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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5)화 (6/163)

<5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

“…….”

“…….”

저 말을 들은 당사자인 나는 물론이고,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도 뜨악한 얼굴이었다.

멍하니 날 바라보던 세자르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실례했습니다. 이 어린 숙녀분께서는 누구시지요?”

“타, 타티아나 임미다…….”

뭐야, 생각보다 날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나는 조금 안도했다.

때마침 키리오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야, 세자르! 너는 우리는 보이지도 않냐?”

그러고는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이 되어 세자르를 흘겨본다.

“너, 꼬마가 귀여워서 그러지? 사제 주제에 그렇게 외모에 마음이 흔들리면 어떡해?”

그러자 세자르가 정색을 했다.

“세상의 모든 귀여운 것들은 사랑받아야 마땅합니다.”

“…….”

“조그마한 동물 친구들도, 천사 같은 어린아이들도 모두 소중하게 대해져야만 하죠.”

그렇게 기나긴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눈앞의 이 숙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천사라고 착각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음, 다 괜찮은데. 귀에서 피 날 거 같아…….

차마 내 편을 들어주는 세자르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난 그냥 어색하게 배시시 웃었다.

불만스럽게 세자르를 바라보던 키리오스가 불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우리는?”

그러자 세자르가 세상 끔찍한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와락 미간을 구겼다.

“아니, 당신들처럼 징그러운 성인 남자들까지 제가 신경을 써야 합니까?”

“…….”

나는 입을 딱 벌렸다.

그, 원작에 서술되지 않아서 나도 잘 몰랐는데.

사실 세자르는 어린애와 동물 한정 박애주의자였나 봐…….

한편 세자르는 제 팔에 감긴 붕대를 힐끔 내려다보나 싶더니,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여태껏 타티아나 양이 저를 간병해 주신 건가요?”

“네에…….”

나는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 붕대 꼴이 저게 뭐람.

이래서야 간병을 통해 점수를 따려는 내 계획이 엉망이 되잖아!

그런데 그때.

“후후.”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응? 웃는다고?’

난 반사적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세자르를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세자르가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타티아나 양이 눈을 피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만.”

음,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의 눈꼴시어 죽겠다는 표정은 무시하도록 하자…….

“저 때문에 고생이 많았군요. 감사합니다.”

“아녜요, 제가 하고 시퍼서 한 거예요!”

난 냉큼 대답했다.

다행스럽게도 ‘용사들의 호감도 상승 대작전’은 아직 실패하지 않은 것 같다.

세자르가 팔을 휘감은 붕대를 능숙하게 다시 감으며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세자르입니다. 앞으로는 세자르라고 불러 주세요.”

우와, 진짜 상냥해…….

당신 혹시 등에 날개라도 달려 있는 거 아닌가요?

까칠한 지크프리트와 키리오스에게 이리저리 시달리다 보니, 세자르와 대화를 나누는 지금이 흡사 천국처럼 느껴졌다.

고마운 마음에, 나는 최대한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럼 저두 티티라고 불러 주세요!”

“…….”

순간 세자르가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처럼 중얼거린다.

“……여워.”

“응? 모라고 하셔써요?”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자르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어쩐지 세자르의 얼굴이 조금 달아오른 것 같은데.

설마 열이 나는 건 아니겠지?

* * *

그 후.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세자르는 여태껏 끼니를 굶었을 테니, 무언가 음식이라도 갖다줄 요량에서였다.

그런데 그런 내 뒤를 자꾸만 졸졸 쫓아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아, 정말 거슬리네!!’

나는 두 눈에 힘을 주고 휙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키리오스가 뻔뻔하게 내게 되물었다.

“뭘 봐?”

아니, 그쪽은 왜 자꾸 날 쫓아오는 거랍니까? 귀찮아 죽겠네!

……라고 신경질을 낼 수 있는 용기 따위, 내게는 없었다.

“아무거또 아니에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억누르며, 나는 방긋 눈웃음을 지었다.

후, 참자 참아.

나에게는 목적이 있잖아?

저 망할 용사들을 보호자로 삼아서 무사히 어른이 되어야만 해.

그래야 마왕으로 각성도 하고, 나를 괴롭혔던 작자들에게 복수도 하지!

키리오스가 들으란 듯이 빈정거렸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 표정이야? 내 눈에는 당장 날 한 대 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 진짜 명치 한 대만 세게 치고 싶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움켜쥔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안 돼, 참아야만 해.’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나는, 애써 입가를 밀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에이, 그럴 리가 업자나요.”

“…….”

그러자 키리오스가 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넌 도대체 뭐가 문제니?

그러나 계속해서 키리오스와 신경전을 해 봤자, 손해를 보는 사람은 나였으므로.

나는 그냥 얌전히 주방 안으로 들어가는 쪽을 택했다.

