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쌍둥이의 시선.
“마님, 나와 보셔요. 벚꽃이 피었어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창밖을 내다보자 예정보다 일찍 핀 벚꽃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 벌써 봄이 왔다고 착각이라도 한 것인지 옅은 분홍색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러네, 예쁘다.”
내 대답에 작게 미소 지은 레나는 입을 열었다.
“조만간 도련님들과 아가씨들이 떠나실 텐데, 오늘 식사는 벚꽃 나무 아래서 함께 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도련님들과 아가씨들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레나의 말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벚꽃나무를 바라봤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레몬과 그린도 아카데미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고.
그들은 당연하게도 라이온 아카데미에 지원을 했다.
서류심사는 당연히 합격이었고 조만간 입학시험을 보러 가지만, 아마 두 사람도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린에 비해 레몬은 걱정이 좀 되지만 말이다.
아직도 말괄량이인 레몬을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잠시 그러고 있자니 공허해지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시종들을 대기시키고 아이들을 불러다오.”
내 말에 레나가 방 밖으로 빠져나갔고.
나는 왜인지 텅 빈 것 같은 정원을 바라보며 조금 회상에 잠겼다.
처음 이 저택에 왔을 땐, 내 품에 아이들 모두를 안아줄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성장한 지금은 내 품에 한 번에 안아주기엔 세 명도 벅차.
아이들은 성장하는 게 당연함에도 그들의 시간은 너무나 빠른 것처럼 느껴져서.
왜인지 슬픈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내가 정원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벚꽃이 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인지 레몬과 그린이 강아지들을 데리고 저택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아직 내가 더 커!”
삼 층까지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투닥거리며 말이다.
“무슨 소리야. 이제 내가 더 크지.”
소리치는 레몬에 비해, 여유로운 표정의 그린은 리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그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표정을 굳힌 레몬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떨어지는 벚꽃 때문에 흥분한 루이를 진정시켰다.
“흥, 그래봤자. 아직 리리안 언니보다 작으면서.”
그 순간 여유롭던 그린의 표정이 무너졌다.
리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을 멈춘 그린은 표정을 굳힌 채 레몬을 바라봤다.
“나는 아직 성장기고. 그분이 너무 큰 거야.”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원래 이맘때의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보다 성장이 빠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리리안은 그중에서도 특출났다.
쑥쑥 자란 리리안은 어느덧 나보다 키가 커졌으니 말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무섭다니까.
나는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리리안이 나를 내려다보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리리안도 올해 입학을 한다고 했던가.
리리안은 열네 살로 레몬과 그린보다 한 살이 더 많았으나 그들과 맞춰 입학하고 싶다는 이유로 일 년을 기다려 주었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입학이 자유롭긴 하나, 아이들을 기다려 준 리리안과 레이안에게는 항상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빠른 편인 건 맞지. 하지만 너처럼 매일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으면 키가 그대로 멈추고 말 거야.”
“헛소리, 키는 유전이야. 두고 봐. 나도 형들만큼 자라게 될걸?”
“형들만큼 운동을 해야 그렇게 자라겠지, 바보야.”
이번에는 레몬의 승리였다.
바리다스와 토마의 활동량을 생각한 그린은 입을 다물었고.
레몬은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리 산책만 시키지 말고 다른 운동이라도 좀 해.”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곁을 벗어나 정원을 뛰어놀기 시작한 루이와 리리를 바라보며 레몬이 말했고.
그린은 표정을 구겼다.
“몸으로 하는 건, 나랑 안 맞아.”
그리고 그런 말에 레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우리 가문에서 저런 게 나왔을까.”
음….
차일드 가문의 시작점에 검술이 있긴 하지만, 정확한 시작은 마법사 가문이긴 해?
그쪽에서 검술의 방향만이 발달해 현재의 차일드 가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렌 누나도 그런데, 왜 나한테만 그래.”
하지만 그런 가문의 세세한 역사까지는 알지 못하는지 그린은 렌을 방패로 꺼내 들었고.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레몬은 한참의 고민 끝에 소리치듯 입을 열었다.
“아니, 언니는 성장이 끝났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그 순간, 그린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웃음을 보며 레몬이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뒤쪽에서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리리. 루이 쉿, 언니가 얘기 중이잖….”
하지만 고개를 돌린 레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리리와 루이가 아닌, 렌의 개인 라라였다.
그제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레몬은 렌에게 달려갔다.
“언니, 들어봐. 그니까.”
“아냐, 레몬… 이제 너보다 키가 작은데. 성장이 끝난 게 맞겠지.”
많이 자란 아이들에 비해, 렌은 입학식 때 이후로 키가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
그녀 또한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빨라 더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레몬은 고사하고 조금 더 있다간 자스민에게 따라 잡힐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아냐, 언니 더 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뒤늦은 말로는 이미 렌의 마음을 돌릴 수 없는 듯했다.
렌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너의 생각 잘 알았어, 레몬.”
