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200)화 (200/207)

62화. 첫눈과 첫사랑의 끝,

토마가 날 왜?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민트초코를 싫어했다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민트초코를 싫어할 줄이야….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 때문에 먹고 싶지 않은데도 강제로 먹게 된 거잖아.

루비아는 스스로의 눈치 없음을 탓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정말로 미안한데.

민트초코만 아니라 다른 이유가 더해져 미안하다는 감정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루비아는 토마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처음 토마를 보자마자 고백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당연히 그가 고백을 거절할 거란 확신이 있었을 정도로 연정의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루비아는 토마와 레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토마와 레이안이 아직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는 걸 확인한 뒤 루비아는 조심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루비아는 다행히 두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있던 장소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어졌을 때부터 한참을 달린 루비아는 여자 기숙사 앞에 도착한 뒤에야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마음은 고맙기도 했으나,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그 마음에 보답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루비아는 토마가 좋았다.

소설로 보았던 그가 좋았다.

그는 누구나 바랄 만한 남자 주인공이었고.

멋있었으며.

언제나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깨어난 후 그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겪으며 제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웃는 시간이 즐거워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더 좋아졌다.

하지만 같은 의미로 레이안과 엘리아네, 렌도 좋아했다.

그녀에게 토마는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루비아는 현재의 동아리와 아카데미 생활이 좋았으며 그 생활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랜 고민 끝에 루비아는 결론을 내렸다.

하던 대로 하자고.

토마가 자신에게 고백하면 그때 거절해도 늦지 않으니까.

조금 거리만 조절하자고 말이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토마가 친구 그 이상의 관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사랑이란 참 어려웠다.

토마는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마음을 주었고.

자신은 그 사랑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을 돌려주어야 했다.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작은 말과 행동에도 상처받을 정도로 약하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쌓아온 관계를 한순간에 부술 정도로 강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자신이 할 일이 특별히 중요해졌다.

자신은 그 누구도 상처받길 원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어, 루비.

루비아가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엣취!”

재채기를 하고 나서야 날이 평소보다 춥다는 사실을 깨달은 루비아는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진짜 겨울이구나.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겠네.

방금까지 고민하던 게 무색하게도 루비아는 전교 일 등답게 시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루비아의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기말고사의 날짜가 발표되었고.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공부 때문에 두 사람 모두가 바빠 루비아는 토마를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었다.

토마와 루비아 둘 다 천재라는 말보다 노력형에 가까웠으니까.

시험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날은 점점 더 서늘해졌다.

그래도 기말고사만 끝나면 방학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한동안 떨어져 있게 되니까.

토마의 마음도 조금은 식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루비아는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공부에 매진했다.

렌이 걱정할 정도로 노력을 한 덕분에, 성적 유지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 일 등을 했다는 말이었다.

다른 아이들 또한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었으나, 루비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게 일 등의 기쁨에 빠져든 나머지 루비아는 그간 고민하던 중요한 사실을 잊고 말았다.

시험 결과가 나온 다음 날.

아카데미의 방학식이 시작되었다.

“보고 싶을 거야, 렌.”

“나도 그래, 루비. 자주 놀러 갈게.”

이번에는 아버지와 언니가 기차를 타고 데리러 온다 했기에 루비아는 아이들과 함께 갈 수가 없었다.

렌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던 그때 아버지가 타기로 예정했던 기차가 역 안으로 들어왔고.

루비아는 마지막으로 레이안과 토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하와 토마 오빠도 잘 지내.”

기차가 역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것을 확인한 루비아가 뒤를 돌아본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 루비아가 뒤를 돌아보자, 붉게 상기된 얼굴의 토마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붙잡힌 손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해서.

루비아는 깨닫고 말았다.

아니, 알 수밖에 없었다.

토마가 자신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자신이 생각한 것 정도로 쉽게 잊힐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라서.

그의 감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 순간적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자신의 대답은 바뀌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잠깐만, 시간을 내 줄 수 있을까?”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손과 붉게 물든 귀와 뺨.

저 모든 것은 날씨가 춥기 때문은 아닐 것이었다.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계속 받아왔던, 토마의 마음을 돌려주어야 할 차례가.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자.

레이안과 렌 또한 토마의 행동의 적잖아 당황한 기색이었다.

“렌, 아버지와 언니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줘.”

그렇게 말한 루비아는 다시 토마를 돌아봤다.

“나가서 얘기하자.”

루비아는 왜 자신을 좋아하냐는 말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건 자신과 자신을 좋아해 주는 토마 모두를 낮추는 행동이었으니까.

받은 마음에 대한 감사와 정중한 거절.

