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어린이집 (204)화 (204/207)

66화. 쌍둥이의 시선.

“그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그린은 환하게 미소 짓는 레몬을 보고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 잘했어?”

“응!”

마음을 정한 레몬이 가장 먼저 상담받은 상대는 다름 아닌 그린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사랑을 하고 싶다는 레몬의 말에 그린도 처음에는 조금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레몬이 처음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기에 별말 하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레몬이었다. 제 쌍둥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었으니까.

스스로 희생을 자처한 토마 형과 렌 누나는, 자신과 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은 우리가 처해 있었던 현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모르고 있던 건 레몬과 자스민 둘뿐이었고 그 두 사람의 머릿속은 꽃밭이었으며 여전히 동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 사실을 걱정해 그들에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라고 해 왔으나.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원하는 대로 살아가며 자스민은 역사에 남을 마법사가 될 것이었고.

레몬은 완벽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의 뒤에는 차일드 가가 있으니 말이다.

완벽한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일드 가의 이름 앞에서는 그런 것들은 전부 중요하지 않았다.

권력과 돈, 직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차일드 가가 그녀의 뒤에 있는 이상, 레몬에게 현실성 없는 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좋은 보호자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완벽하고 완전한 환경.

그러니 레몬은 계속해서 자신이 만든 꽃밭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가족이 항상 그녀의 뒤를 지키고 있는 이상.

만약 누군가 너의 꽃밭을 더럽히게 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까.

그것이 황제라 해도 말이다.

환하게 미소 짓는 레몬의 얼굴을 보며 그린은 결심했다.

자신의 형과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레몬과 자스민을 지키겠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 한 공부이니까.

아는 것이 힘이다.

그린이 가장 처음 읽었던 책에서 나왔던 문구였다.

여태껏 그가 레몬에게 계속 책을 읽기를 권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공작가의 사생아였던 자신들은 사고로 인해 공작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정말로 힘없는 어린이에 불과했다.

당장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더라도 지켜 줄 사람 없는 어린이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복형은 그들을 내쫓지 않았고.

그린은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원래 있던 자신의 시종들을 제외한 새로 온 사용인들이 자신들을 천대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것은 시선과 행동에서만 드러날 뿐.

그들은 우리를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린은 공작가의 커다란 서재를 드나들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린이 현실을 직시하고 대처하려 노력할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레몬과 자스민은 자신과 달랐다.

바뀐 환경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은 여전히 차일드 가의 여식이었고 평소처럼 공녀와 같은 생활을 하였다.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그것은 레몬과 자스민이 어림과 동시에 눈치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토마와 렌이 그들을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런 보호 속에서 자랐기에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꽃밭에서 살 수 있는 것이겠지.

차일드라는 이름 아래에, 완전하게 지켜진 꽃밭을.

하지만 온전히 지켜 줄 수 있는 건 어린 시절에 한정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차일드 밖으로 나가게 될 때를 생각하면 그 꽃밭을 언제까지고 우리가 지켜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지식과 경험을 그녀가 책을 통해 쌓고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레몬의 꽃밭을 지키고 있는 울타리는 이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이건 자신이 레몬을 지켰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부러울 뿐이었다.

자신에게 없던 동심과 낭만을 그녀는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은 다른 이의 시선 속에서 강제로 잃게 된 걸 레몬과 자스민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만은 끝까지 지켜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레몬은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나도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그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으니까.

그런 그린의 말에 레몬은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하지, 되게 멋진 사람을 사랑할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한 레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린을 돌아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린은 다시 한번 결심했다.

어떻게든 저 미소를 지켜 주고 싶다고.

“너는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그 누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사랑스럽게 웃는 너를.

그런 그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게 다가온 레몬은 입을 열었다.

“맞아, 그리고 나는 너도 그런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은 그린의 예상 밖의 것이어서.

그린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사랑이라니, 그건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런 그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레몬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우린 쌍둥이니까, 내가 할 수 있다면 너도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쌍둥이.

그 말에 결국 그린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래, 그랬지.

레몬만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차일드 가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나도 내 꽃밭을 가지고 너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그래, 고마워.”

