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76)화 (176/207)

38화. 토마가 하지 못하는 것.

다음 날 아침.

동아리 가입 신청일의 끝이 다가왔으나 아직도 마지막 동아리 회원을 받지 못한 루비아는 근심에 빠져 있었다.

“렌, 아무도 저희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으면 어떡해요?”

걱정이 가득 담긴 루비아의 목소리에 렌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정말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녀의 동아리에 세 사람이 가입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가입 의사를 밝히는 학생들은 엄청나게 많았으니 말이다.

다만 모두가 세 사람의 눈에 차지 않아, 루비아에게 전달하지 않았을 뿐이었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루비아가 동아리의 부장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토마나 레이안에게 가입 의사를 전했다.

루비아에게 물으려 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렌이 경계하고 있어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래도 저 열심히 해 볼게요. 세 사람이 저를 위해 믿고 가입해 주었으니까!!”

양손을 꽉 쥐며 말하는 루비아의 모습에 렌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렌의 웃음에 화답하듯 웃은 루비아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루비아 또한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의 이름을 빌린다면 한 명이 아니라, 동아리 최대 인원인 삼십 명까지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까지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의 배경을 보고 오는 사람들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동아리의 마지막 부원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이 구해야만 했다.

공부를 목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하는 사람을 바랐다. 렌과 레이안, 토마의 배경을 보고 가입하려는 사람이어서는 안 됐고 적당히 친밀도를 쌓을 수도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 순간 루비아의 옆에 있던 렌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표정을 굳힌 채 한 쪽을 쏘아보고 있던 그녀는 루비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웨일즈 영애.”

아쉽게도 이미 그 사람이 루비아의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무슨 일이시죠?”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웨일즈 영애에게 볼일이 있는 겁니다.”

렌이 쏘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페이든이었다.

또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할까, 빠르게 사이에 끼어든 루비아는 페이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네! 저 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그런 루비아를 보며 표정을 푼 두 사람은 휴전 협정이라도 하듯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어 페이든에게서 나온 말은 루비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영애가 운영하는 그 동아리, 저도 가입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렌은 표정을 구겼으며 루비아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페이든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저희 동아리에 오면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없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성적은 되게 중요할 텐데?”

“그것보다 아카데미에는 좋은 것이 많지 않습니까?”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어제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법한 답을 꺼내었다.

하룻밤 사이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의 답에 루비아는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영애가 어제 말씀하신, 학창 생활이라는 것을 겪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실 수 없겠습니까?”

렌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신분만 보고 동아리에 들어오려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성적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공부 욕구 또한 있었다.

게다가 동아리에 들어오는 목적이 학창 생활을 위해서라니.

그래, 그는 정말로 루비아가 생각한 조건의 부합하는 학생이었다.

렌이 싫어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저는 상관없는데….”

말끝을 흐린 루비아가 렌을 바라보자 여전히 좋지 않은 표정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렌이 페이든을 싫어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기분 나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서.

말하기 상당히 유치한 이유였다.

렌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미 루비아의 마음에 든 것 같았고 같은 동아리에 든다고 해서 꼭 친해지는 것도 아니기에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과 친해지려고 아부하거나 친한 척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그녀는 페이든을 한 번 노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상관없어요.”

렌의 대답에 페이든의 표정이 밝아졌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작게 웃은 그가 루비아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녀 또한 머쓱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으려는 순간.

동아리 부원 후보를 추린 명단을 들고 오던 토마와 레이안이 그 둘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꽤나 사이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레이안은 토마의 눈치를 살폈다.

“누구인지 알아?”

그 순간 들려온 토마의 질문에 레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라면 정치와 문학에서 소개받은 기억이 있었다.

그 동아리 내에서 자신에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은 페이든 저 남자 한 명이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보면 친구로 두기 괜찮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레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며 힐끗 토마를 바라보자 대놓고 기분 나쁜 티가 나는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토마의 친구인 내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보면 아니겠지.

