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74)화 (174/207)

36. 토마가 하지 못하는 것.

라이온 아카데미.

높은 신분의 귀족들이나 뛰어난 평민들만이 입학할 수 있으며 그들 중에서도 유능한 인재들만이 다닐 수 있는 크레센트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명문 아카데미.

특히 올해의 입학생들 수준이 높기로 유명했는데.

그들의 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입학생이라 평가받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바로 토마와 렌 그리고 레이안.

그들이 그렇게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몇 가지를 꼽자면.

높은 신분과 아름다운 외모, 우수한 학업 성적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인기와 위상은 현재 라이온 아카데미에서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학생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세 사람이 못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문제점이나 단점을 가지기 마련이었지만 세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단점을 잘 숨기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또 다르겠지만.

저 주제를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다른 귀족들과 교류를 끊지 않는 레이안이었다.

현재 아카데미 육 학년인 이렌은 아르카 후작가의 다섯 번째 자식으로 정치와 문학이라는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수한 학생들 위주로 이루어진 이렌의 동아리에 레이안이 가입했던 것이다.

이렌은 레이안이 동아리에 가입했지만 렌과 토마까지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랬기에 동아리 부장인 이렌은 한 번씩 레이안에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이 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동아리 가입 기간이 돌아와 이렌은 렌과 토마를 어떻게든 자신의 동아리에 가입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 결심은 이렌을 제외한 다른 동아리 부원들 또한 가지고 있었고.

이미 일 학기에 거절을 당한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레이안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이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 있는 동아리 모임이었다.

이 학기 동아리 가입 기간은 단 일주일, 그동안 있는 동아리 모임은 단 두 번이기에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번 동아리 모임에서 레이안을 설득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태자 저하.”

동아리실에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에 레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의 이렌은 그녀에게서 절대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사냥감으로 보는 듯한 평생 공부만 해온 그녀에게서 절대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아카데미에서는 신분보다 학년이 우선이기에 토마 또한 그녀에게 존칭을 사용하였고.

그런 그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인 이렌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인사를 한 뒤 앞으로의 동아리 방향성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입학생의 가입이 적어 이례적이지만 이 학기 때도 가입 신청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녀의 말에 레이안은 어렵지 않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토마랑 렌을 노리는 건가.

그런 레이안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게 시선을 옮긴 이렌은 입을 열었다.

“올해 신입생 중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이 저하뿐이라 그런 것인데, 혹시 저희 동아리에 추천할 만한 친우가 있으실까요?”

적당한 핑계였다.

“차일드 가의 공자와 공녀분이 저하와 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들은 동아리의 가입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이어 부회장 또한 입을 열었고 적당히 밑밥을 깔려고 한 이렌의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직접적인 질문에 그녀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내쉰 이렌은 레이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태자 저하의 친우인 두 분이, 동아리에 가입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태자 저하께서 설득해 주시기는 어려울까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계속 쏟아지는 그들의 질문에 레이안은 조금 짜증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설득한다 해서 넘어올 친구들이 아니라서,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 말은 진실이었다.

토마와 렌 모두 그런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아리 또한 아카데미의 필수 항목이기에 그나마 있는 관심사인 피아노 연주 동아리와 검술 동아리에 가입만 했을 뿐.

두 동아리 모두 활동이 거의 없었다.

특히 두 사람은 모두 친목을 다지는 것이 필수인 동아리는 절대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말에 포기할 이렌이 아니었다.

라이온 아카데미가 창립된 시절부터 존재하던 동아리인 정치와 문학.

매 학기 모든 동아리 중 가장 우수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모두가 들어오길 선망하는 그런 곳.

그녀는 자신이 이 동아리의 부장인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이렌은 레이안에게 두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의 부원들 또한 질세라 그녀에게 가담해 두 사람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칭찬에는 토마와 마찬가지로 학년 수석인 루비아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레이안은 그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루비아를 이 동아리에 가입시키는 것인데 그것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말이다.

그녀가 가입한다면 토마와 렌도 따라 가입하게 될 텐데.

하지만 레이안은 딱히 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성적으로 따지자면 자신과 렌 보다 루비아가 더욱 뛰어난데 말이다.

루비아 또한 낮지 않은 지위인 백작의 딸이었으나 그녀가 언급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정치와 문학 동아리에서는 매년 신입생 중 세 명만 가입시키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토마와 렌을 무조건 이 동아리에 가입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레이안은 토마와 렌의 친구이긴 했으나, 루비아의 친구이기도 했다.

