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쌍둥이, 그리고 리리안의 입학식.
리리안의 예상과 다르게 차일드 가의 쌍둥이의 아카데미 입학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세 사람은 한날한시에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학과인 예법과를 지망한 레몬과 리리안은 당연히 가장 먼저 만나게 되었다.
“리리!”
“레몬!!”
두 사람은 서로가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지금의 재회가 더 반가웠다.
편지로는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종이로는 와 닿지 않던 사실을 직접 마주하게 되니 반가움과 기쁨이 보다 크게 느껴졌다.
만나자마자 서로를 얼싸안은 두 사람은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아카데미에 입학을 했다고?”
근처 카페에서 그녀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를 전해 들은 리리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응, 왜?”
내가 이웃 나라의 왕자와 결혼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귀족들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그렇게 말하는 레몬은 순수하고 귀여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상 물적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뭐, 차일드 가가 있으니 불가능한 꿈은 아니려나.
자신이 저런 말을 하고 다녔을 때도 귀족들이 어린아이 같은 꿈을 꾼다고는 비웃었어도 불가능한 꿈이라고는 비웃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불가능한 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리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좋은 꿈이네.”
레몬의 꿈을 친구인 자신이 응원해주지 않으면 또 누가 응원해 주겠는가.
물론 조금 걱정은 되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레몬이 만족할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차일드 가의 뒷배가 있으니 멋진 사랑을 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게 가능하겠지만 본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리리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레몬 주위의 남자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소드 마스터인 첫째 오빠에, 그 못지않게 뛰어난 둘째 오빠, 한날한시에 태어나 천재라 불리는 쌍둥이까지.
레몬의 눈이 낮아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지? 나는 우리 형수님과 오빠 같은 사랑을 할 거야.”
두 눈을 반짝이는 레몬을 보며 리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몬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한심해서.
그래도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그녀와는 다르게 자신은 저런 목표조차 없으니 말이다.
나도 아카데미에 졸업하기 전까지 찾을 수 있으려나.
새로운 목표.
“나는 언니와 아카데미에 다니게 되어서, 정말 기뻐.”
그랬기에, 리리안은 자신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 레몬을 보며 진심으로 기쁘게 웃을 수 없었다.
“웃지 말고, 음료나 받아주지?”
그 순간, 들려온 그린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웨이터가 온 줄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에 그린의 존재 또한 거의 잊고 있었다.
그린의 말에 두 사람의 대회에 끼어들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그냥 네가 받아주면 되잖아.”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은 뼛속까지 귀족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변하지 않은 당당한 리리안의 태도에 그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구겼지만 결국 웨이터에게서 두 사람 몫의 음료를 받아 건네주었다.
“고마워.”
“그래, 고마워.”
감사 인사를 하긴 했으나 리리안의 눈빛에 진작에 좀 줬으면 좋지 않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그린은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졸업하기 전까지 이 두 사람과 같이 다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나랑 레몬 둘 다 예법과니까, 점심시간 때 데리러 와.”
그리고 이어진 말에 깨달았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조기 졸업한다, 내가.
그린은 그렇게 결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넌 무슨 학과야?”
“정치학과랑 역사학과.”
하지만 방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하나만 다니고 조기 졸업해서 공부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두 소녀에게 끌려다니는 미래를 상상한 그린이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리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개면 매번 왔다 갔다 하기 힘들 거 같은데, 그냥 식당에서 봐도 괜찮고.”
그렇게 말한 리리안은 바로 그린에게서 시선을 떼고 레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작했고.
그린은 생각했다.
…조금은 천천히 해도 괜찮을지도,
물론 그 생각은 바로 이어진 리리안의 말에 다시 바뀌고 말았지만.
“아, 그리고 나도 공부는 좀 잘하거든? 이번에 네가 수석 자리를 차지 못하게 돼도 난 모른다?”
죽어도 수석 입학에 조기 졸업이다.
각 학과마다 수석 입학자를 뽑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들 중에서도 성적이 가장 좋은 수석 입학자 또한 있었다.
대부분 신입생 대표라 불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 정도로 절 이기시려는 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그린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리리안이 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똑똑한 편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이유 없는 자신감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조금 불안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당연히 자신이 신입생 대표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입학할 거라 생각하며 수석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두 사람에 비해 레몬은 상당히 자신감이 없는 표정이었다.
“근데, 나는 사실 자신 없어.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떡해?”
기 싸움을 하던 두 사람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레몬의 말에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솔직히 수석은 못 주더라도.
어느 정도 생각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차일드 가의 영애를 떨어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입학 자체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순수한 레몬 앞에서 이런 정치적 사유를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 너라면 분명 합격할 거야.”
“그래, 맞아.”
보통 이런 상황에서 하는 말에는 너 정도 노력했으면 충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레몬의 경우 조금 다르긴 했다.
