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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3)화 (4/163)

<3화>

끄덕끄덕.

아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지크프리트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이런 경우는 학계에서도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것으로 아는데.’

애초에 인간과 마족은 외양이 비슷할지언정 다른 종족이었다.

게다가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타 종족을 극도로 배척한다.

마족과 인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가 마왕성의 노예로 일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눈앞의 아이는 딱 봐도 인간의 피가 훨씬 강하게 발현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마기조차 희미하니, 마족들이 이 아이를 인간으로 생각하며 노예로 삼았다는 것도 이해는 갔다.

마왕성은 상주 노예를 두지 않으니, 아마 밖의 노예 관리장에서 들여왔다가 때마침 전투가 벌어져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듯싶었다.

‘노예 관리장이라.’

마족들이 타 종족들을 저와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소.

지크프리트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턱대고 이 아이를 믿기에는 미심쩍은 게 너무 많아.’

한참 아이를 관찰하듯 바라보던 지크프리트가 불쑥 물었다.

“나이가 무척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지?”

“네 살이요.”

“……네 살이라.”

아직 가족들의 품에 있어야 할 나이인데, 벌써부터 노예라니.

지크프리트는 어쩐지 입 안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저절로 누그러졌다.

“알고 있나? 인간과 마족 사이의 혼혈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존재한 적 없었다.”

“아라요.”

“네 존재 자체가 무척 희귀한데, 넌 어떻게 네 출생에 대하여 알게 된 거지?”

그 서슬 퍼런 질문에도 아이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엄마가 알려 줘써요.”

“…….”

엄마.

그 천진한 대답에, 지크프리트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렇지, 이 아이에게도 분명 부모가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 부분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비밀로 하라고 해써요.”

“…….”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 들키면 안 댄다구, 입 꼭 다물고 이써야 한다고요.”

지크프리트의 손아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아이가 종알종알 말을 이었다.

한참을 말을 잃었던 지크프리트가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네 어머니는…… 아니, 됐다.”

아이의 어머니가 인간이든, 혹은 마족이든 그 끝은 그리 평온했을 것 같지 않다.

만약 부모가 멀쩡하게 살아 있었더라면, 이 조그만 아이를 이렇게 혼자 내팽개쳐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영 입맛이 쓰다.

때마침 아이가 간절한 눈빛으로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저 이제 놓아주시면 안 대까요?”

“…….”

“아저씨 말구 다른 아저씨들도 치료해 조야 하는데…….”

“…….”

한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크프리트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멱살을 놓아 주었다.

그러고는 불쑥 물었다.

“그런데 너, 왜 우리를 치료해 주는 거지?”

다소 모난 질문이 튀어나온 이유는, 솔직히 아직까지 아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해서였는데.

“아프자나요.”

아이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허를 찔린 지크프리트를 향해, 아이는 배시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엄마가 그래써요, 아픈 사람은 일단 안 아프게 해 조야 하는 거라고요.”

“…….”

지크프리트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로 결심한 용사인 자신은, 저 당연한 진리를 여태까지 잊어버린 채 살고 있었잖은가.

아무리 적진인 마왕성이고,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지만.

저렇게 조그맣고 연약한 어린아이를 겁박했다니…….

“……가 봐.”

스스로에 대한 수치스러움에, 지크프리트는 억눌린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하는가 싶던 아이가 이내 발랄하게 인사했다.

“구럼 푹 쉬세요!”

아이는 꾸벅 배꼽 인사를 하고는 휙 자리에서 돌아선다.

그러고는 저 멀리 누워 있는 키리오스와 세자르에게 다가섰다.

밤톨만 한 아이가 바지런히 움직이며 두 사람을 간호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크프리트는 온몸을 짓누르고 있던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다들…… 살아 있구나.’

비록 두 사람 모두 혈색이 좋지 못했고, 아직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는데…….’

지크프리트는 제 몸을 살폈다.

그의 생명을 갉아먹던 마기는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마기의 근간인 다섯 마왕이 모두 사망해서 그런 거겠지.’

힘을 사역하던 주인이 사라졌으니, 마기 또한 자연스럽게 소멸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게다가 마왕성으로 진입하기 전에 주변의 병력들도 모조리 쓸어버리고 왔으니까…….

‘지금 당장은 안전하다.’

그런 판단이 서자마자 순식간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지크프리트는 기절하듯 잠들었다.

꿈조차 없는 다디단 잠이었다.

* * *

대충 세 용사들이 완전히 목숨을 건졌음을 확인한 후.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기나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들키는 줄 아랐네…….”

