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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어린이집 (192)화 (192/207)

54화. 예린과 바리다스의 2세 계획.

나는 바로 다음 날 부담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아필레의 말에 제대로 거절하지 않았다는 걸 후회하게 되었다.

내 방으로 배송된 보석 딸랑이와 실크로 만들어진 아기 옷 그리고 마정석으로 만들어진 자동 모빌까지.

이게 다 뭐야, 대체.

작게 한숨을 내쉰 내가 선물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것들을 든 순간.

사이에서 편지가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들자 아필레의 우아한 글씨체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아직 소식이 없다는 건 알지만 훗날을 위해 테리안의 것을 주문하며, 같이 주문했다네. 공작부인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하루 만에 저것들이 완성되어 오는 건데?

말이 안 되는 속도라 생각하며 나는 아필레의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이상으로는 선물이 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선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내게 맛있는 것들을 먹이려 했고 아필레의 뒤를 이어 아킬레스와 리리안까지 내게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기의 선물을.

게다가 아필레는 매일 나를 찾아와 육아에 관한 이야기와 조언을 해 주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많은 선물과 관심을 받으면 고맙다는 느낌보다 압박감과 부담감이 느껴져 화가 날 법도 한데, 그들은 정말 아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골라 선물했기에 그러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보다 고맙다는 마음이 더더욱 크게 들었다.

내가 만약 지구에서 아기를 가지겠다고 말했다면, 엄마와 친구들이 내게 이런 선물과 말들을 해 주었을 것 같아서.

내가 이 세계에서도 아이들과 바리다스가 아닌, 다른 가족과 친구가 생긴 것만 같아서, 더욱 그러했다.

향수병인가.

요즘 들어 더 그리워지는 전생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필레가 내게 준 선물은 직접 뜨개질해 만든 아기 양말이었다.

이런 쪽에도 솜씨가 좋은 것인지 잘 떠진 양말을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뜨개질 잘했는데.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고 입맛도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향수병이 심하게 온 것 같았다.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런 내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다름 아닌 아필레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보내고 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에게 티가 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오늘따라 컨디션이 별로네요.”

하지만 아필레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럴 만하지.

요즘 들어 식사도 거의 하지 않은 데다가, 잠도 똑바로 자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것 치고는 많이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일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주게.”

다정한 아필레의 말에도 나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커지는 그리움과 공허함에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전생이 그리워서 향수병을 앓고 있다고.

내 전생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리다스와 유아, 그리고 루비아.

바리다스는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게 미안해할 것 같아 차마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유아는 현재 일이 매우 바빴다.

그리고 루비아는…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 순간 내가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인지, 아필레가 내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

“공작부인, 나는 그대에게 내가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네. 나에게 그대는 그런 사람이니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망설이던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모든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왜 힘든지는, 조금은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들어 고향이 그립네요.”

아필레가 생각할 피오라의 고향은 데이먼일 것이다. 내가 그리워하며 말한 곳은 당연히 그곳이 아닌 전생이었으나 고향은 맞으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내 말에 아필레는 납득이 간 것인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향수병이로군, 정말 힘든 병이지.”

그렇게 말하며 아필레는 나를 위로하듯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가벼운 행동임에도 왜인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나는 울음을 참느라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하자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일이라면, 남편에게도 말하기 힘들지. 이해하네. 공작이 당신에게 소원할 리 없으니 말이야.”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대의 문제도, 공작의 문제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잘해 주고 있는 사람한테 괜히 부담만 주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필레가 누구를 떠올리는지는 나 또한 알 수 있었다.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필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또한 그랬던 시절이 있어서 알고 있네.”

“제국에서 자랐던 나도 향수병이 심했는데, 혼자 타국에 온 그대는 어찌할까.”

그렇게 말하며 아필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강하게 안아 주었다.

그녀의 따뜻한 품과 다정한 위로의 말에 힘들었던 시간과 마음이 보상받는 것만 같아, 결국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게라도 털어놓지 그랬어.”

내 등을 토닥여 주며 아필레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아필레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이 멈추자 뒤늦게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나는 차마 아필레에게 이제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조금은 괜찮아졌나?”

