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느지막한 오후.
초조하게 문 쪽을 흘깃거리던 키리오스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뭐야, 오늘은 왜 그 망할 꼬맹이가 안 오는데?”
평소라면 아침부터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삐악거리면서 부지런하게 주변을 돌아다니고는 했는데.
하지만 오늘은 마왕성 자체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건 좀…….”
“역시 이상하지요?”
세 남자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후, 키리오스가 잔뜩 투덜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아 진짜, 귀찮게.”
그러고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두 남자에게 면박을 준다.
“다들 뭐 해, 애 찾으러 안 가?”
“언제는 믿을 수 없는 꼬마라더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밀려오는 민망함에, 키리오스가 괜히 성질을 냈다.
지크프리트와 세자르도 못 이기는 척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참을 마왕성 구석구석 뒤져 보아도 타티아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이 꼬맹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키리오스가 들으란 듯이 툴툴거렸다.
그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지크프리트가 구석에 위치한 방문 하나를 가리켰다.
“저 방은 아직 안 가 봤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마왕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고리가 박살 나 떨어진 것을 보아하니 원래는 잠겨 있었던 방 같다.
성큼성큼 걸어간 키리오스가 방 안에 고개를 내밀었다.
“야, 꼬맹이. 여기 있……?”
순간 키리오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햇빛조차 들지 않아 곰팡내가 물씬 피어오르는 더러운 방 안.
낡다 못해 구멍이 난 모포 위로, 창백한 얼굴의 타티아나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세 남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타티아나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얘 도대체 왜 이래?!”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키리오스였다.
후다닥 달려간 키리오스가 타티아나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고는 지그시 입술을 짓씹었다.
“……얘, 열이 엄청 심해.”
조그마한 몸은 그야말로 불덩이였다.
가느다란 팔다리가 젖은 빨래처럼 축축 늘어진다.
“아…….”
순간 아이가 힘겹게 눈을 떴다.
몽롱한 하늘색 눈동자가 세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버릇처럼 배시시 웃어 보인다.
“왜 여기까지 오셔써요……?”
타티아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 했다.
하지만 힘이 없는 팔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자꾸만 꺾인다.
보다 못한 키리오스가 미간을 좁히며 면박을 주었다.
“그냥 누워 있어, 왜 자꾸 일어나려고 그래?”
“아녜요, 저 갠찬…….”
“지금 그걸 말이라고……!”
반사적으로 언성을 높이던 키리오스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세자르가 미간을 좁히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키리오스, 환자를 윽박지르는 일은 그만두시죠.”
“아니…… 하.”
키리오스가 답답한 한숨을 흘렸다.
동시에 타티아나가 양어깨를 움츠리며 거센 기침을 뱉었다.
“콜록! 콜록콜록!”
조그만 양손으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전혀 소용없었다.
타티아나의 손가락 사이로 핏방울이 점점이 쏟아져 내렸다.
피를 토한 것이었다.
세 남자가 경악하여 눈을 부릅떴다.
“야, 꼬마!”
“타티아나 양!”
“지금 피를 토한 건가?!”
세 남자의 격렬한 반응에, 기겁한 타티아나가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러 닦았다.
“이, 이거는 그러니까…….”
어떻게든 피를 닦아내려 함이었으나, 오판이었다.
입가는 물론이고 뺨까지 붉은 피로 범벅이 되고 말았으니까.
‘아니, 왜 하필이면 이런 때 기침이 나고 그러냐…….’
타티아나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망했네.’
그 생각을 끝으로, 시야가 까마득하게 어두워졌다.
타티아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새카만 어둠 속.
깊은 동굴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이런 잡종이 마왕이라니, 마족의 수치야.’
‘차라리 죽여 버리고 마신께서 새 마왕을 선택하도록 기다리는 건?’
‘그러다가 마신께서 분노하기라도 하시면 큰일이잖은가.’
‘옳은 말일세, 차라리 우리가 이 잡종 대신 마왕의 대리로 활동하면…….’
나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듣기 싫어.’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날 싫어했다.
온 세상이 나더러 쓸모없는 존재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었다.
사실은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었던 건 아닐까?