아니, 내가 인간의 몸으로 마기를 품고 있다는 건 어떻게 눈치챈 거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미리 머릿속으로 지크프리트가 질문할 상황을 상상해 둬서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정말, 의심병 환자 가트니라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급한 대로 있지도 않은 엄마를 핑계 삼아 대충 둘러댔는데, 그래도 대충 믿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가슴을 쓸어내리던 나는, 마음 깊은 곳에 꾹꾹 쌓아 놨던 분노를 구겨진 모포에 풀었다.

“아니, 나 아니었으면 주거쓸 사람이!”

퍽퍽!

“은혜를 갚지는 모탈망정, 너무 까칠한 거 아냐?!”

퍽퍽, 퍽퍽퍽!

“감히 내 멱살을 자바? 콱 죽게 내버려 둘 걸 그래써!!”

퍽퍽퍽퍽퍽!!

그렇게 몇 번이나 모포에 노여움 가득한 발길질을 하던 중.

나는 갑자기 기침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콜록, 콜록콜록!”

한참을 그렇게 입을 틀어막고 기침하던 중.

목 안쪽에서부터 울컥 올라오는 비릿한 맛에, 나는 질색하며 그를 토해 냈다.

“우에엑!”

핏덩이가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우우, 비려…….”

나는 질색을 하며 손에 묻은 핏자국을 대충 수건에 문질러 닦았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 익숙한 일이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현상은.

‘아까 용사들의 마기를 걷어내다가 무리해서 그런 거지.’

마족에게는 보통 고유의 마기가 있다.

그 마기가 모자라거나, 과잉 공급이 되면 지금처럼 피를 토하거나 쓰러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예전에는 다른 마족들에게 마기를 갈취당할 때마다 저런 증상을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용사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마기들을 회수하다가 마기가 과잉축적이 된 것이다.

물론 내 몸이 워낙에 연약해서 무리가 됐을 뿐.

객관적으로는 그리 많은 양의 마기는 아니었다.

보통의 마족이라면, 마기가 과잉축적 되기 전에 몸이 알아서 잘 조절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나는 인간 혼혈이라서 그런지, 마기 제어가 영 어려웠다…….

‘이 정도로도 힘들어하다니, 내 몸이지만 진짜 무능하다…….’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이던 나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겉보기에 많이 아파 보일 뿐이지, 당장 죽지는 않을 테니까.’

뭐, 굳이 따지자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처지이기는 하다.

나는 반인반마였고, 내 마기는 내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를 배척하니까.

내가 마기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그만큼 생명력이 깎여 나간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여유로운 이유는…….

‘그야, 원작에서 타티아나는 25살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걸.’

타티아나가 완전히 마왕으로 각성하는 나이가 25살이다.

그리고 마왕으로 각성하려면, 마기를 제어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 말은 즉.

최소한 원작의 타티아나는, 마기 제어를 실패해서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내 나이가 아직 네 살이니까, 무려 21년의 여유시간이 남아 있다는 거잖아?

그동안 어떻게든 마기를 다스릴 방법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피를 토하는 증상은…….

‘마기가 안정되기만 하면 금방 사라질 테니까.’

아마 내일쯤 되면 멀쩡해지겠지.

“대따 대써, 잠이나 자자.”

나는 미간을 좁히며 꼬물꼬물 모포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증상이, 추후 용사들에게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고.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온 성을 뒤지기 시작했다.

용사들을 치료하려면 깨끗한 천과 물, 그리고 약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 세탁실로 가 봤는데…….

‘아니, 이건 무슨…… 신세계잖아?!’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전투에 휘말리지 않은 세탁실은, 곳곳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먼지 한 톨조차 없었다.

모든 물자가 넉넉했다.

고위 마족들이 입었을 법한 값비싼 비단옷은 물론이고, 사용인들의 제복들까지 잔뜩 걸려 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수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구급상자를 찾아냈다는 것!

소독약과 연고, 붕대 정도만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딘가 싶었다.

‘나는 그 더러운 방구석에 처박아 둔 채 너희들만 잘 먹고 잘살면 다니? 치사해 죽겠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일단 커다란 세탁물 바구니부터 끌어냈다.

내 몸이 통째로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바구니에, 온갖 물건들을 쓸어 담았다.

그러던 중.

나는 찬장 꼭대기에 차곡차곡 개켜져 있는 깨끗한 수건들을 발견했다.

‘음, 어떻게든 저걸 꺼내야겠는데.’

하지만 아무리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봐도, 찬장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낑낑거리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효, 안 되게따.”

의자라도 끌고 올 요량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흐아악!”

깜짝 놀란 나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어느새 세탁실에 들어온 지크프리트가 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들어왔으면 아는 척을 하던가, 하다못해 인기척이라도 좀 내던가!

심장 떨어지겠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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