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개업 축하드려요.”
레스토랑 개업을 축하해주려 찾아온 실비아와 미렐은 내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환하게 웃으며 선물을 받아 들자 그들도 예쁘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바리다스가 이전부터 추진해오던 레스토랑의 개업식 날이었다.
차일드 가의 레스토랑 사업이다 보니 오픈 첫날부터 많은 예약이 몰렸기에 바리다스는 사업 파트너와 고위 귀족들을 우선으로 초대했다.
자리가 부족한 와중에도 그는 내게 하나의 테이블을 내어 주었고 나는 그 덕에 실비아와 미렐 그리고 유아를 초대할 수 있었다.
두 소녀는 점심 타임에 성녀 일로 바쁜 유아는 저녁 타임에 방문하기로 했기에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인테리어 정말 예쁘네요. 되게 독특한 분위긴데 굉장히 우아해요.”
미렐의 말에 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현대식으로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당연하지!
“그렇게 느꼈다니, 고마워.”
내가 인사를 마친 순간 웨이터가 다가와 우리에게 메뉴판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메뉴판에는 오늘 준비된 코스 요리의 컨셉과 선택할 수 있는 고기 굽기, 디저트, 스프 등이 적혀 있었다.
미디움 레어와 초코 마들렌, 송이버섯 스프를 고른 내가 두 아이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들도 이미 주문을 마친 뒤였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주문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직원이 가져온 접시에는 홀스래디쉬 소스가 올라간 연어와 토마토 카프레제 그리고 작게 구워진 고기가 한 접시에 담겨 있었다.
식사라고 하기에는 적은 양에 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뭐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미렐과 실비아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연어였다.
식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날것 그대로의 분홍빛이 아직 두 소녀에게는 어색한 듯했다.
“연어야.”
내 대답에 연어 회를 처음 보는 두 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라스라에서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처음 봐요.”
최근 라스라에 방문한 덕에 실비아는 회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도 두 소녀 모두 거부감이 크지는 않은 것인지 망설임 없이 연어를 집어 입 안에 넣었고.
곧이어 실비아와 미넬의 동공이 반짝이며 확대되었다.
“이거 뭐예요? 엄청 맛있다.”
“되게 느끼한데 소스가 그걸 상큼하게 잡아주고 있어요.”
저 말에는 나도 동의했다.
저 홀스래디쉬 소스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요네즈를 사용했는가.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연어와 소스가 내 생각 이상으로 소녀들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돌아갈 때 저 소스를 조금만 얻어 갈 수 있을까요?”
“저도요!!”
더 달라고 하면 당연히 내어 줄 것임에도 레스토랑의 절차를 배려해 요구하지 않는 두 소녀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지.”
이어서 나온 것은 나와 소녀들이 각자 주문한 수프였다.
그들은 코스 요리가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한 듯 천천히 수프를 먹었다.
“헉.”
수프를 한 입 떠 먹은 실비아가 놀란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깜짝 놀란 나와 미렐이 자신에게 시선을 옮기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어떻게 수프까지 이렇게 맛있어요?”
그제야 실비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나는 헛웃음을 지었고 미렐은 그녀의 어깨를 살짝 쥐어박았다.
이어 나온 요리는 원래 관자구이였으나, 미넬과 실비아를 위해 특별히 연어를 추가해 달라 귀띔했다.
그 덕에 우리는 다른 테이블과는 다르게 총 여섯 개의 접시가 올라가게 되었고.
테이블은 조금 비좁았으나 두 소녀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진짜 큰일 났다, 집에 가자마자 쉐프에게 연어 요리를 준비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실비아가 말했고.
“저는 꼭 피튼과 다시 올 거예요, 그가 정말로 좋아할 것 같은 맛이에요.”
뒤이어 이어 미렐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는 어떻게 된 거지?
그 뒤로 엘시디어스와의 사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은 기억이 없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네.
이제와 물어보기에는 늦은 감이 있어 질문을 망설이던 그때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네, 나도 같이 와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실비아는 정말로 행복한 미소를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이 잘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에 성공한다면, 창가 자리를 내어 줄게.”
준 연예인인 엘시디어스를 배려한 내 말에 실비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헉, 꼭 성공하도록 할게요.”
마음만 같아서는 두 사람에게 언제든 오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미 한 달, 아니 두 달 이상으로 예약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
이어 남은 코스 요리가 순서대로 서빙되었고.
