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87)화 (187/207)

49화. 피오라와 바리다스의 2세 계획.

떨어진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늦은 가을, 나는 여러 이유에 의해 수도로 향했다.

첫째로 아이들이 수도에 더 머물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번 겨울은 아이들을 위해 수도에서 보내기로 정했다.

또 다른 이유는 아필레가 나에게 셋째 아들을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도 우리의 레스토랑이 상당한 인기를 얻어 수도까지 사업을 확장 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는데 그건 바리다스의 일이기에 나는 자세한 내부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공과 사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우리는 수도로 향했다.

가는 길이 멀었기에 수도에 도착한 직후에는 꽤 힘들었다.

같이 온 자스민은 황궁에 도착하기 무섭게 잠들었고 바리다스는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고 일을 보러 나갔다.

막 수도에 도착했으니 조금쯤 쉬어도 될 터였지만 서둘러 일을 마치고 우리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기에 그를 잡을 수도 없었다.

바리다스를 보내고 나도 아필레와 아킬레스에게 인사만 한 뒤 자러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피로는 황궁에 도착한 순간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와아아….”

아필레의 두 번째 아들이자 이 황자 테리안이 내 눈앞에서 꼼지락거리는 게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동그란 머리와 아필레를 닮아 진한 푸른 눈.

사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레이안과 리리안의 어릴 때를 꼭 닮았다네.”

아필레의 말에 나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아이들보다 훨씬 귀여워.

두 사람이 듣는다면 상처받을 만한 소리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테리안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테리안에게 정신이 팔려있다 아필레를 돌아본 나는 뒤늦게 입을 열었다.

“황후마마를 닮아서,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이건 진심이었다.

테리안은 정말로 아필레의 얼굴을 쏙 빼닮았다.

코와 눈 입술까지도.

그런 내 말에 아필레는 웃음을 터트리며 테리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뿐이라도 고맙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아필레를 쏙 빼닮았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 순간 아필레의 눈빛이 바뀌었다.

행복하지만 무언가 그리워 보이는 것 같은 그런 묘한 표정이었다.

“그대의 말을 들으니, 아킬레스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아필레는 테리안에게 시선을 옮기며 얇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묘한 느낌이 들어 테리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피던 찰나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테리안의 머리카락이 황실의 상징인 백금발이 아니라 아필레와 같은 갈색이라는 사실을.

숱도 얼마 없는 데다가 옅은 갈색인 탓에 당연히 금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테리안이 태어났을 때, 황실이 뒤집혔다네. 아이의 머리가 백금발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말 그랬다면 당연히 델아트까지 소문이 퍼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조차도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당시의 상황이 어땠든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그때의 아필레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자 무슨 말로 위로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아킬레스 또한 좋지 않을 반응을 보일 것이리라 생각했네. 의심은 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순간 아필레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잔잔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그런 미소였다.

“내가 그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금방 알게 됐지. 테리안을 보는 순간, 그가 울더라고.”

나는 아킬레스와 아필레가 서로를 엄청나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킬레스가 그녀를 의심하거나 탓하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그러더니 나를 닮게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더군.”

그렇게 말하는 아필레의 미소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건 정말로 사랑받고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미소였다.

“레이안을 낳았을 때도, 리리안을 낳았을 때도, 황제가 되었을 때도. 운 적이 없는 그였는데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으니 왜 그런 소문이 퍼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황제의 눈물을 보고 그 누가 부정을 언급할 수 있을까.

아킬레스는 내 생각보다 더욱 아필레를 아끼고 있던 것이었다.

“황제 폐하는 정말로 황후 마마를 사랑하시나 봐요.”

행복해 보이는 아필레의 모습에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런 거 같아.”

두 사람을 보니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라 이미 저만큼 사랑받고 있구나.

바리다스도 내가 붉은 눈을 가지지 않은 아이를 낳더라도 저렇게 말해줄 것임을 알고 있기에.

갑자기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리다스를 떠올리며 웃는 순간 나를 보고 있던 아필레가 웃음을 터트렸다.

“공작을 생각하고 있나 보군.”

의문이 아닌 확신에 찬 말이었다.

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 같은 그녀의 말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

“네.”

내 대답에 작게 소리 내어 웃은 아필레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직 아이 계획은 없나?”