그렇게 렌이 정원을 빠져나갔고 그녀의 발걸음이 완전히 사라지자, 레몬은 그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 언니 삐졌잖아. 너 때문이야.”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한 그린은 그녀를 무시한 채 리리를 데리고 렌이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으니 말이다.
“나도 같이 가!!”
그런 그린을 따라 레몬도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루이가 또 따라갔다.
귀여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내가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 순간, 레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명대로 전하고 왔습니다.”
“수고했어.”
다시 정원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생각했다.
안 그래도 넓은 이 저택이 더 넓게 느껴질 것만 같다고.
가을도 아니고, 봄을 타는 것인지 텅 빈 정원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쉰 그 순간.
누군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공허함에 사로잡힌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나를 돌려 자신을 보게 한 그는 한 손을 들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제서야 그의 존재를 눈치챈 나는 빠르게 표정을 풀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왜 이리 근심이 많아 보이실까.”
“아무 일 아니에요.”
딱히 걱정을 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혹시라도 오해를 할까, 빠르게 부정했으나.
“아기… 때문이에요?”
이미 늦은 듯했다.
그날, 피오라가 돌아간 이후로 벌써 이 년 가까이 흘렀다.
그 이후로 우리는 천천히 준비를 해 왔으나.
아기를 가지는 것은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시무룩해진 바리다스의 표정을 보자 괜한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절대.”
내 강한 부정에도 바리다스의 표정이 풀리지 않았고.
그의 모습에서 왜인지 아까의 렌이 겹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아니,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야.
너는 진짜 문제없어.
어젯밤만 해도…!!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얼굴이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요,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희 둘 모두 건강하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거예요.”
그 순간 바리다스의 시선이 바뀌었다.
왠지 말을 잘못했다고 느낀 그 순간 환하게 미소 지은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아뇨.
그런 쪽으로는 그만 노력해도 될 거 같아요.
하지만 이미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 * *
“야.”
“왜.”
그 시각, 쌍둥이들은 여전히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나 아카데미 가지 말까.”
예상치 못한 레몬의 말에 그린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진지한 표정으로 저택을 바라보고 있는 레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에 항상 하던 말인 책 읽기 싫다거나 공부를 하기 싫다는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린은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는데?”
“너처럼 뭘 배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나까지 없으면….”
레몬은 뒷말을 흐렸지만, 그린 또한 충분히 그녀의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외로워할까 봐?”
형수님과 형님이.
그리고, 혼자 남게 될 자스민이.
그의 질문에 레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님이 들으면 서운해하시겠네.”
그 순간 이어진 그린의 말에 표정을 구긴 레몬이 그를 바라본 순간.
손을 뻗은 그린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그건 네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야.”
“내가 아니면 누가 신경 쓰는데.”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그린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레몬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무서워, 이렇게 집을 멀리 떠나서 오래 지내야 했던 적이 없잖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형, 누나의 경우는 배우고 싶은 것과 목표가 있었지만.
레몬의 경우 그러지도 않았으며 보호자와 떨어진 적 또한 많이 없었기에 그럴 수 있을 거라 느껴졌다.
“그렇다고 평생 다 함께 있을 수는 없잖아.”
“난 그러고 싶어.”
“하고 싶은 거만 다 할 수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편하겠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린의 손은 레몬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있었다.
“정 입학하기 싫으면 말씀드려 봐,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다정한 말에 레몬은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매일 투닥거리는 쌍둥이지만 그래도 이럴 때는 의지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참으며 레몬은 고개를 끄덕이던 때 그린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만약 입학을 안 하게 되면, 황녀님께 잘 말씀드리고.”
그린은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레몬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황녀님은 알고 있어. 전부터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싫다고 말했는걸.”
그 말을 들은 그린의 머릿속에 약간의 의문점이 생겼다.
그럼 왜, 황녀님은 그 사실을 알면서 입학을 일 년이나 늦춘 거지?
“…그럼 다행이고.”
그린의 대답에 레몬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황녀님은 걱정 안 해도 돼. 이 문제는 더 늦기 전에 솔직하게 말씀드려 볼게.”
“그래.”
그린의 말에 레몬은 그에게 손수건을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나는 식사 전에 조금 쉬다 올게.”
멀어져가는 레몬의 뒷모습을 보며 그린은 생각했다.
황녀님한테 말할 시간에, 혼자 앓지 말고 나나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뭐, 그래도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한 형수님과 형님 모두,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입학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레몬은 그간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두 분이라면 분명 너를 이해해 줄 텐데 말이야.
괜한 고민으로 시간만 끈 것 같다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뒤를 돌아본 레몬이 소리쳤다. 그녀의 말을 들은 그린의 머릿속에는 다시 한번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을 안 하게 된다면 황녀님 잘 챙겨 드려.”
“…그래.”
대체, 왜 황녀님은 입학이 확실하지도 않은 레몬을 기다린다고 일 년이나 미룬 뒤에야 입학하겠다고 정했을까.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