그와 동시에 키리오스가 쏙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가 주방이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펼쳐진 주방의 정경은, 아까 전 방문했던 세탁실을 연상시켰다.

때마침 키리오스가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무슨…… 이렇게 사치스러운 주방은 처음 봤네.”

그건 나도 동감이었다.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한 주방 안쪽으로, 온갖 요리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보존마법이 걸려 있는 찬장이었다.

찬장 안에는 각지에서 공수해 온 희귀한 재료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는데.

‘솔직히 이 요리 재료들 중에 반도 못 알아보겠어…….’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던 나는, 일단 익숙한 재료들만 추려 보았다.

양파와 베이컨, 감자, 계란, 올리브유, 부드러운 흰 빵, 그리고 우유와 치즈.

그 재료들을 앞에 둔 채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환자식이면 역시 수프 가튼 걸 끓여야 하까요?”

“뭐, 환자식?”

키리오스가 코웃음을 쳤다.

“환자식은 무슨. 세자르 그 자식, 쇳덩이도 씹어 먹을걸?”

“그래두 아프시자나요.”

“일단 정신을 차렸으니 됐어. 금방 회복할 테니 꼬마는 걱정할 필요 없…….”

그렇게 설명하던 키리오스가 와락 짜증을 냈다.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구구절절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 제가 설명해 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나는 키리오스를 흘겨보았다.

조금 멋쩍었는지, 키리오스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내게 물었다.

“너, 요리할 줄은 알아?”

“우음…… 하다 보면 되겠져.”

그렇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것도 잠시.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어떻게 불을 붙여야 한담?’

오븐과 화로, 가스레인지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커다란 조리대 앞에서.

나는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

음식을 조리할 때 쓰는 취사용 마도구인 건 분명한데, 도무지 불이 붙지를 않는다.

그런데 그때.

“뭐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어?”

키리오스가 불쑥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난감한 얼굴로 키리오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불이 안 부터서…….”

“불?”

조리대를 요리조리 살펴보던 키리오스가 대뜸 입을 열었다.

“마력 회로가 꼬였네.”

“마, 마력 회로요?”

“그래. 회로를 이렇게 수정하면…….”

마법사 특유의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조리대를 어루만졌다.

반짝거리는 빛 가루가 조리대에 스며들고.

키리오스는 곧장 조리대에 붙어 있는 밸브를 돌렸다.

찰칵.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무언가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조리대 위로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우아아…….”

나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키리오스를 우러러보았다.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다더니, 의외로 이 사람 꽤 쓸모가 있잖아?

그래도 대마법사이기는 하다는 건가?

동시에 키리오스가 시큰둥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야, 비켜.”

“네?”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키리오스가 턱짓으로 주방 구석을 가리켰다.

“쪼끄만 게 무슨 요리를 하겠다고. 너는 저기 가서 앉아나 있어.”

“그, 그래두.”

“네 살짜리 꼬맹이가 어떻게 칼이랑 불을 써? 그러다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세자르가 날 죽이려 들걸?”

“…….”

거, 엄청 구박하네.

그렇게 얼떨결에 주방 구석으로 밀려나게 된 나는,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였다.

키리오스는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달구는가 싶더니, 베이컨을 굽기 시작했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 찼다.

베이컨 기름 위로 달걀을 톡 깨어 넣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을 한다.

‘아, 좋은 냄새.’

코를 킁킁거리던 내가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세자르 님은 환자식 드셔야 대는데!”

“아, 이거 먹어도 안 죽는다니까?”

하지만 키리오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흰 빵을 썰어 낼 따름이었다.

나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키리오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 째려보는 건 괜찮겠지? 어차피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으니까…….

“야.”

“흐악!”

깜짝 놀란 내가 펄쩍 뛰어올랐다.

넌 무슨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렸니?!

힐끔 뒤를 돌아본 키리오스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뭘 했기에 그렇게 찔린 얼굴이야?”

“아, 아무거또 안 했는데요.”

“흐음…….”

키리오스는 못내 수상하다는 얼굴이었으나, 내게 더 따져 묻지는 않았다.

대신 빙글 몸을 돌려 마저 요리를 마무리했다.

커다란 접시를 꺼내어,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를 수북하게 담아내던 중.

키리오스가 불쑥 나를 불렀다.

“야, 꼬마.”

“네?”

“너는 왜 안 우냐?”

도대체 저건 또 무슨 소리람.

제가 잉잉 울면서 목숨이라도 구걸해야만 대마법사님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차게 식은 눈으로 키리오스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순진한 척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마리에요?”

“너는 지금 상황이 무섭지도 않아?”

내 기분 탓일까, 그 목소리는 묘하게 가라앉은 것처럼 들렸다.

“어린애라면 펑펑 울면서 난리를 치는 게 당연한데, 왜 이렇게 어른스럽게 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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