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188)화 (188/207)

50화. 예린과 바리다스의 2세 계획.

아기라.

나는 아이들이 황궁 정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구경하며 고민에 빠졌다.

정말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그런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근데 이제라도 생각해보면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나와 바리다스를 닮았다면 예쁘긴 하겠네.

머릿속으로 나와 그의 아이를 떠올리니 분명 예쁘게 태어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뭘 고민해요, 저라면 당장 낳을 건데.”

그 순간 들려온 리리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녀를 올려다보자 언제나처럼 당당한 표정의 리리안이 눈에 들어왔다.

레몬과 그린이랑 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언제부터 여기 있었니?

놀란 내 곁에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은 리리안은 대기하던 시녀가 다가올 틈도 없이 완벽한 자세로 차를 따른 뒤 한 모금 마셨다.

분명 우아한 모습이었으나 지금 내 머릿속에는 리리안의 사심이 가득 담겨 있던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들로?”

내 말에 리리안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무슨 그런 사심만 가득한 사람인 줄 아시나.”

아니었나.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우아한 자세로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리리안이 입을 열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두 분의 자식이라면 크레센트의 경관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텐데.”

사심만 가득하진 않다더니 한가득 들어가 있잖아.

우아한 행동과 표정, 말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이유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야겠네.”

“그렇죠, 심지어 예쁜데다가 귀엽고 신분까지 높은. 완벽한 예비 며느리도 대기 중이랍니다.”

아까는 아니라더니.

이제는 대놓고 사심을 표출하는 리리안이 귀여워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내 말에 리리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곧이어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데, 설마.”

근거 있는 자신감이긴 한데.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니까, 좀 얄밉긴 하네.

하지만 그것마저도 리리안의 매력이었다. 어쩐지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이 더 귀엽게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딸이면 어쩌려고?”

“레이안과 테리안 대기 중.”

조금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었다.

누구 맘대로 대기를 시키는 건지.

뻔뻔한 그녀의 태도가 귀여워 결국 난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야, 나와는 다르게 매력이 부족해서 조금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긴 한데. 얼굴은 날 닮아서 괜찮을 것 같아요.”

어디서 저런 자신감과 뻔뻔함이 나오는 건지. 이 정도면 신기할 겨를이었다.

가장 신기한 건.

저렇게 자만하는 와중에도 그녀가 밉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어려서 그런지 귀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둘 다인가?

내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리리안은 얼굴을 붉힌 채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머리 헝클어지는데.”

좋으면서 왜 이럴까.

이런 모습까지도 귀여워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리리안에게 감겨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난 리리안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장난과 진심을 반반 섞어 말하자 리리안도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인지 나를 올려다보았다.

“후계자는 아니긴 하나, 저 또한 황실의 일원이에요. 그러니 저는 황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줘야 할 의무가 있죠. 그리고 결혼은 그 일의 일부에요.”

…이건 예상치도 못한 답변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먼발치에서 자스민과 테리안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는 아필레를 바라봤다.

다행히도 우리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 듯했다.

만약 내가 내 자식에게 저런 말을 들었다면 슬펐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리리안을 바라봤다.

역시 그녀는 내 생각보다 조숙했고 또 성숙했다.

나쁜 의미로든 좋은 의미로든 말이다.

“하지만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는 네가 행복해지길 바랄 텐데?”

“황실의 안정이 곧 저의 행복이니까, 괜찮아요.”

아니, 대체 누가 리리안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준 거야?

아필레나 아킬레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리 없었고 레이안 또한 그럴 아이가 아니었다.

다들 리리안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혹시나 아이들처럼 하녀나 시녀, 유모에게 저런 사상을 주입받았는지 의심이 들었다가도 리리안의 성격을 생각하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녀라면 옳고 그른 것은 알아서 구별했을 테니 말이다.

“누가 너에게 그런 걸 가르쳐줬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묻자 리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제 생각일 뿐인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전부 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마를 짚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행이었지만 어느 부분부터 설명해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리리안 들어봐, 나는 사랑으로 키운 내 아이가 만약 날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면 슬플 거야. 너는 어떠니?”