하지만 흐느낌이 멈춘 것 때문인지 아필레는 내가 울음을 멈췄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챘고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붉어진 얼굴을 차마 그녀에게 보여 줄 수 없어 고개를 숙인 채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며 아필레는 손을 들어 부드럽게 내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행동에 의해 얼굴이 드러났고 민망함에 그녀의 시선을 피하자, 아필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예쁜 얼굴이 다 망가졌어, 슬프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방금까지 울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생각했다.

나 다 거르고 방금 좀 설렜던 것 같아, 이게 황제를 꼬신 여자의 매력인가?

정말로 설렐 수밖에 없는 멘트였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공작은 어떠할까. 그대만 괜찮다면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가도 되네.”

이어진 말에 잠시 망설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썰미가 좋은 바리다스라면 분명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챌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괜한 부담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뤄질 수도 없는 일이니까.

이건 나만 미련을 버리면 해결될 일이었다.

“정 말하기 힘들다면, 내가 그대와 같이 데이먼 제국을 방문해 줄 수도 있네.”

황후인 아필레가 타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절차와 인력, 그리고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나조차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위해 같이 움직여 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괜스레 아필레가 나를 많이 아끼고 위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히 체감되어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뇨, 위로해 주는 걸로도 충분해요. 고마워요. 정말로.”

그런 내 웃음과 대답에 마음이 조금은 놓인 것인지 아필레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래, 원한다면 언제든 말하게. 나 또한 그대의 고향에 가 보고 싶군.”

말이야 언제든 할 수 있지만… 데이먼이 아닌 진짜 제 고향에 가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정말 갈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요.

내가 봤을 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확률이 높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좀 슬프네.

그래도 뭐, 여기서 다시 태어나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고.

“네, 고마워요.”

아필레는 그런 내 모습에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다가 발갛게 달아오른 내 눈가를 쓸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오늘은 나랑 함께 있는 것이 좋겠군.”

아무래도 눈물을 흘린 것이 많이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내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아필레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종을 울려 시종을 호출했다.

“내 방에 침대를 하나 더 준비하게.”

아니, 그렇게까지 할 건 없는데요?

하지만 아필레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입을 잠옷과 욕실까지 준비하라 명한 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오늘 저녁 식사는 따로 하려 하니 우리 두 사람 몫은 내 방으로 준비해주게. 먹고 싶은 것 있나?”

아필레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최근에 입맛이 없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우느라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식욕이 조금 돌아와 당장 생각나는 음식을 모두 입에 담았다.

“리조또랑 스테이크… 랍스터도 먹고 싶어요.”

그런 내 대답에 안심이 된 것인지 환하게 미소 지은 아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이 인분 준비해주게, 디저트는 됐으니 와인과 안주가 될만한 것들로 가져오게.”

헉.

와인이라는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필레를 바라봤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내 반응을 아필레 또한 눈치챈 것인지 그녀는 나가려는 시종을 붙잡았다.

“가장 좋은 것으로.”

이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가장 좋은 술.

그것도 황실에서 가장 좋은 술이라니, 정말로 너무 설레고 기대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을 함께 할 친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만에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건지.

나는 아필레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감사해요. 황후 마마.”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아필레는 조금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 고마우면 둘이 있을 땐, 이름으로 불러주게.”

그런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리리안을 닮아 있어, 다시 한번 나와 라스를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필레와 리리안을 봐도 그렇지만 그의 표정을 빼닮은 아이를 본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나는 적당한 양의 술과 함께 아필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침대를 하나 더 놔달라고 한 부탁이 무색하게도 자연스레 그녀와 한 침대에 눕게 되었다.

“피오라, 나는 그대가 정말로 좋아. 그래서 누구보다 행복하길 원해.”

조금은 취한 것인지 붉어진 얼굴을 한 아필레는 내가 잠들기 전까지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그 손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잘 자게, 피오라.”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너도, 잘 자.”

“…아필레.”

아까까지만 해도 무겁고 힘들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바리다스가 주는 안정감과는 조금 다른, 오직 친구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나와 아필레가 하루 종일 붙어있는 바람에 아킬레스와 바리다스 또한 함께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먼 나중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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