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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0)화 (11/163)

<10화>

그러거나 말거나, 세자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일 따름이었다.

“다들 제 신분을 잊으신 듯하군요. 저는 대신전의 수장인 대사제이자, 빛의 신의 첫 번째 종입니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잇는다.

“마기를 억누르는 데에는 신성력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저희 대신전에는 신실한 빛의 사제들이 무척 많습니다.”

“아니,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를 신전에서 키우는 건…….”

두 사람이 애써 항변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어쩐지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다.

승리자의 눈빛으로 두 사람을 마주 보던 세자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성력이 가득 찬 공간은, 아직 어린아이인 타티아나 양의 몸에 다소 무리가 갈 것 같기는 하네요.”

난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럼 저 대신전은 평생 가 보지 모타는 거예요?”

안 돼! 대신전은 제국 최고의 명물 중 하나라고 했단 말이야!

언젠가는 꼭 대신전 안에 있는 이름 높은 천장화와 조각상들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걱정 마세요. 오랜 시간 머무는 게 무리라는 뜻이니까요.”

고개를 가로저은 세자르가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잠시 방문하는 것 정도면, 타티아나 양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지, 진짜죠?”

“그럼요. 또한 몸이 자라고 조금 더 건강해지면,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질 거예요.”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던 중.

“말 잘했군, 세자르.”

지크프리트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세자르와 키리오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못을 박는다.

“다들 타티아나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건 동의하지?”

헉.

지크프리트의 말에, 나는 그만 찔끔하고 말았다.

그, 나 이제는 안 아픈데…….

이전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서일까, 다들 과하게 나를 싸고도는 경향이 있다…….

“공작가의 주치의는 한때 황실에서도 근무했던 최고의 경력을 가진 의사지. 분명 타티아나의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의, 의사 정도야 내가 부르면 되지!”

그 회심의 일격에, 키리오스가 분한 얼굴로 항변을 했다.

“꼬마가 마탑에 오기만 하면, 내가 엄청 잘해 준다니까? 다른 녀석들도 분명 꼬맹이를 귀여워할 거라고!”

“그런 입 발린 말보다는 실효성 있는 제안을 해 보는 게 어떤가?”

지크프리트의 만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가득 서려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크프리트 님이랑, 키리오스 님이랑, 세자르 님이랑 다 티티 보호자 해 주시면 안 대요?”

순식간에 내게 시선이 쏠렸다.

우와, 부담스러워!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지만, 나는 꿋꿋하게 웃었다.

에라, 이판사판이다.

나는 곁에 앉아 있는 지크프리트의 옷깃을 와락 붙들고는, 세자르와 키리오스를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티티는 세 분들이랑 다 가티 사이좋게 지내구 시픈데.”

그러고는 시무룩하게 양어깨를 늘어뜨려 보였다.

“……안 대요?”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세 남자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아, 안 될 리가 없잖아?”

“그래, 공평하게 가도록 하지.”

“이왕 타티아나 양의 보호자 역할을 맡게 됐으니,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함미다!”

난 기쁨을 이기지 못한 척, 지크프리트를 냉큼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입가에 서린 사악한 미소를 숨겼다.

굳이 보호자가 한 사람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인간 세계 최고의 뒷배를 갖게 될 기회인데, 이왕이면 세 사람 모두 보호자로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 * *

기나긴 토론 끝에 나는 공작저에서 살기로 결정되었다.

마탑에서는 위험한 연구를 많이 하기도 하고, 자잘한 마법 사고가 일어날 때가 있어 혹여나 다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또한 신전은 사제들의 신성력이 지나치게 충만한 장소여서, 마족의 피를 이은 내게는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아니, 내가 꼬마 하나 제대로 못 보살필 줄 알고?”

“애처럼 굴지 마십시오, 키리오스.”

키리오스는 한참을 툴툴거렸으나, 결국 세자르의 핀잔에 뚱하니 입을 다물었다.

그 후 한참을 달린 끝에, 마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도착했군.”

지크프리트가 흘끗 창밖을 내다보았다.

으리으리한 공작가의 타운하우스가 눈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타운하우스를 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세자르 님, 키리오스 님.”

아쉬운 마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렁그렁한 눈이 되어 키리오스와 세자르에게 매달렸다.

“우리 언제 또 바요?”

그렇잖아, 제국에 도착하는 동안 내내 함께 있었는데.

