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백작대부인은 거친 걸음걸이로 척척 파우더 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노라, 왜 이렇게 꾸물거려?”
……차마 나한테 대놓고 눈치를 주지는 못하고, 노라에게 신경질을 내는 게 훤히 티가 난다.
“조금 있으면 공작 각하께서 오실 건데 아직도 준비가 안 끝났어?”
들으란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는가 싶더니, 신경질적으로 노라를 확 밀쳐내 버린다.
“안 되겠네, 저리 비켜.”
“꺅!”
놀란 내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노라가 내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으니까.
노라가 밀려나면서 나도 함께 의자 위에서 몸이 흔들렸던 것이다.
‘으와, 떨어질 뻔했네!’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의자의 높이는 상당히 높았기에, 여기서 떨어졌으면 못해도 다리는 삐지 않았을까……?
“아가씨!”
놀란 노라가 새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턱!
동시에,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내 어깨를 콱 움켜쥐었다.
길게 다듬은 손톱이 목욕가운을 파고들며 여린 피부까지 짓눌렀다.
‘으, 아파.’
나는 새어 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하지만 내가 아파하거나 말거나, 백작대부인은 강하게 내 머리카락을 휘어잡을 따름이었다.
“노라, 빗 내놓으렴.”
“예? 하지만…….”
“얼른, 시간 없어.”
백작대부인이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노라는 별수 없이 빗을 쥐여 주었다.
그러자 백작대부인이 내 머리를 팍팍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야!’
살살 빗질하며 풀어냈던 머리카락 끄트머리가 다시 엉켰다.
엉킨 머리카락이 빗에 걸리면서 뭉텅이로 뽑혀 나간다.
아, 뭐야.
내 두피 다 뜯어지겠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
차마 아프다고 말은 하지 못하고, 나는 끙끙거리며 아픔을 삼켰다.
보다 못한 노라가 백작대부인을 만류하려 했다.
“아가씨의 머리카락이 많이 상한 상태예요. 그렇게 빗질하시면 머리카락이 뽑히거나 엉킬 수도…….”
“내 말 못 들었니? 공작 각하께서 조만간 오실 거라니까?”
야, 너무 귀찮은 티를 내는 거 아니니?
머리를 마구 빗기는 통에 아픈 와중에도, 나는 조금 기가 막혔다.
하지만 백작대부인은 정말로 강적이었다.
“조금 아프셔도 참으세요. 공작 각하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
뻔뻔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거, 내가 지크프리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이러는 거지?
게다가.
“착한 아이는 어른 말을 잘 들어야지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은근슬쩍 나를 압박하기까지?
아니, 이 사람이?
빡침이 단전에서부터 밀려 올라왔으나, 백작대부인의 빗질은 도무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아, 정말.
착한 아이 노릇하기 너무 힘드네!
* * *
그 후.
어떻게든 몸단장이 끝난 타티아나는,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의 손에 이끌려 넓은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백작대부인이 워낙 빠른 걸음걸이로 걸었기에, 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타티아나도 거의 달리다시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야만 했다.
타티아나는 헥헥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차마 걸음을 늦춰 달라고 요청하지는 못한다.
그 뒤를 따르던 노라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타티아나를 바라보았다.
‘백작대부인께서도 참, 조금만 천천히 걸으셔도 될 텐데…….’
노라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하지만 차마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백작대부인의 기분이 워낙 저조해 보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한편 백작대부인은 아까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도대체 저 꼬맹이가 뭐라고, 공작 각하께서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 거야?’
백작대부인이 불만스럽게 타티아나에게로 눈을 흘겼다.
삼십 분 전, 지크프리트가 느닷없이 백작대부인을 호출한 것.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사각사각.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리는 적막한 집무실.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다소 긴장한 얼굴로 그 안으로 들어섰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주님.’
펜이 멈췄다.
지크프리트가 흘끗 시선을 들어 올렸다.
‘오셨습니까, 고모님.’
맹수처럼 요요하게 빛나는 금안을 마주하며, 백작대부인은 괜히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지크프리트는 제 아들보다도 한참 어린 청년인데도.
……그 앞에 설 때마다 묘하게 긴장하게 된다.
‘도대체 왜 살아 돌아와서는.’