‘도망가고 싶어. 여기 너무 싫어…….’
그런데 그때.
저 멀리 세 남자가 보였다.
인류의 구원이자, 나를 고위 마족들에게서 해방시켜 준 세 용사들이었다.
‘저, 저기!’
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세 남자는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았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목소리를 내어 부르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입을 틀어막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 왔다.
손이 닿을 듯 닿지 않아서 마음이 초조했다.
‘안 돼! 네 녀석들이 이렇게 떠나면, 난 지옥 같은 마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단 말이야!’
마계를 떠나서 안전하게 어른이 되는 것도, 날 괴롭혔던 작자들에 대한 복수 계획도.
모조리 물거품이 된다고!
마침내.
‘잡아따!’
영겁과도 같은 시간 끝에, 나는 세자르의 긴 사제복 자락을 움켜쥘 수 있었다.
‘가지 마라요!’
세 남자가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웃어 주지도 않고, 다정하게 대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더 멀어지지 않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놓여서.
‘헤헤.’
나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 * *
“가지 마라요…….”
자그마한 속삭임과 함께, 가냘픈 손가락이 병간호를 하던 세자르의 옷소매를 꼭 움켜쥐었다.
한참 타티아나의 상태를 살피던 세자르가 물끄러미 잡힌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
세 사람은 지금 다섯 마왕 중 한 명이 사용했을 법한 호화로운 침실에 있었다.
그 허름한 방에서는 없는 병도 생기겠다는 세자르의 주장하에, 깨끗한 방으로 다시 옮긴 것이었다.
키리오스가 고개를 쭉 빼어 아이를 살펴보며 질문을 던졌다.
“꼬맹이 말이야.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는 없어?”
“안 됩니다. 아무리 인간 혼혈이라지만 마족의 피도 섞여 있는 아이예요.”
세자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기와 신성력은 상극이라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어깨를 으쓱인 키리오스가 냉소적으로 말을 덧붙였다.
“도대체가 저 꼬마 말이야,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해?”
“키리오스, 독설을 하든 아이를 걱정하든 하나만 하지 그러십니까?”
“쳇.”
찔끔한 키리오스가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입으로는 냉소적으로 말하면서도 키리오스는 타티아나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꼬맹이는 왜 아픈 건데?”
“글쎄요, 타티아나 양 자체가 전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인 극히 희귀한 존재니까요.”
세자르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과 마족의 혼혈.
여태껏 대사제로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왔던 세자르에게도 금시초문이었다.
다만 정말로 타티아나가 마족과 인간의 혼혈이라면.
“이건 비록 제 추측이지만, 타티아나 양의 마기가 스스로의 몸을 공격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일전에 타티아나 양의 몸은 거의 인간에 가깝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런데 마기는…….”
세자르가 한숨을 섞어 말을 맺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배척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
“…….”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는 것도 잠시.
키리오스가 재차 성마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꼬맹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데?”
“일단은 증상을 완화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증요법을 쓰자고? 하지만 그건 원인 자체를 해결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아니, 어쩔 수 없다고만 하지 말고……!”
“그렇다면 우리 중, 타티아나 양의 마기를 제거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세자르의 싸늘한 되물음에,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불가능했으니까.
또한 초월자의 영역에 다다른 그들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인간들 중 타티아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저 꼬마는 평생을 저렇게 아픈 채로 살아야 해?”
잠시 후.
키리오스가 성마른 목소리로 불쑥 질문을 던졌다.
“저 애가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는 거냐고.”
“아마도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 완치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세자르는 한숨을 섞어 대꾸했다.
“스스로가 극복해야 해요.”
“그 말은…….”
“타티아나 양 본인이 직접 마기를 제어하는 것. 그 외로는 방법이 없어요.”
그 대답에,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의 얼굴은 먹구름 낀 하늘처럼 어두워졌다.
불세출의 영웅이자 초월자인 그들조차 마기를 다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저 어리고 연약한 아이가, 제 몸을 갉아 먹는 마기를 스스로 다루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니.
“그렇다면, 만약 저 애가 끝내 마기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어느새 키리오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애, 죽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