성적순으로 따지면 무조건 루비아를 가입시켜야 하면서도 토마와 렌의 신분이 더 높다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이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레이안의 심드렁한 태도를 느낀 것인지 이렌을 포함한 동아리의 부원들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들의 동아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과 함께 렌과 토마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멍하니 그들의 말을 흘리고 있던 토마의 귓가에 한 부윈의 말이 들려왔다.

“못하는 게 없다는 소문이 자자한 두 분과 함께할 수 있다면 분명 동아리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건 아카데미의 퍼져있는 소문을 알고 있기에 한 말이었지만 그 소문을 처음으로 들은 레이안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못하는 게 없긴 뭐가 없어.

그녀의 칭찬에 속으로 고개를 저은 레이안은 단호하게 생각했다.

연애랑 사회생활.

정말로 두 사람이 들었다면 상처받았을 정도로 그의 생각은 확고했고 또, 단호했다.

아니 정정하겠다.

렌은 루비아의 도움으로 요즘 친구들과의 교류도 늘어나고 다른 영애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토마는 전에 비해 발전이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눈치를 챈 것 같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무것도 안 해.

관계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라든지, 루비아와의 친밀도 형성을 위한 대화라든지.

하지만 레이안이 본 토마에게 그런 노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러니 레이안은 자신감 있게 주장 할 수 있었다.

토마에게 연애에 대한 재능은 존재하지 않다고 말이다.

리리안이 들었다면 오빠나 잘하라며 비웃었을 말이지만 레이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근데 저런 소문이 진짜로 퍼져있어?

그것도 그것대로 놀랍네.

자신의 친구이지만 두 사람이 잘나긴 했다.

근데도 저런 오글거리는 소문까지 퍼졌을 줄이야, 나중에 이야기해 줘야겠다.

두 사람의 반응을 기대하며 속으로 웃고 있던 레이안은 이어진 그들의 말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두 분은 사귀고 계신 건가요?”

누가, 누구랑 사귀어…?

밖에서는 그가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더라도 뭐라고 할 귀족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아카데미였다.

여기서 그보다 학년이 낮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아카데미 안에서만큼은 신분보다 학년을 중요시하기에 그가 지금 선배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꽤나 큰 실례였다.

그 사실은 레이안 또한 잘 알고 있었지만 대답을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아니요.”

그를 포함한 그의 주변 사람은 그 누구도 사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렇군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워요.”

대체 누구랑 누구길래 아쉽다는 건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이어진 말에 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태자 저하와 차일드 영애라면 아카데미 내에서 가장 대단한 커플이 될 텐데.”

차라리 루비아와 엮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레이안은 표정을 구겼다.

“그런 말씀은 실례입니다.”

나는 괜찮은데 렌한테 한 소리 들을걸.

그 순간 동아리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저 말들을 더 들을 생각이 없었던 레이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 이런 식으로 귀찮게 굴면 나도 그냥 탈퇴해 버릴까.

레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사를 한 뒤 동아리실에서 빠져나갔고 그들은 아쉽긴 했으나 말실수를 한 사람이 있기에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의 반으로 향하던 레이안의 눈에 익숙한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는데.

그건 바로 토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루비아였다.

“그러면 정말로 가입해 주시는 건가요?”

“네, 어차피 이번 학기는 다른 동아리로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그 순간 들려온 같잖은 거짓말에 레이안은 웃음을 참으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렌도 들어올 거라고 했으니, 이제 두 명만 더 가입시키면 되겠네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루비아가 동아리를 만든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아카데미에서 인정해주는 동아리의 최소 인원이 다섯 명이니 말이다.

이 정도면 두 사람이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는데.

자신의 생각보다 노력 중인 토마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한 레이안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도 그 동아리에 가입할 수 있을까?”

“태자 저하도 이미 동아리가 있으신 거 아니에요? 유명한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의 말에 오늘 동아리에서의 일을 떠올린 레이안은 고개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상관없네.”

레이안의 말에 루비아는 벌써 조원을 세 명이나 구했다고 기뻐하며 돌아갔고.

그런 루비아가 사라지기 무섭게 토마는 레이안을 붙잡았다.

“너도 영애의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토마의 태도에 속으로 웃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레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아리가 더 재밌어 보여서.”

정말, 여러 의미로 말이다.

레이안은 그 길로 정치와 문학에 탈퇴 서류를 제출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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