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예린과 바리다스의 2세 계획.
내 질문에 바리다스의 눈이 커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좋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행복한데.”
이어진 그의 말을 들은 나 또한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필레의 말이 맞았구나.
내 예상이 빗나갔었다. 아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더라면 진즉 한 번은 생각해 보는 거였는데.
예린이 아기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더 나눠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바리다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게는 아직 자신이 없어요.”
방금까지의 그와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자신 없다 하는 바리다스의 손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약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괜한 소리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다스는 어린 시절 학대받았으니까.
그로 인한 상처와 충격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도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에게 아기 이야기는 조금 일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 말을 꺼낸 걸 후회하진 않는다. 바리다스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과거에 묶여있길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바리다스도 좋아해 줬잖아. 환히 미소 짓는 걸 확실히 봤으니까.
나는 팔을 뻗어 떨리는 그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과거 때문인가요?”
내 질문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맞닿은 손은 아직도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다.
그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까까지 나도 바리다스와 같았으니까. 아이들과 아필레가 있었기에 꺼낼 수 있는 말이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야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에게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건.
라스와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사랑의 결실이 될 테니까.
“제가 어머니나 아버지처럼. 우리의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까, 걱정이 되고 제 자신이 두려워요.”
“…저는 아버지를, 닮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바리다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졌다.
그건 아직 온전히 사라지지 않은 바리다스의 상처에서 나오는 생각이고 말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아닐 것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아 줄 뿐.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바리다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또한 많이 걱정스럽고 두려워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이겨낼 정도로 기대하고 있어요.”
그가 나에게 확신이 되어 준 만큼.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확신을 줄 차례였다.
“당신과 나의 아이를 말이에요.”
내 말에 바리다스의 떨림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눈은 당신을 닮을 것이니, 코나 입은 저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리리안이 말하더군요. 저희의 아이는 분명 잘생겼을 거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당신을 닮았으면 정말 귀여울 것 같아.”
바리다스를 설득하고 싶은 것이지,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은 것은 아니기에 거기까지 말한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 순간 나와 바리다스의 눈이 마주쳤고 내가 그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짓자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냥, 전부 당신을 닮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신을 닮은 푸른 눈이었으면 좋겠고 머리도 짙은 색이 아니라 옅은 색이었으면 좋을 것 같고 당신을 닮은 미소를 지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바리다스의 눈이 반달로 접히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예쁘게 웃는 건 반칙이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손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것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저는 믿고 있어요. 라스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아이도 사랑해 줄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당신이 과거에 어떤 생각을 했든, 당신이 누굴 닮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이에요. 라스도 원하고 있지 않아요?”
내 말에 바리다스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끌어안았다.
“제가 감히, 원한다고 말해도 될까요.”
이제 그의 트라우마가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도 잘 지냈으며 더 이상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으니.
하지만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바리다스가 받은 상처는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당연하죠.”
내 말에 나를 안고 있는 바리다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나 컸던 그가 오늘따라 작아 보여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천천히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는 절대,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나를 사랑해주는 당신이, 어떻게 나와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내 품에 안겨 있어 그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그를 토닥여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천천히 계획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우리는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면 나에게는 몸의 준비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리다스가 나를 놓았다.
더 안고 있어도 괜찮은데. 벌써 놓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그가 내게 입을 맞추었고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박하 향이 느껴졌다.
곧이어 내게서 한 발짝쯤 멀어진 그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예린이 아니었다면, 저는 분명 아직도 그때에 멈춰 있을 겁니다.”
그건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아까의 아필레와 리리안 그리고 내가 지었을 바로 그 웃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나와 바리다스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이라고.
아이들과 미래에 태어날 우리의 아기까지도.
“당신의 말이 맞아요, 두려워할 필요가 없네요.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바리다스는 나를 다시 한번 끌어안았다.
내 사랑이 그에게 용기를 심어 준 것 같아, 왜인지 마음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나 또한 웃으며 그를 안아 줄 수 있었다.
그 상태로 나를 안아 든 바리다스는 어린아이 다루듯 나를 자신의 팔 위에 앉혔다.
높아진 시야보다 내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했다.
아이들을 많이 안아줘서 그런 것인지 안정감이 있었으나 조금 불안한 마음에 양팔을 그의 어깨에 두르는 것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바리다스가 나를 살짝 아래로 내려 시선을 맞추었다.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랐다기보단, 내 눈앞에 있는 바리다스의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자리에서 바리다스는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예린, 늦었지만 저에게 다시 대답할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
분명 귀여운 사람이 아닌데. 왜 이리, 귀엽게 느껴질까.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이마를 맞대었다.
“당연하죠.”
나는 눈을 감고 이어질 말을 기대하며 그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사실 듣지 않아도 그가 내게 무슨 대답을 할지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우리의 아기가 당신을 꼭 닮은 여자아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분명 나의 예상 범주 안에 있던 답 중 하나였으나.
그 말을 직접 듣게 되자,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나도 행복해서 나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 벅차오르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슴과 온 마음이 달콤하고 포근한 솜사탕으로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건 좀 반대네요, 저는 라스를 닮은 남자아이를 원하는데.”
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장난스럽게 말하자 잠시 망설이던 바리다스는 고개를 들어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 서로의 만족을 위해 두 명을 낳으면 되겠네요.”
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을 내놓으며.
이런 답은 비슷한 것조차 예상 답안에 없었다.
바리다스의 대답을 들은 내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그런 나를 보며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닮은 여자아이와 당신을 닮은 남자아이까지. 네 명도 좋고.”
방금까지 무섭다고 말했던 사람치고는 상당히 뻔뻔하고 능글맞은 말에 작게 그를 노려본 나는 입을 열었다.
“다 취소할래요, 다시 무서워해. 그냥.”
여전히 그의 팔에 안겨 있기에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시선을 피하자 바리다스는 웃음을 멈추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고개를 돌리려는 것처럼 부드러운 손길에 다시 웃음을 터트린 내가 그에게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이미 늦었어요, 예린. 얘기를 꺼냈으면 책임을 져야지.”
들려온 말에 그 마음은 쏙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아무래도 늑대 굴에 너무 당당히 들어온 것 같았다.
어느새 내 등 뒤는 바리다스의 팔이 아닌 침대가 닿아 있었고 위로는 바리다스와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잠, 잠시만요!”
싫은 건 아니었지만, 저기 그 마음의 준비가 너무 빨리 끝낸 거 아니에요?
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마음이라거나 몸이라거나…….
“…싫어요?”
조금 칭얼거리는 듯한 귀여운 말투에 순간적으로 괜찮다고 말할 뻔했다.
나는 저 미인계에 넘어가지 않은 나를 칭찬하며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건 아닌데, 저도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차마 얼굴을 보며 거절할 자신은 없었기에 여전히 내 시선은 바리다스가 아닌 옆을 향해 있었다.
“알겠어요, 준비가 됐다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내 얼굴을 잡고 부드럽게 앞으로 돌린 그는 나를 유혹하듯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언제든지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