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0)화 (1/163)

<프롤로그>

0.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꼬마, 이리 와.”

날 부르는 목소리가 꿀처럼 달콤했다.

내가 귀를 쫑긋 세움과 동시에, 날 무릎에 앉혀 두었던 흑발 금안의 미남자가 살벌하게 두 눈을 부릅떴다.

“안 돼, 아직 시간 안 지났다.”

지크프리트 폰 오를레앙.

제국 유일의 공작가인 오를레앙의 수장이자, 소드마스터이며, 내 첫째 아빠다.

또한 마왕의 목을 직접 잘라 낸 영웅이기도 하지.

“티티가 무릎에 앉는 시간은 공평하게 10분씩 갖기로 했잖은가?”

“그거야 꼬마 마음이지. 네가 무슨 권리로 꼬마가 내게 오는 걸 막는데?”

첫째 아빠의 엄중한 항변에, 활짝 핀 한 떨기 장미꽃처럼 화사한 미남이 팔짱을 끼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키리오스 에르하르트.

제국의 마탑주이자, 대마법사이며, 내 둘째 아빠다.

키리오스 아빠가 시전했던 수많은 마법들은, 용사들이 마왕성으로 진입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키리오스가 허리를 굽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들어 봐, 꼬마. 지크프리트야 매일 우리 꼬맹이를 보지만, 이 아빠는 가끔씩만 널 만날 수 있잖아?”

“우음…….”

“그러니까 아빠는 이런 때라도 꼬마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정말 안 될까?”

나는 데록데록 눈동자를 굴렸다.

그,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고……?

그런 판단에, 슬그머니 첫째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키리오스, 어떻게든 티티를 꾀어내려는 그 치졸한 짓은 그만두지?”

“내가 왜? 당장에라도 꼬마를 안아 들고 내빼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기라고.”

음, 두 아빠 사이에 어쩐지 전기가 파지직 튀는 느낌이 드는데.

내 착각일까?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동시에 둘째 아빠가 나를 돌아보았다.

언제 기 싸움을 했냐는 듯 사르르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니면 우리 꼬맹이도 아빠랑 같이 마탑으로 갈래? 이 아빠만 믿어, 내가 꼬마를 마탑의 공주님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정말, 다들 유치하게 왜 이러십니까?”

때마침 셋째 아빠, 세자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이 앞에서 아빠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면 어떡합니까?”

“아니, 그건 지크프리트가 꼬마를 독점하려 하니까……!”

“애초에 키리오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문제 아닌가?”

두 아빠가 나란히 언성을 높였다.

동시에 셋째 아빠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물론 우리 티티 양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똑똑하고 상냥한 딸아이니까, 당신들이 이렇게 유치해지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

“…….”

나는 물론이고, 한참을 아웅다웅하던 두 아빠들까지 뜨악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셋째 아빠가 뻔뻔한 낯으로 이쪽을 마주 보았다.

“왜, 뭘 그렇게 봅니까?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참고로 이제 시간 다 지났습니다. 다음 차례는 접니다.”

세자르.

빛의 신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대사제이자, 내 셋째 아빠였다.

마왕과 대치할 적, 세자르 아빠의 신성력이 없었더라면 다른 아빠들도 이렇게 몸 성히 돌아올 수는 없었을 테지.

그러니까 현 상황을 정리하자면.

내가 누구의 무릎 위에 앉을지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고 있는 저 세 남자가, 다섯 마왕을 토벌함으로써 인간계를 구원한 세 용사들이고.

……또한 내 아빠들이라는 소리다.

보다 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아빠들, 싸우디 마.”

어느새 토론에 열중하고 있던 세 아빠가 흠칫하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부러 양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티티가 제일 조아하는 사람은 아빠들인데…… 아빠들이 싸우면 시러요. 응?”

“미안하다!”

“아빠들이 잘못했어!”

“티티 양, 마음 상하지 말아요!”

아빠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죄와 위로를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아빠들이 보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씩 웃었다.

‘좋아, 오늘도 완벽해.’

사실 내게는 아빠들이 알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이 세계의 최종 보스이자, 진짜 마왕이라는 사실이었다.

‘뭐, 그래 봤자 지금은 한 대 툭 치면 죽어 버릴 정도로 연약한 꼬맹이지만…….’

그래서 내게 세운 생존전략은 바로, 이 세계의 최강자들인 용사들 휘하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성장하는 것!

나는 아빠들을 향해 최대한 예쁘게 웃어 보였다.

‘나 폭주 안 할게. 거기다 어른이 되면 조용히 떠나 주기도 할게. 그러니까…….’

아빠들도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안전하게 키워 줘야 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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