지크프리트만 없었더라면, 오를레앙 공작위는 내 아들의 것이 되었을 텐데!
백작대부인은 불쑥 튀어 오르는 불만을 애써 삭였다.
그러고는 억지로 입술 끝을 밀어 올리면서 미소를 짓는다.
‘공작가로 돌아오신 첫날인데, 조금 쉬시지 않고…….’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타티아나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이리 불렀습니다.’
‘타티아나…… 아가씨라면.’
아가씨.
그 단어가 입 안에서 설겅설겅 겉돈다.
아니꼬운 마음에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다.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아이의 몸이 그리 건강하지 못하니, 전담 주치의를 붙여서 건강을 살필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십시오.’
‘…….’
도대체 그 애가 뭐기에?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정말로 의아했다.
아까도 타운하우스에 들어오자마자 ‘아이가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말해 두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묘하게 마땅찮은 부분은.
‘……자기 친조카들에게는 저런 살가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면서.’
지크프리트는 여태껏 아버지인 선대 공작은 물론이고, 친척들과도 교류라고는 거의 없이 지내 왔었다.
물론 선대 공작과의 오랜 불화가 근원이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지크프리트는 기본적으로 세심한 성정은 아니었다.
그랬던 공작이, 고작해야 어린아이 하나에게 이렇게 신경을 쏟는 것 자체가 기이하다.
‘아 참, 그렇지.’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말을 덧붙였다.
‘오늘 저녁식사는 타티아나와 할 테니, 그 부분도 함께 준비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의 대화를 되새기던 백작대부인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제 곁을 종종걸음으로 따르는 타티아나를, 흘끗 곁눈질로 내려다본다.
‘아직은 모르는 일이지만, 아주 만약에…….’
지크프리트가 저 꼬마를 양녀로 들이기라도 한다면.
그렇다면 백작대부인의 아들, 혹은 손주가 오를레앙 공작 작위를 이을 확률은 더더욱 낮아지게 된다.
‘이러다가 내 손주들이 저 꼬맹이에게 밀리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확 밀려드는 불쾌감에,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미간을 와락 구기며 타티아나에게 쏘아붙였다.
“왜 이렇게 걸음이 늦으시나요?”
그 사나운 목소리에, 타티아나가 움찔 어깨를 굳혔다.
“이러다가 공작 각하께서 먼저 식당에 도착해 계시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빠릿빠릿하게 좀 따라오세요.”
찔끔한 타티아나가 짤따란 다리를 재게 놀렸다.
도도도 움직이는 그 모습을 짜증스레 지켜보던 백작대부인은, 이내 혀를 차며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 지금만 저 밉살스러운 꼬마를 눈감아 주는 거야.’
차후에 공작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서라도, 지크프리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몇 번이고 마음을 다스린 후에야.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들끓는 불쾌감을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 * *
저 멀리 커다란 문이 보였다.
‘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누가 제국 유일의 공작 가 아니랄까 봐, 식당 문조차 반짝반짝하잖아?
그런데 그때.
‘응?’
갑자기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만면에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자, 제 손을 잡으실까요? 식당 안으로 모셔다드릴게요.”
“…….”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내게 내밀어진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방금 전까지는 나랑 같이 걷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이 굴었잖아?
왜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 건데?
하지만 어쨌든 나는 순하고 착한 아이를 연기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냉큼 손을 맞잡았다.
백작대부인은 못마땅하다는 양어깨를 움찔거렸으나, 그렇다고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난 백작대부인에게 손을 잡힌 채 나란히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채, 서류를 살펴보고 있던 지크프리트가 힐끗 시선을 들어 올렸다.
“타티아나.”
“지크프리트 님!”
나는 종종종 지크프리트 곁으로 다가갔다.
“바빠요?”
“뭐, 바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크프리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네가 처음으로 공작 가에 온 날인데, 함께 식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
그 여상한 대답에, 나는 그만 조금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티티 때무네 일부러 식당까지 내려오신 거예요?”
귀찮은 아이는 되고 싶지 않은데.
어쩐지 본의 아니게 지크프리트를 방해하게 된 것만 같아서…….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슬며시 미간을 좁히는가 싶더니,
“신경 쓰게 했군.”
턱.
커다란 손이 내 정수리 위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