너는 차일드 가니까 될 거야. 정도의 의미였으니까.
어쩔 수 없긴 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공부를 해온 리리안과 열심히 해온 그린에 비해 레몬은 지금까지 공부를 정말로 거의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레몬을 응원해주고 있던 그 순간.
먼저 아카데미에 들러 선생님들께 인사를 마친 토마와 렌, 레이안이 뒤늦게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얘들아, 아카데미 견학해도 괜찮을 것 같아.”
올해는 피오라와 바리다스가 바빠 아이들과 함께 와주지 못했다.
때문에 미리 입학해 아카데미를 잘 아는 세 사람이 대신 안내해 주기로 했다.
“알겠어!”
그 말에 신이 나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은 방금까지 했던 걱정들은 모두 잊은 채 아카데미를 견학할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거기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입학시험이 끝난 뒤, 세 사람 모두가 놀랄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사고가 좀 있었던 렌과 토마, 레이안의 입학식과는 다르게 세 아이의 견학은 평화롭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흘러갔고.
걱정했던 레몬까지도 잘 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시험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입학시험과 함께 견학까지 마친 아이들은 다 함께 수도로 향했다.
라이온 아카데미는 차일드 가가 있는 델아트보다 수도에서 더욱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들의 합격 여부가 황궁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결과였기에 아이들은 물론 아필레와 아킬레스까지 모여 그들의 시험 결과를 지켜보았다.
가장 먼저 시험지를 펼친 것은 다름 아닌 그린이었다.
다른 이유보다, 가장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과목 모두 필기는 가채점 결과 만점이었고 문제가 될 것은 실기였다.
역사학과의 실기는 토론이었고. 정치학과의 실기는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론에서는 완벽한 승리, 그리고 발표는 당당한 태도와 정확한 발음으로 좋은 호응을 얻어냈으며 질문 또한 완벽하게 대답했다.
나야 뭐, 당연히 만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린은 성적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린이 당연히 시험을 잘 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험 결과는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그린의 필기는 두 과목 모두 만점이었지만.
토론과 발표에서 그들의 예상보다 점수가 낮았던 것이었다.
물론 낮은 점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성적으로는 신입생 대표는커녕, 두 과목의 수석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린은 성적표 아래에 달린 교수의 코멘트를 읽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위 학생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틀에 끼워진 답변만 할 뿐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감점 요소입니다.
당연했다.
그린은 지금까지 그렇게 공부해 왔으니까.
반박할 수 없는 평가에 그린은 할 말을 잃고 입술을 짓씹었다.
그린을 제외한 모두가 그의 성적표에 감탄하며 그를 칭찬해 주었으나.
그린은 절대 만족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성적표를 읽은 것은 리리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성적표를 본 그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리안의 종합적인 성적이 그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필기에서 한 문제를 틀린 것을 제외하면 실기는 만점이었고 교수님의 코멘트 또한 그녀가 완벽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된다면 분명 신입생 대표로 단상에 서게 되는 것은 리리안일 것이었다.
모두가 리리안을 축하해 주었으나 그는 완전히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축하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몬.
합격 여부를 걱정했던 레몬답게 모두는 그녀가 합격한 것만으로도 축하해 주었다.
레몬은 필기에서는 평균 미만의 성적을 보였으나, 다행히도 실기에서 그 모든 것을 보완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린보다 높은 점수를 말이다.
그것을 확인한 그린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두 사람의 과목이 다르고 레몬이 선택한 과목인 예법은 레몬이 유일하게 공작가에서 들었던 몇 안 되는 수업이긴 했다.
예법은 귀족 영애라면 무조건 갖춰야 할 필수 소양 중 하나이니 말이다.
그만큼 예법과는 경쟁률이 높다는 뜻이었으며.
레몬이 다른 영애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으나, 여전히 그린의 마음은 무거웠다.
다름 아닌, 노력 한 만큼의 결과를 자신만이 내지 못한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이야기가 바뀐 틈을 타 그린은 혼자 방을 빠져나와 리리와 함께 정원으로 향했다.
멍하니 리리를 산책시키며 정원을 걷고 있던 그때 누군가 그를 불러세웠다.
“야.”
리리안이었다.
새침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온 리리안은 입을 열었다.
“신입생 대표는 너일거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자신이 신입생 대표일 것라고 자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녀가 자신을 배려하고 위로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조금은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황녀님이 저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받았으니. 황녀님이실 겁니다.”
그런 속 마음을 숨긴 채 그린은 입을 열었고.
자신의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래, 복수전공이 누구나 쉽게 하는 걸로 보이나. 무조건 너니까. 그렇게 죽상 하지 마라?”
그렇게 말한 리리안은 그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준 뒤 자리를 벗어났고.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그린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가 헝클어트린 머리를 정돈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누가 언제 죽상을 지었다고.”
그의 귀에는 어느샌가 붉은 홍조가 자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