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어라?’
난 살그머니 지크프리트의 눈치를 살폈다.
지크프리트가 다소 서툴게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너와 식사 한 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건 아니니, 쓸데없는 신경은 쓰지 말도록.”
어…….
지금 나를 신경 써 주고 있는 건가?
내가 눈동자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던 바로 그때.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냉큼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직접 타티아나 아가씨를 모시고 있으니까요.”
직접, 이라는 말에 일부러 힘을 주면서, 백작대부인은 눈매를 한껏 휘어 미소 지었다.
‘아하, 그렇구나.’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러 삼켰다.
그러니까 그거지?
지크프리트 앞에서는 나를 세심하게 돌보는 척하고 싶다는 거?
백작대부인은 솜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굳이 아가씨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억지로 시간을 쪼개실 필요까지는 없답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것처럼 백작대부인을 바라보았다.
“아뇨, 제가 원해서 타티아나와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네?”
“고모님께서 절 배려해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아이가 제게 방해되는 건 아니라는 소립니다.”
서류철들을 정돈해서 시종에게 넘기며, 지크프리트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 그건…….”
“아이도 듣는 귀가 있습니다. 자칫 오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아무래도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조가비처럼 입을 딱 다문 모습을 보아하니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프리트는 묘하게 열의에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돌아볼 따름이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닭고기 크림 스튜다.”
“네?”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멀거니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일전에 제국으로 귀환할 적, 세자르가 요리한 크림 스튜를 잘 먹더구나.”
그렇게 운을 뗀 지크프리트가 턱을 쓸어내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때 ‘세자르 님이 요리해 준 크림 스튜가 제일 맛있다’라고 했었던가?”
내, 내가 그런 말을 했나?
솔직히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지크프리트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열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우리 타운하우스의 주방장도 실력이 상당해.”
“네에?”
“장담하지. 세자르 녀석이 만든 크림 스튜보다는, 오늘 먹을 스튜가 훨씬 더 맛있을 거다.”
……어쩐지 지크프리트가 세자르에게 미묘한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내 착각인가?
아니, 그보다.
나는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기요, 저한테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건 좋은데요.
지금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당장 저를 잡아먹을 것처럼 쏘아보고 있거든요?
지크프리트, 눈치 실화야?
* * *
그 후.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수많은 음식이 식탁을 가득 메웠다.
갓 구워서 하얗고 말랑거리는 빵과 따끈따끈한 크림 스튜.
황금색으로 빛나는 버터와, 달큼한 냄새를 풍기는 갖가지 잼과 음료들까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어 보인다!
‘음, 좋은 냄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나는, 힐끔 곁눈질로 내 옆자리에 앉은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을 바라보았다.
다만 단 하나 불편한 점은…….
‘왜 백작대부인도 우리랑 같이 식사를 하는 거야?’
기베르티 백작대부인도 우리와 합석한 것이다.
아무래도 지크프리트의 고모님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러다 체하는 건 아니겠지?’
괜히 백작대부인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운 마음에, 나는 식탁 쪽으로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그러던 중, 내가 발견한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어, 어린이 식기다.’
아이의 손에 꼭 맞는 크기의 조그마한 식기들이 올망졸망 놓여 있었다.
‘웬일로 이런 배려를 다 하네?’
……라고 생각하며 다시 백작대부인을 바라봤다가,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백작대부인이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린 모습 말이다!
‘에휴, 그럼 그렇지.’
나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아무래도 이 어린이 식기는 백작대부인이 놓아둔 건 아닌 듯하다.
“타티아나.”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나를 불렀다.
나는 자세를 바르게 하며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네.”
“혹시 뭔가 생활하면서 불편하다거나, 필요한 것이라도 있나?”
“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이 타운하우스만큼 쾌적하고 안락한 곳은 처음 본다.
불편하거나 불만인 점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뭐, 그렇기는 한데…….
“불편한 거는 없구, 하고 시픈 건 있는데.”