이렇게 떨어지는 건 너무 서운하단 말이야!

“조만간 또 만날 거예요, 타티아나 양.”

세자르가 웃는 낯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주자주 찾아올 테니까, 타티아나 양이야말로 지겹다고 말하면 안 돼요?”

“네! 하나두 안 지겨워요!”

그제야 다소 안도가 된 나는, 힐끔 곁눈질로 키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키리오스 님도…….”

“당연히 올 거야. 그러니까 울상 좀 짓지 마.”

키리오스가 팔짱을 끼며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못생긴 게, 얼굴을 구기니까 더 못생겨 보인단 말이야.”

“모야, 나빠.”

난 불만스럽게 양 뺨을 부풀렸으나, 그래도 자꾸만 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 앞으로도 또 만날 수 있어!

때마침 먼저 마차 밖으로 빠져나간 지크프리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려라, 타티아나.”

“앗, 네!”

나는 종종종 문 쪽으로 향했다.

지크프리트는 내 손을 붙드는가 싶더니, 그대로 훌쩍 내 허리를 감아 안았다.

“꺄아!”

반사적으로 지크프리트 목을 끌어안은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날 안아 줬어!’

내가 편하게 안길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안으며, 지크프리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착각하지 마라, 네 걸음이 너무 느려서 답답해서 그런 거니까.”

치, 말 좀 곱게 해 주면 어디 덧나나.

입술을 삐죽거리던 난 이내 헤실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안아 준 게 어디야?

나는 지크프리트의 품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는, 마차 쪽으로 마구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음에두 티티 만나러 와야 대요! 꼭이요!”

세자르가 창문 너머로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곁의 키리오스는 헛웃음을 짓더니 ‘얼른 들어가기나 해’라고 입술을 벙긋거렸다.

마침내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가 버려써.”

“또 만날 수 있다고, 두 녀석 모두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래두…….”

힝, 왠지 기운 빠져.

나는 다소 시무룩한 얼굴로 공작가의 타운하우스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내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우와아…… 공주님이 사는 성 가타!”

온갖 귀한 꽃들과 정원수로 꾸며진 넓디넓은 정원 가운데에, 5층짜리 타운하우스가 서 있었다.

크림색 벽면과 장미색 지붕이 어우러진 그 모습이 그야말로 예술품 같았다.

“턱 빠지겠군.”

아니나 다를까, 내 멍청한 표정을 발견한 지크프리트가 핀잔을 주었다.

아니, 사람이 좀 놀랄 수도 있지!

꼭 그렇게 얄밉게 말해야 해?

뾰로통해진 내가 지크프리트를 흘겨보던 차.

“어서 오세요, 가주님.”

정중한 인사가 들렸다.

중년 여인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수많은 사용인들이 허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처음 인사를 건넸던 중년 부인이 재차 지크프리트를 치하했다.

“다섯 마왕을 처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자네들도 내가 없는 동안 공작저를 건사하느라 고생이 많았군.”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려 보인 중년 부인이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실례지만 이 아가씨께서는 누구신지요?”

“안녕하세요, 타티아나예요.”

나는 지크프리트에게 안긴 채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크프리트가 설명을 덧붙였다.

“어쩌다 보니, 당분간 제가 이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응? 존댓말을 하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래도 저 중년 부인은 일반적인 사용인은 아닌 것 같다.

지크프리트가 존대를 해 줄 정도라니, 꽤 신분이 높은 사람인가 보지?

“보호자…… 말씀이십니까?”

어라?

순간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찰나의 순간, 중년 부인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호감은 아닌 것 같은데……?

“예. 당분간 타티아나는 제가 맡아서 기를 생각이니, 아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편의를 봐주십시오.”

“…….”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중년 부인은, 이내 표정을 바꾸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럼요. 저에게 맡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지크프리트가 타운하우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크프리트의 품 안에 달랑달랑 안겨 가던 난, 때마침 이쪽을 돌아보는 중년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뚫어져라 쏘아보는 눈동자에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평생의 적을 눈앞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싸늘한 시선.

‘아.’

동시에 나는 확신했다.

오랫동안 날 싫어하는 마족들 틈바구니에 끼어 살다 보니, 난 나를 향한 적의에는 무척 익숙했다.

그랬기에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저 부인…… 나를 싫어해.’

그것도 엄청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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