이 방식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은 것인지 두 소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디저트와 차가 함께 서빙될 차례였다.
나는 마지막 디저트에도 힘을 꽤 주었는데.
바로 애프터눈 티 세트를 준비한 것이었다.
작은 트레이에 담긴 조그마한 디저트와 샌드위치를 본 실비아와 미렐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은 처음 보는데, 되게 예쁘네요. 디저트 성 같아.”
“우와, 이거 귀여워서 어떻게 먹어요.”
만족스러운 반응에 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한참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내 옆쪽으로 고급스러운 주전자가 내밀어졌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컵에 차가 담기기 시작했고 묘한 분위기에 내가 고개를 들자.
내 찻잔에 차를 따라주고 있는 바리다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라스?”
깜짝 놀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작게 미소를 지은 그는 실비아와 미렐의 컵에도 차를 따라주었다.
“앗, 감,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두 소녀가 당황하는 것도 적잖아 이해가 갔다.
그 누가 공작이 자기 차를 따라 줄 거라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리다스를 바라봤다.
확실히 그가 저러고 있는 것 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 같기는 했다.
절도 있는 동작과 단정한 차림 그리고 잘생긴 얼굴까지.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집사들의 모습이 저럴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모습은 완벽했다.
“두 영애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그렇게 말하며 주전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두 소녀는 아직도 바리다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여운이 가득 남은 표정을 지으며 두 소녀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렇게 잘생기셨지?”
“그러게. 신이 자기 얼굴 보고 만들었나 봐.”
“인정. 그런 거 같다…….”
근데 얘들아, 여기는 신 진짜로 있지 않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실비아와 미렐과 다르게 나는 혹시라도 두 소녀가 불경죄로 잡혀갈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 내가 봤는데 신보다 조금 더 잘생겼어.”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두 소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언제 온 것인지 내 옆자리에 앉은 유아를 보며 두 소녀는 벌떡 일어났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성녀라는 말에 주위의 시선까지 끌려 대부분의 귀족이 인사를 하려 했으나, 그녀와 함께 들어온 신관들에 의해 빠르게 저지당했다.
유아는 이런 일들은 이제 익숙한 것인지 아쉬운 표정으로 준비된 디저트들을 바라봤다.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왔는데 조금 늦은 모양이네요.”
“저녁도 준비되어있는데, 그때 같이 먹으면 되죠.”
하지만 내 말에도 유아는 아쉬운 표정으로 디저트들을 바라봤다.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연어 카나페를 발견한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합석해도 될까요?”
그녀의 말에 두 소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긍정했다.
“네!”
“당연하죠!!”
그녀들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유아는 신관이 가져다준 의자에 앉아 카나페를 집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유아도 연어를 오랜만에 먹는 것이겠구나.
“연어, 더 먹을래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죠.”
환하게 웃는 유아의 아름다운 미소에 그녀를 바라보던 실비아와 미렐의 눈이 커졌다.
나도 이렇게 기뻐하는 유아의 모습은 처음 보길래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며 소녀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희도 더 먹을래?”
두 아이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테이블 위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연어 회와 카나페, 샌드위치, 샐러드 등이 나오게 되었다.
“이게 얼마 만에 연어야, 진짜 맛있네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연어 회를 먹던 유아를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까지 먹고 가요.”
내 말에 유아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 순간, 바리다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과 만나느라 조금 피곤해 보이는 그는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저녁 시간에, 한 테이블이 더 비게 되었는데 필요해요?”
그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와 미렐의 애인을 부르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주시면 좋죠.”
“그래요, 옆자리로 준비해 줄게요.”
“고마워요.”
바리다스가 고개를 들려는 순간 뺨에 살짝 입을 맞추자, 그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네, 재밌게 놀아요.”
마찬가지로 내게 살짝 입을 맞춘 뒤 바리다스는 자리를 비켜주었고.
나는 못 본 척 시선을 피해주고 있던 그들에게 시선을 옮겨 입을 열었다.
“얘들아, 테이블 하나가 빈다는 것 같은데 부를 사람 있니?”
내 말에 두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피튼을 불러도 될까요?”
“저는 엘시요, 마침 근처에 와 있어요.”
애인의 애칭을 부르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두 사람을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성녀라는 이유로 연애가 금지되어있는 유아만 빼고 말이다.
“내가 성녀 때려 치고 만다.”
내 귓가에 작게 소곤거린 유아를 돌아보자 그녀는 장난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과 진심이 반쯤 섞인 그녀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