살그머니 눈치를 보며 입을 열자, 지크프리트가 내게 되물었다.
“하고 싶은 것? 그게 뭐지?”
“도서관에 가 보고 시퍼요.”
내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지크프리트가 허를 찔린 얼굴을 했다.
“도서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었으니까.
그러려면 용사들을 최대한 구워삶아서 안전한 생활을 확보하는 건 물론이고, 마왕으로 각성하는 게 필수인데…….
‘지크프리트는 무려 마왕을 참칭하는 고위 마족들을 해치운 용사님이잖아.’
그런 용사 가문의 도서관이라면, 뭔가 마왕으로 각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기대감으로, 나는 초롱초롱하게 두 눈을 빛내며 지크프리트를 응시했다.
“티티 도서관 가게 해 주면 안 대요?”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미간을 좁히며 내게 물었다.
“도서관은 왜 가고 싶지?”
“으음…….”
나는 데록데록 눈동자를 굴렸다.
여기서 뭔가 지크프리트를 설득할 만한 초강수를 두고 싶은데…….
아, 이거다!
“쓸모 있는 아이가 되고 시퍼요.”
어때, 나 기특하지?
내가 이렇게나 어른스러운 아이란다.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지크프리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쓸모 있는 아이?”
“웅. 책 마니 읽어서 똑똑해지면 지크프리트 님두 도와줄 수 있자나요.”
이 대답으로 나 점수 좀 따겠지? 그치?
그런데.
“무슨 그런 말을 다 하지?”
뭔가 반응이 이상하다.
지크프리트가 성마른 어조로 내게 되물은 것이다.
‘응?’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지크프리트, 조금 화가 난 것 같은데?
“고작해야 네 살짜리 어린애가, 내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공부를 하겠다고?”
“아니, 어, 음…….”
저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잖아?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도서관은 무슨 도서관이지? 네 나이 때는 좀 놀아도 된다.”
아니, 잠깐만!
지크프리트가 그대로 대화를 종료하려는 기색이었기에, 나는 그만 질겁하고 말았다.
나, 도서관 꼭 가야 한다니까?
용사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건 둘째치고라도, 나 마왕으로 각성해야 한단 말이야!!
“그, 그래두 도서관 가 보고 시픈데…… 안 대요?”
난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지크프리트에게 매달렸다.
드물게 고집을 부리자, 지크프리트의 얼굴에 서린 수심이 더더욱 깊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내게 되물었다.
“애초에 글자는 알고 있는 건가? 책을 읽으려면 글을 알아야 하잖나.”
아차.
나는 찔끔했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는 네 살이지?
그렇지,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이제 글을 막 배울 때이기는 한데…….
“예, 예전에 엄마가 알려 줘써요.”
“…….”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대자, 지크프리트의 낯빛이 다시 흐려졌다.
‘흐음.’
나는 면밀히 지크프리트의 표정을 관찰했다.
어째 지크프리트는 ‘엄마’, 더 정확히는 ‘부모’라는 화제가 나오면 조금 유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고아라서 그런 건가?
누가 용사 아니랄까 봐, 성품 하나는 정말 선량하단 말이야.
“일단…… 알았다.”
결국 백기를 든 쪽은 지크프리트였다.
“도서관에 가는 건 허락하지. 다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야 한다.”
“감사함미다!”
나는 잔뜩 신이 났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었으니.
“저어, 가주님.”
바로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었다!
지크프리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뭐 할 말이 있느냐’는 눈빛으로 백작대부인을 응시했다.
백작대부인은 다소 긴장한 듯했으나 그래도 꿋꿋이 말을 이었다.
“타운하우스의 도서관에는 귀한 도서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요?”
“아직 타티아나 아가씨께서는 나이가 어리시니, 혹여 귀한 도서를 다루다가 망가뜨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
그 말에, 지크프리트가 묘한 눈빛으로 백작대부인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