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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4)화 (5/163)

<4화>

“정말, 소리 좀 내구 다녀요!”

“놀라기는, 누가 보면 유령이라도 본 줄 알겠군.”

삐딱하게 대꾸한 지크프리트가 이쪽으로 척척 다가왔다.

아니, 벌써 돌아다닐 수 있는 거야?

인간들 중에 최강자라는 말은 들었지만, 저 괴물 같은 회복력은 도대체 뭐람?

한편 지크프리트는 손을 쑥 뻗어서 수건들을 꺼내고는, 내 옆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여기다 넣으면 되나?”

“네! 고맙슴미다!”

나는 얼른 배꼽 인사를 했다.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그 바구니는 도대체 뭐지?”

“제가 찾아내써요. 물건들을 옮기려구요.”

보아라, 내가 이렇게 믿음직한 사람이란다.

난 자신만만하게 지크프리트와 시선을 맞추었다.

지크프리트는 오묘한 눈빛으로 바구니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걸…… 네가 들고 간다고?”

“네, 바닥으로 끌고 가면 대요!”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런 날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지크프리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어? 제가 가꼬 갈 건데!”

“됐다. 네 걸음걸이로는 10년이 지나도 저 바구니를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군.”

그렇게 선언한 지크프리트가 나를 앞서 걸음을 옮겼다.

“치이.”

기껏 도와줄 거라면 좀 곱게 도와주면 덧나니?

나는 양 뺨을 부풀리며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환자인데 이런 거 해두 대요?”

“너 같은 어린아이를 부려먹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다.”

흥, 허세 부리기는. 내가 마기를 거둬 주지 않았더라면 진작 넌 죽은 목숨이었단다.

나는 지크프리트가 보지 못하도록 입술을 삐죽였…… 다고 생각했지만.

“왜 그런 표정이지?”

아차, 들켰네.

나는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아무거또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눈을 피하지?”

“제, 제가 언제 눈을 피해따구 그러세요?”

지크프리트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때.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누군가가 삐딱한 목소리로 지크프리트를 불렀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묶어 늘어뜨린 미청년이었다.

비스듬히 서 있는 자세가 묘하게 건들건들한 느낌을 주는데, 그 느낌 자체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키리오스.”

맞네! 드디어 대마법사도 깨어났어!

나는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동시에 키리오스가 진녹색 눈동자를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 바구니는 뭔데? 옆에 금붕어 똥처럼 달고 온 저 꼬마는 또 뭐고?”

뭐? 금붕어 똥?

이 자식,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말본새 보소?

……라고 언성을 높일 용기 따위, 내게 있을 리가 없었다.

참자, 내 안락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하느니라.

나는 경련하는 입술 끝을 한껏 위로 밀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티티예요!”

최대한 활짝 웃어 보였지만, 키리오스의 냉담한 표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가 약이랑 붕대랑 갖고 와써요!”

“…….”

“다쳤자나요, 약 발라 주께요!”

“…….”

그으, 지금 나 벽이랑 말하고 있는 거니?

대답이라도 좀 해주지 않을래?

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보다 못한 지크프리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가 여러모로 신경이 곤두선 건 이해하지만, 어쨌든 저 애가 우리를 치료해 준 건 맞다.”

“…….”

키리오스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다 말고 휙 돌아섰다.

“그걸 누가 모른대? 치료 좀 해 줬다고 홀랑 넘어가서는…….”

“키리오스.”

“도대체가, 마왕성에서 만난 꼬마를 어떻게 믿어? 혹시 저 꼬마가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거라면 어쩔 거냐고.”

살벌하게 쏘아붙인 키리오스가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나는 찔끔하고 말았다.

‘드, 들켰나?’

안 되는데, 이래서야 내 보호자 육성 계획에 대한 커다란 차질이……!

그런데 그때.

지크프리트가 다독이듯 입을 열었다.

“저 말은 신경 쓰지 마라. 워낙에 심사가 뒤틀린 녀석이라.”

……어쩐지 지크프리트의 표정이 좀 미안한 것처럼 보이는데, 내 착각인가?

어쨌든 내 소중한 보호자 후보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난 최대한 해맑게 대답했다.

“갠차나요, 어차피 저 시러하는 사람 많아요!”

사실 뭐, 이 정도 텃세는 어린애 장난이지.