“삼 학년 수석, 페이든 퀼 선배야.”

레이안이 말이 끝난 그 순간 루비아의 손을 놓은 페이든이 렌에게도 손을 내밀었고.

렌이 거절하려는 순간 토마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렌의 손을 잡아 내렸다.

“제 동생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갑작스러운 토마의 등장에 깜짝 놀란 루비아는 생각했다.

소설에 나온 대로 렌을 많이 아끼는구나.

하지만 그에 비해 당사자인 렌은 토마의 행동에 정색하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이래.

가만히 놔뒀어도 내가 알아서 거절했을 텐데?

답지 않게 자신을 과보호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토마의 말대로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맞았기에 그녀는 가만히 있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군요, 실례였다면 죄송합니다.”

페이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토마는 렌의 손을 놓아주었다가.

이어진 그의 말에 다시 주먹을 쥐었다.

“앞으로 같이 동아리 생활을 하게 되어 잘 부탁한다는 의미였을 뿐입니다.”

그의 말에 레이안은 루비아가 마지막 부원을 잘 뽑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라면 자신과 렌, 토마의 지위를 보고 친해지려 동아리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성적도 학년 톱일 정도로 높은 걸 보아 루비아가 원하던 대로 공부에 관심도 많았다.

물론 토마는 싫어할 것이었지만.

토마는 여전히 싫은 티를 숨기지 않은 채 페이든을 노려보고 있었다.

“차일드 영식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페이든은 정말 아무런 의미 없이 악수를 청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에게도 손을 내밀었고.

토마는 마지못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여전히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토마는 루비아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토마가 루비아에게 시선을 옮긴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는 루비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제가 마음대로 부원을 받아서 화가 나신 건가요?”

그녀의 말에 답지 않게 당황한 토마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영애가 부장인데 선택권은 당연히 영애에게 있는 것이죠.”

하지만 토마의 말에도 루비아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뇨, 그래도 역시 허락을 구하는 것이….”

루비아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야 토마는 자신이 표정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해명을 위해 입을 열려 했다.

영애와 친해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해명이었으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빠르게 머리를 굴린 토마는 표정을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정말 영애 때문이 아니라, 제가 낯을 좀 가려서 그렇습니다.”

토마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에 레이안은 웃음을 참았고.

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가 낯을 가렸던가…?

하지만 두 사람에 비해 루비아는 그의 말에 쉽게 넘어갔다.

“그렇군요, 그럴 수 있죠. 그러면 이렇게 다 모인 김에 친해질 겸 자기소개나 해 볼까요?”

루비아의 말에 렌과 토마는 표정을 구겼으나 거절할 방법이 없었고.

페이든이 루비아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레이안은 이 상황이 재미있을 뿐이었다.

페이든은 낯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메모했다.

“저는 일 학년 루비아 웨일즈라고 해요. 잘하는 과목은 수학이고 좋아하는 것은 민트초코 디저트입니다.”

그렇게 소개를 끝낸 루비아는 눈을 반짝이며 네 사람을 돌아봤고.

이어서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페이든이었다.

“페이든 퀼이라고 합니다. 모든 과목에 자신 있으며 좋아하는 것은 시험과 공부, 독서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라고 생각하는 그를 루비아는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레이안이야 이런 일에 익숙하기에 능숙하게 소개를 마쳤다.

렌 또한 루비아의 눈빛에 못 이겨 입을 열었다.

자기가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렌의 자기소개가 끝나기 직전 마지막 차례인 토마를 바라본 루비아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도 낯 가려봐서 아는데,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할 수 있다, 파이팅!”

낯을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소심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된 토마를 바라보며 레이안은 웃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그냥 렌 때문이라고 하면 됐을 것을.

핑계를 대도 무슨 저런 핑계를 대, 안 어울리게,

레이안은 생각했다.

이 동아리에 오길 잘했다고.

그리고 역시 토마는 연애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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