그것이 가장 좋은 대답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루비아는 기차역 뒤의 공터로 그를 데려갔다.

“날이 추워.”

그렇게 말하며 토마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루비아에게 둘러 주었다.

그 순간 루비아는 느끼고 말았다.

방금 순간적으로 설레고 말았다.

비슷한 또래의 잘생기고 상냥한 남자아이가 이런 친절을 베푸는데 어떻게 안 설렐 수 있을까.

이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에 넘어가지 않겠다 결심하며 루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이 목도리는 마음과 함께, 대답을 한 뒤에 돌려주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잠깐의 정적 끝에 드디어 토마의 입이 열렸다.

“일단, 이 말은 하고 싶어. 나는 이 감정이 내 일방적인 것임을 알고 있으며 너의 주변에는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게 할 것을 약속할게.”

이어진 말을 듣는 순간.

루비아는 깨달았다.

자신은 정말 좋은 사람에게 마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첫사랑은 좋아한 사람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그 감정을 받아본 사람 또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토마 또한 자신에게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처음 자신에게 준 사람이, 토마여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말을 하는 것은 너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전하고 싶다는 이유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이미 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에게 부담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부탁할게.”

받는 위치인 자신도 이렇게 떨리고 있는데.

말하고 있는 토마는 오죽할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루비아는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어, 루비.”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 걱정을 했을까.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그가 자신에게 좋은 처음이 되어준 만큼, 나 또한 그에게 좋은 처음이 되어주고 싶었다.

토마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루비아 또한 오랜 고민을 통해 최대한 좋은 결론을 내렸으니.

“하지만 나는 당장,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아. 그렇기에 나는 그 마음을 받을 수 없어.”

간결하고 확실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거절의 대답은 토마 또한 예상하고 있던 것 같았다.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한 토마는 웃고 있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듯, 밝고 환하게.

“그러니 내가 더 노력할게.”

하지만 들려온 대답과 행동은 루비아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말한 토마는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서 두 발자국 멀어졌다.

“나는 너를 계속 좋아하고 싶고, 아직 너의 마음에 아무도 없다면.”

그렇게 말하는 토마는 정말.

빛이 날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토마의 마음은 자신의 생각보다 쉽게 상처 입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을 향해 올곧게 서 있을 뿐.

그랬기에 루비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었다.

“춥겠다, 들어가자.”

토마는 그렇게 말하며 루비아를 바라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루비아는 목도리를 벗어 그에게 건네려 했지만.

그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아까보다 더 꽁꽁 묶인 목도리를 바라보며 루비아는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이런 배려를 받을 수 없어.”

나는 너의 마음을 거절했는걸.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토마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은 토마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내가 더 노력하겠다고.”

눈이 내렸다.

그의 머리와 손, 어깨 위로.

그건 아마 자신의 위에도 내리고 있겠지.

지금 이 마음은 아직 어린 우리에게 어려운 감정이고 버겁게 느껴지고 있지만.

나중에 분명 좋은 추억과 처음으로 남을 것이라고.

루비아는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고마워.”

그렇기에 자신 또한 웃으며 토마에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첫눈이 내렸고.

첫사랑이 끝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랑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따뜻할 것 같은 겨울이라고.

루비아는 토마가 준 목도리를 만지며 생각했다.

* * *

그 시각, 황궁.

“라스, 눈이 내리고 있어요. 첫눈이에요!”

“그러네요.”

내 말에 자연스럽게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은 바리다스를 보며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걸을까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바리다스는 옷과 코트 장갑과 목도리까지 가져와 나를 입혀주었고.

나는 그의 걱정이 과하다 생각하며 장갑을 벗으려 했다.

“날이 춥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제지당했고.

장갑을 벗고 싶었던 나는 망설이다 그의 손을 잡고 반대 손은 주머니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 내 말에 바리다스는 조금은 혹한 듯했으나 곧이어 고개를 저었다.

“넘어지면 어떡해요.”

“당신이 잡아주면 되죠!”

결국 바리다스는 날 이기지 못했고 벌써 쌓이기 시작한 눈을 맞으며 우리는 함께 정원을 걸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바리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다 했으니, 아마 그럴 겁니다.”

“오늘 방학식일 텐데, 따뜻하게 입었겠죠?”

“생강차가 싫어서라도 분명 그럴 겁니다.”

그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첫눈을 보며 작게 소원을 빌었다. 이번 겨울에도 우리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 순간 어느새 내 위로 올라온 바리다스가 내게 입을 맞추었고.

내가 깜짝 놀라자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하시는 것 같길래.”

요망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진짜로 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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