마족들 사이에서 인간 혼혈로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 구박은 가볍게 흘려 넘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지크프리트는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금빛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고 있는데?

게다가 열렬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봤더니, 어느새 키리오스 또한 슬그머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헉, 눈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멈칫했지만.

아냐, 쫄지 말자.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날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거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져 먹은 나는 키리오스를 향해 방글방글 웃어 보였다.

“…….”

키리오스는 흠칫 어깨를 굳히는가 싶더니,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뭐야, 저거?

왜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거지?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뚱한 목소리로 키리오스를 타박했다.

“그냥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지 그러나?”

“누, 누가 미안하대?!”

그렇게 대꾸한 키리오스가 쿵쿵거리며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크프리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대신 사과하지. 저 녀석은 아무래도 평생 철이 안 들 모양이야.”

“너, 누가 뒤에서 내 험담하랬어?”

그새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키리오스가 와락 언성을 높였다.

어휴, 귀도 밝지.

하지만 이미 수많은 마족들에게 단련된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갠차나요. 제가 시를 수도 있죠, 다 이해해요.”

“…….”

“…….”

그러자 지크프리트와 키리오스 모두, 묘하게 복잡한 얼굴이 되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내가 뭐 말실수라도 했나? 다들 반응이 왜 이래?

* * *

중앙 홀로 돌아가자, 곤히 잠들어 있는 세자르가 보였다.

‘그러고 보면,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세자르라고 했지.’

애초에 신성력과 마기는 상극의 힘이다 보니, 몸에 가해지는 부담 자체가 가장 컸을 터.

그래서일까, 다른 두 용사들은 벌써 깨어났는데도 세자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타박타박 세자르 곁으로 다가갔다.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의 시선이 집요하게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나 세자르 안 잡아먹거든?!’

속으로 잔뜩 으르렁거리면서도, 나는 조금 입안이 씁쓸해졌다.

뭐, 나를 왜 의심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으니까.

인간과 마족의 반목은 무척 오래되었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

반인반마인 나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바구니 주세요.”

나는 지크프리트의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그렇게 잡아당기지 않아도 바구니는 내려놓을 생각이다.”

핀잔을 준 지크프리트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내게 묻는다.

“세자르의 치료는 내가 전담해도 되는데.”

“아녜요, 저도 할 수 이써요.”

고개를 붕붕 내저은 나는, 바구니에서 약과 붕대들을 꺼냈다.

내가 이렇게 너희에게 점수를 따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단다.

그러니 좀 예쁘게 봐 주라, 응?

나는 세자르의 상처 입은 팔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상처 회복이 다 안 됐네…….’

비록 내가 마기를 걷어내기는 했지만, 애초에 마기가 잠식됐던 상처는 신성력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회복을 돕는 약 정도는 사용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 치유력에 기대야 한다고.

‘일단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갈아 주자.’

나는 결연하게 약병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헉!”

상처 위에 소독약이 왕창 쏟아져 버렸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키리오스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그, 엄청 따가울 것 같은데…….”

나, 나도 알거든?!

상처의 쓰라림이 상당한지, 잠든 세자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난 울상이 되어 넘쳐흐른 소독약을 얼른 닦아 냈다.

하지만 난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단단하게 감겨야 할 붕대가 자꾸만 흐물흐물 풀리는 것이다!

보다 못한 키리오스가 나섰다.

“야, 꼬마. 붕대는 내가 감아 줄 테니, 넌 저리 비키…….”

그런데 그때.

“어?”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세자르의 은빛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천천히 눈꺼풀이 열린 것이다.

흐릿했던 회색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여긴……?”

오래 잠들었던 사람 특유의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용사가 당장 세자르에게 달려들었다.

“야, 세자르! 정신이 들어?!”

“몸은 어떤가, 괜찮나?!”

한편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세자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으와아, 어떡해. 대사제가 깨어났어……!’

언젠가는 깨어날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됐는데!

내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에도 똑똑히 서술되어 있었는걸.

‘빛의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대사제 세자르는, 세 용사들 중에서도 가장 마족들을 혐오했다.’

……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세자르가 나를 꺼리기라도 한다면…….

때마침 온화한 회색 눈동자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헉, 눈이 마주쳤어!’

나는 반사적으로 긴장하고 말았다.

동시에 세자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가 싶더니,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사?”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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