 우리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그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몰려오는 사람만큼 인사의 수도 늘기 시작했고 주위의 시선과 관심을 감당하기 힘들어진 나는 입을 열었다.
“조금 쉴까요?”
바리다스 또한 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노를 저었다.
“그러죠.”
결국 우리는 근처에 배를 정박한 뒤 호텔로 돌아왔고 나는 바리다스가 내려주는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왜 연예인들이 비밀 연애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런 관심에는 조금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많이 힘들어요?”
걱정스러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금 많이 부담스러운 것이지 힘든 것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눈에 안 띄는 방법이 없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번처럼 마법을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니야?
바리다스와 예전 헤리피아 축제를 갔던 그때처럼.
“라스, 오랜만에 그 데이트나 할까요?”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바리다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까요?”
“네!”
내 대답에 작게 웃은 바리다스가 손을 내밀었고 그의 반지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그가 손을 내렸을 땐 이미 반짝이던 은발의 머리가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근데 잘 생각해 보니까 나도 마정석 반지 있잖아.
전에 바리다스가 새로 주었던 반지 말이야.
이어 바리다스는 자신의 머리를 염색하기 위해 손을 든 그 순간 나는 발꿈치를 들어 그의 손을 붙잡았다.
“라스는 제가 해줄게요.”
그런 내 말에 바리다스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내게 키를 맞춰 주었다.
마법을 쓰는 건 오랜만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바리다스의 머리카락이 다른 색으로 바뀌는 것을 소원했다.
일단 무난한 색은 갈색이긴 한데.
푸른 머리도 잘 어울릴 것 같고 토마와 같은 붉은 머리도 잘 어울릴 것 같아. 아, 금발도 예쁠 것 같은데. 나와 같은 은발은 어떨까?
바리다스의 머리색을 다양하게 생각해보았다. 상상 속에서의 그는 어떤 머리색이든 잘 어울렸다.
“…예린, 이거 맞아요?”
바리다스가 입을 열고서야 눈을 뜨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바리다스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었는데 그의 머리 색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백금색이었었다.
아니 진짜, 잠깐 생각한 건데 이렇게 바뀐다고?
보통 사람들이 쉽게 소화하기 힘든 머리색이었지만 그에게는 잘 어울렸다.
문제는 이 색이 원래 그의 머리색이던 검정보다 눈에 더 띈다는 것이었다.
백금발은 황족만 가질 수 있는 색이니 말이다.
잘못 사용했다가 황실 사칭죄가 될 수도 있는 색이었기에 당황한 나는 다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니, 아니에요. 잠시만요.”
내가 당황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장난스럽게 미소 지은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예린이 원한다면 이 색으로 살아 볼까요?”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말려야 한다는 사실을.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 마음대로 색이 바뀌지 않았고.
세 번의 실패 끝에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는 손을 뻗어 스스로 색을 바꾸었다.
지난번과 같은 갈색 머리에 푸른색의 눈이 된 바리다스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할까요?”
하지만 그는 내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색을 바꾸었다.
아까와 같은 백금발로 말이다.
“아니면, 이렇게?”
“…….”
내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노려보자 바리다스의 머리 색은 다시 갈색으로 돌아왔다.
“알겠어요, 안 놀릴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머리카락을 잡고 그 위에 살짝 입을 맞춘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행동에 나는 정말로 삐진 척 그의 손을 잡지 않았고.
그런 내 행동에 잠시 고민하던 바리다스는 입을 열었다.
“라스라의 야시장에서 파는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빨리 가죠.”
눈치 빠른 그는 이미 내 행동이 연기인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야시장이면 차라리 아예 평민인 척 옷까지 갈아입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야시장도 갈 거면, 저희 옷까지 갈아입을래요?”
오랜만에 거리를 편하게 돌아다닐 생각에 눈을 반짝이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게 바리다스는 연미복을 벗고 셔츠와 바지를 입었고 나는 아무런 문양도 없는 흰색의 원피스를 입었다.
라스가 조금 잘생긴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누가 봐도 평범한 시민이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묶는 것으로 준비를 마친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가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삐져나온 내 잔머리를 뒤로 넘겨준 뒤 손을 잡았다.
“네.”
그렇게 밖으로 나가자 호텔 직원들 또한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갔고.
아까 우리에게 인사를 한 귀족들 또한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갔다.
“아무도 못 알아보네요.”
그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리자 바리다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편하게 다닐 수 있겠어요.”
그렇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호텔 밖으로 나간 우리는 근처에서 대기하던 마차를 잡아 탑승했다.
이런 식으로 택시처럼 탈 수도 있구나.
항상 차일드 가의 마차를 타고 다녀 이런 식으로 마차에 탑승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조금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장으로 가주세요.”
“네~ 라스라 시장,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붙임성 좋아 보이는 마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분은 신혼부부이신가요?”
우리가 평민이라 생각한 것인지 마부는 편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오랜만에 느끼는 분위기에 왜인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네.”
“역시 신혼여행은 라스라가 제일이죠. 특히 해산물 요리는 제국에서 라스라를 따라올 곳이 없답니다.”
저 말에는 나 또한 공감했다.
라스라의 해산물 요리는 정말 맛있었으니 말이다.
최근 먹은 해산물 파스타와 연어 스테이크를 떠올린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말 맛있더라구요.”
우리의 말에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시장에 있는 여러 맛집을 추천해 주었고 나는 현지인이 추천해 주는 맛집만큼 믿음직한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마부는 가장 맛있는 생선 구이집 얘기까지 하더니 돌연 좋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즘 라스라에서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날 것이라면 설마 회를 말하는 거야?
아니, 이 세계에서 고기를 날로 먹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문화라 절대 먹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회를 먹고 싶어져 눈을 반짝이며 마부에게 물었다.
“그 요리는 어디서 먹을 수 있나요?”
“조금 비싼 음식점이긴 하지만 큐레아 라는 곳에서 파는 생선이 가장 맛있다고 하더라구요.”
가격은 상관없어요!
내 남편이 누구인데!!
이럴 때 쓰라고 해준 말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감사해요!”
오랜만에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 기뻐하며 감사 인사를 하자 앞에서 마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회를 먹을 생각에 환하게 미소 지은 내가 바리다스를 돌아본 순간 좋지 않은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예린, 진짜 먹을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회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라스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굽지 않은 생선은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걱정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라스, 저 진짜 회 먹고 싶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라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아요, 저는 많이 먹어봤어요.”
내 말에 라스는 조금 충격받은 듯했으나,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렇다면 믿어 볼게요.”
그의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힘들면 굳이 안 그래도 괜찮아요.”
내 말에 고개를 저은 바리다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예린이 하는 건 전부 같이 해보고 싶어요.”
아니, 뭘 그런 걸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마차 안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