내 말에 리리안은 아필레를 돌아봤다.

그 순간 아필레도 고개를 돌려 리리안을 바라봤고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필레는 리리안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리리안은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민에 빠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녀 또한 어린아이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리리안의 행동과 말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성숙해 보였지만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아이들에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간 고민하던 리리안은 내 이야기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되게 미안하고 슬플 것 같아요.”

“그래, 만약 황후마마가 너의 그 말을 들었다면 굉장히 슬퍼했을 거란다.”

내 말에 리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셨을 것 같아요. 이제 이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어요. 아쉬우시겠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하니 며느리는 되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시 원래대로 당당함을 되찾은 리리안은 나를 보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정말 아쉽네.”

리리안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그녀라면 아필레와 아킬레스가 말려도 사랑을 찾아갈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말들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니 왜인지 슬퍼졌다.

“걱정하지 마요. 그런 생각 이제 안 하니까.”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감이 좋은 리리안답게 그새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이었다.

방금까지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리리안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아필레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아까 보았던 아필레의 눈빛과 정말로 닮아 있어서.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까 아필레의 그 눈빛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었구나.

“저도 어마마마랑 아바바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예요. 그렇게 해야, 두 분이 더 행복해하실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리리안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정말로 아필레와 꼭 닮아 있어서, 나 또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다니 다행이야.”

그 뒤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리리안은 아필레에게 달려가 그녀에게 안겨들었다.

평소에는 잘 부리지 않던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보아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의 아이라.

아필레와 리리안의 모습에서 나와 그를 닮은 아이를 덧씌워 보자 정말로 많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슨 감정일지 나로서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조금 이야기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아필레의 말대로 기뻐해 주면 좋을 텐데.

바리다스 또한 나에게 한 번도 자식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기에 무슨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되었다.

준비가 필요한 일이긴 했어도 그와 결혼했고 아이를 떠올리게 된 이상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었다.

예전부터 결혼하면 애는 꼭 낳으려고 했으니까. 그 시기가 조금 이르게 다가왔다고 생각하자.

스스로에게 용기를 부여하며 결심한 나는 주먹을 쥐었다.

오늘은 꼭 그에게 이야기하겠다고 생각하며.

* * *

그날 저녁.

아이들과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자 언제 온 것인지 겉옷을 벗고 있는 바리다스의 모습이 보였다.

“예린.”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까의 아필레와 리리안이 지었던 그런, 미소였다.

벗은 겉옷을 의자에 올려놓은 채 내게 다가온 그는 나를 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식사하고 온 거에요?”

잠시간의 입맞춤 끝에 나를 놓아준 그는 내게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하자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조금만 더 빨리 올 걸 그랬네요.”

그 모습이 왜인지 귀여워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내일은 꼭 같이 식사해요.”

“최대한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겠군요.”

내 웃음에 바리다스 또한 화답하듯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왜인지 아필레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아기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가 분명 기뻐할 것이라는 말 말이다.

바리다스의 미소를 보니 조금은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그를 바라보며 작게 심호흡을 한 나는 입을 열었다.

“라스, 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조금은 떠보는 듯한 묘한 질문이긴 했으나 눈치 빠른 그라면 분명 속에 포함된 의미를 알아들었을 것이었다.

내 예상대로 질문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바리다스의 눈동자가 커졌다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표정인지 아직 알 수 없어 내가 그의 반응을 살피고 있던 그때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접혔다.

“저야, 좋아하죠.”

그렇게 말하며 바리다스는 유혹하듯 내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차지한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도 이 사람과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

바리다스와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이 행복할 것 같아서. 사랑으로 그 아이를 키울 자신이 있다고.

조금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천천히 계획을 짜고 조금씩 준비해 나간다면.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희, 아기 만들래요?”

이런 말을 하면 분명 부끄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당신은 알고 있을까.

내 자신감과 행복의 근원이 모두, 당신이라는 사실을.

“당신과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아요.”

나는 그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도 지금 내가 당신을 보는 눈빛은 아까의 아필레와 리리안, 그리고 당신의 것과 닮아 있겠지.

나는 그들 못지않게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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