그린은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가 부럽다고 생각해오던.

레몬과 꼭 닮은 순수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런 그의 미소에 레몬은 눈을 크게 떴다가 곧이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같은 표정을 한 쌍둥이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서로를 바라보다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에도 그렇게 좀 웃어봐, 예쁘잖아.”

그 순간 이어진 레몬의 말과 함께 그녀의 등 뒤로 붉은 노을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빛에 그린은 표정을 찡그렸다가 왠지 따스하게 느껴지는 빛에 그린은 다시 눈을 떴다.

“너무 세상을 딱딱하게 생각하지 마, 너의 생각보다 세상은 따뜻하니까.”

그리고 이어진 레몬의 말에 그린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자신은 언제나 현실성만을 강조하며 떠오른 길들 중 최악의 상황만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

꽃밭에 남은 레몬은 걱정할 일도 드물 거라 생각했으나 쌍둥이를 걱정하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레몬도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레몬처럼 꽃밭을 만들게 된다면.

그녀만큼이나 크고 아름다운 꽃밭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 꽃밭을 비춰주는 태양은 레몬일 것이었다.

“그래, 알겠어.”

그린의 대답에 레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중에 빌려줘, 네가 읽는 책들.”

오랜만에 본 그의 장난스런 미소에 놀랄 틈도 없이 이어진 말에 레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든 얼굴을 애써 손으로 가리며 레몬은 그린을 올려다보았다.

“알, 알고 있었어?”

이 정도로 부끄러워할 줄은 몰랐는데.

그린은 언제나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책이라고 취급할 수 없는 쓰레기는 있어도 말이다.

그리고 그린의 기준에서 레몬이 읽은 것들은 책이라고 불러줄 만했다.

꽃밭이 가득한 내용이긴 하나 말이다.

“네 말대로, 동화에서 나올 것처럼 멋진 사랑을 하려면 읽어봐야 하지 않겠어?”

이어진 그린의 말에 레몬의 얼굴은 다시 한번 붉어졌고.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린은 덧붙였다.

“토마 형이 보면 놀라겠다. 네가 자기 머리칼을 잘라 얼굴에 붙인 줄 알고.”

이어진 장난에 붉어진 얼굴을 든 레몬은 한참 동안이나 그린을 노려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절대 안 빌려줘!”

“왜, 읽고 독후감까지 써서 제출해 줄게.”

“아, 싫다고!!”

그렇게 말하며 레몬은 빠른 걸음으로 그린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고.

웃음을 터트린 그린 또한 질세라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뜨르으즈 므.”

그런 그를 자신의 방 앞에 도착할 때까지 무시하던 레몬은 도착한 뒤에야 입을 열었고.

어깨를 으쓱인 그린은 옆 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가 내 방인데?”

그제야 자신과 그린의 방이 바로 옆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몬은 얼굴을 붉혔고.

그 모습을 보며 그린은 생각했다.

꽃밭에 사는 것은 좋은데 최소한의 상식과 기억력은 필요한 것 같다고 말이다.

“아, 몰라. 맘대로 해!”

또 나왔다. 불리해지면 소리 지르고 도망가는 거.

저 버릇은 대체 언제쯤 고치려나.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도 안 고쳐지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든 고쳐 줘야겠다.

그전에 고쳐질지 생각하며 방문을 연 순간이었다.

레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루이, 그거 내려놔!!”

그 목소리에 그린이 뒤를 돌아보자, 무언가를 물고 있는 루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쫓는 레몬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 느껴졌는지 자신에게 도망치는 루이가 물고 있는 것이 책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그린은.

빠르게 자신의 방 안에 준비되어 있던 간식을 가져와 루이에게 집어던졌다.

간식을 본 루이는 바로 책을 내려놓고 간식을 물어 들었고.

그린은 책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낚아채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상황을 파악한 레몬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벌어졌다.

“잘 빌릴게.”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린은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레몬이 아직 그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소리쳤으나.

그녀의 목소리로는 황실보다 더욱 좋은 방음 시설을 자랑하는 차일드 가의 문을 뚫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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