“네?!”

정말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나는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다.

나와 바리다스 사이에서의 아이라,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전생에서의 나였다면 남편은커녕 남친이 있을 거란 장담도 하지 못할 정도라 더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필레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아이가 없어도 나와 바리다스는 행복했고 가장 중요한 건.

“형수님! 나 안 보고 싶었어?”

타이밍 좋게 문을 열고 레몬과 리리안, 그린이 들어왔다.

같이 노느라 뒤늦게 나를 찾아온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미 애가 다섯이나 있는데 굳이 더 필요할까.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서도 드러난 모양이었다.

아필레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난 공작부인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길 바라네, 공작가의 자제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존재이니 말이야.”

이미 다섯이나 있는 대도요?

나는 뒤늦게 나와 아필레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레몬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솔직히 나랑 바리다스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 중 한 명은 우리가 죽기 전에 낳아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솔직히 하고 있을 정도로 나는 아기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라스의 생각은 어떨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라스랑 한번 이야기해볼게요.”

내 말에 아필레는 무슨 그런 걸 얘기까지 하냐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얘기를 해 볼 필요가 있을까. 공작이라면 당연히 좋다고 할 텐데.”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나와 아필레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몬과 그린을 안아주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솔직히 나는 아이에 대한 바리다스의 생각이 긍정적일 거란 확신이 없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과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본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에게 아기에 대한 확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생각이 있었다면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겠지.

“먼저 얘기 꺼내 봐, 분명 좋아할 거야.”

“알겠어요.”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우리의 대화가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인지 레몬과 그린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요.”

그런 것 치고는 정원에서 노느라 바로 나와 보지도 않던데.

황궁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겨 준 사람이 아필레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애들이야 노는 게 제일 좋을 때지.

말이라도 저렇게 해 주는 게 어디야.

“나도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다고 말하자마자 두 사람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내 품 안을 파고들었다.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내게 그간 황궁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신이 나 떠드는 레몬을 보며 생각했다.

황궁의 시녀분들이 고생이 많았겠다고 말이다.

레몬 혼자도 아니고 리리안까지 같이 붙어 있으니 사고뭉치가 둘이었다.

하루 종일 옷을 갈아입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치우느라 고생할 시녀분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재밌는 책이 없어 흥미를 돋울 내용이 담긴 책을 발견할 때까지 도서관에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당연히 도서관을 잔뜩 어지럽혔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린은 원체 깔끔한 편이었으나 리리안과 레몬은 그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근데 자스민은 어디 갔어요?”

그걸 이제야 눈치챈 거야?

레몬다운 질문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그린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옆에 놓인 침대에 잠들어 있는 자스민을 가리켰다.

“동생한테 관심 좀 가져 봐.”

“아, 자고 있었구나.”

그린의 말이 이제는 익숙한 듯 자스민이 자는 것을 확인한 레몬은 내게 시선을 옮겼다.

“근데 형수님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우리 동생 생겨?”

아니, 평소에 하던 대로 눈치 좀 없지.

이런 건 어떻게 이리 빨리 눈치채는 건지.

레몬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그린이 입을 열었다.

“바보야, 그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린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말려 줄 거라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동생이 아니라, 사촌이라고 해야지. 우리는 삼촌이랑 이모가 되는 거야.”

아니, 호칭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린 또한 동생, 아니 사촌이 가지고 싶은 것인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내 남편이 될 건데?”

리리안 너는 뭔데 또 끼어들어?!

아직도 예전에 말했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은 것인지 당당한 표정의 리리안이 입을 열었고.

“나 동생 생겨?”

언제부터 깨어나 있던 것인지 자스민 또한 눈을 비비며 내게 달려왔다.

아니, 얘들아. 그런 거 아닌데?

순식간에 네 명에 아이들에 둘러싸인 내가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아필레를 바라보자 그녀는 미소 지으며 테리안을 안아 들었다.

“티안은 좋겠네, 벌써 동생이 생기잖아.”

아니 무슨 소리야 대체!!

아필레까지 끼어들어 나를 부추기기 시작했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리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청아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맑은 어린아이의 웃음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기를 바라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서인지 온 세상이 나와 바리다스가 아기를 가지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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