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84)화 (184/207)

46화.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처음 주연이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가장 의아해했던 사실은 엘리아네가 혼수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바로는 엘리아네는 분명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아오다 아버지에 의해 구출되었는데 말이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주연이 깨어났을 때의 엘리아네는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보살핌받고 있었고.

그랬기에 주연은 여느 귀족 자제와 다름없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다만 그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버지가 계시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바라는 일은 전부 이루어졌다.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는 등 이 세계에서의 그녀는 공주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주연은 돌아가고 싶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로.

학교와 친구들에게로.

평범한 일상으로.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사흘이 넘어가던 날부터 주연은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방법은 바로 죽는 것이었다.

죽는다면 원래 있던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세계에서 억지로 살아가봤자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공포는 건 어린아이가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주연은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딸의 모습에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주연을 신전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반강제적으로 끌려간 신전.

그곳에서 주연이 가장 처음 마주한 사람은 유아였다.

흑단처럼 짙은 검은 머리와 반짝이는 검은 눈.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본 익숙한 외모에 주연은 유아를 붙잡은 채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때의 유아가 예린을 통해 빙의자를 도와주고 있던 시기였기에 유아 또한 주연이 빙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아는 어린 나이에 이 세계에 떨어져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주연이 안쓰러웠다.

그랬기에 그녀는 최선을 다해 주연의 적응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유아의 노력과는 별개로 주연은 이 세계에 적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든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할 뿐.

이곳도 같은 세계이며 모두가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말을 아무리 해 봐야 주연은 듣지도 않았다.

그런 주연의 행동 덕에 유아는 어렵지 않게 그녀도 예린이 말했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신경을 써 주었다.

그 이야기는 원작이나 정확한 미래가 아닌 수많은 미래 중 하나였다고 수십 번 말해주었으나.

주연에게는 여전히 닿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이 토마와 이어져 결말을 보면 돌아갈 수 있다 주장하는 그녀에게 현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 유아가 선택한 방법이 토마와 주연을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유아가 본 미래의 토마는 주연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였으니까.

유아는 진심으로 주연이 이 세계에서 잘 살아주길 바랐다.

원래 세계의 그녀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을 테니까.

어린 주연에게 차마 그 사실 만큼은 말할 수 없었지만.

이 세계에 오게 된 사람들과 빙의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죽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유아가 모르는 사실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혼수상태인 사람 또한 빙의할 수 있는 조건에 포함되며.

두 번째는 진짜 엘리아네 또한 죽은 것이 아니라 주연에 의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연은 진실을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안에 엘리아네가 잠들어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주연은 생각한 것이었다.

엘리아네가 잠에서 깨어난다면 자신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런 주연이 택한 방식이 바로 토마와 엘리아네를 이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소설의 끝이 완전한 미래가 아니라 해도 상관없었다.

이야기 속이라고 하면 운명의 키스를 받은 공주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건 흔한 이야기였으니 토마라면 분명 엘리아네를 깨울 수 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운명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도 돌아가고 토마와 엘리아네도 행복하게 지내겠지.

차라리 루비아가 아닌 유아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면 분명 그녀는 주연을 도왔을 터였지만.

주연은 그 사실을 몰랐으며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계속 이 세계에 적응하라 설득하는 유아의 모습에 그녀가 자신을 돕지 않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주연은 이 세계에 떨어져 조언을 구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주연은 자신의 나이에 걸맞게 생각과 행동 모두 어렸다.

그런 그녀가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애초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했고.

그녀는 당연히 토마가 자신, 아니 엘리아네에게 운명을 느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한낱 조연인 루비아를 좋아하고 있는 토마 말이다.

원작과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아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주연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주연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신은 어떻게든 엘리아네를 깨워서 돌아가야 했으니까.

주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루비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는 네 안에서 진짜 루비아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어?”

그녀의 말에 루비아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저게 무슨 말인지.

애초에 루비아와 엘리아네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몸으로 들어 올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게 무슨 헛소리야?”

루비아의 질문에 주연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부터 그녀가 제 말을 믿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느끼고 있어. 내 안에 엘리아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러니 난 토마와 이어져야 해, 그가 엘리아네를 깨우고 날 원래대로 돌려보내 줄 테니까.”

저 말이 진실일까.

믿기지 않는 말이었으나 저 말이 진실이라면 처음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말과 그동안의 엘리아네의 행동이 이해는 갔다.

토마가 엘리아네를 깨워 줄 것이라는 저 밑도 끝도 없는 발상을 제외하면.

“그래, 다 이해해서 그렇다 치자. 근데 토마가 엘리아네를 깨워준다는 그 발상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소설은 원래 다 그렇잖아.”

맞는… 말인가?

당당한 주연의 주장에 루비아도 서서히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랬다가 엘리아네가 안 깨어나면 어쩌려고?”

루비아의 질문에 주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리 없어.”

어떻게 겨우 저런 근거를 들이밀며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루비아는 정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엘리아네는 자신의 비밀까지 가르쳐 주며 설득한 것이 성공했다 생각한 것인지 간절한 표정으로 루비아의 두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도와줘. 난 정말 돌아가고 싶어.”

루비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

“싫은데.”

“왜?!”

어떻게 자기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 있냐는 듯 주연이 눈을 크게 뜨고 루비아를 바라봤지만 루비아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너를 도와주지 않은 건, 돌아갈 수 있다는 너의 말이 헛되기 때문도 있지만 혼자 남을 토마가 걱정되어서도 있어.”

루비아는 분명 주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떠나 버리면 남은 토마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리고 그때의 주연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토마의 여자 주인공은 엘리아네인데.”

주연의 말이 진실이라, 토마가 엘리아네를 깨워주고 두 사람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그때의 토마가 사랑한 엘리아네는 사라지는 것인데?

“왜, 이해를 못해? 어차피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어있다고. 내가 아니라 너가 엘리아네였어도 토마는 사랑에 빠졌을걸?”

그놈의 운명, 운명, 운명!!!

와, 원작병도 아니고 운명병을 내가 여기서 겪을 줄이야.

그딴 게 대체 어디 있는데?

그래, 있긴 하겠다. 내가 너를 싫어하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지구에서 만나도 악연이었을 거야.

루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야, 됐고 그냥 도와주기 싫어서 그런 거니까. 너 알아서 해.”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주연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네 친구도 아니고 왜 자꾸 와서 도와달라 징징거려? 네가 애야? 이 정도 도와줬으면 충분하지 뭘 자꾸 더 해달래? 이제 너 알아서 해.”

그렇게 말한 루비아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뒤쪽에서 주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내가 혼자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질투 나서 그런 거야?”

뭐, 이런 미친….

루비아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 또한 전생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얽매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은 이 세계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뭐가 아쉽고 아니꼽다고 그런 생각을 하냔 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더 상대해주는 것이 귀찮았다.

대충 손을 흔드는 것으로 주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루비아는 발걸음을 옮겼지만 주연은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하! 착한 척이란 착한 척은 다 하더니 이럴 줄 알았어. 토마에게도 일부러 꼬리친 거지? 나와 잘되지 못하게 하려고.”

“어, 맞아 맞아.”

진짜 유치하네.

주연을 대충 상대하며 루비아가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난 것인지 주연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렇게 위하는 척하더니, 너랑 나랑 다를 게 뭐야? 너도 토마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잖아.”

누가 똑같다고?

그 순간 수업 종이 시작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계속 참아오던 루비아의 이성이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나는 진짜, 토마의 감정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커다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학생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것을 눈치챈 루비아는 자신이 한 말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이거, 완전 고백 아니야?

토마가 못 들어서 다행인 수준의 발언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루비아가 고개를 든 순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토마와 레이안, 렌과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나, 이거 아무래도 망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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