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8)화 (19/163)

<18화>

* * *

그 시각.

막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우와아…….”

널찍하게 뚫린 창문 너머로 햇빛이 환하게 들이쳤다.

커다란 벽면에 자리한 책장에는 도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방 중앙에는 커다란 책상과 푹신한 의자들이 자리했다.

노라가 내게 말을 붙였다.

“혹시 보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제가 갖다드릴게요.”

“아냐, 티티가 직접 고르고 시퍼.”

“그러신가요? 그럼 일단 의자에 앉혀 드릴게요. 그 후에 천천히 골라요.”

“웅!”

그렇게 의자에 앉던 중.

투두둑.

“…….”

나는 뜨악한 시선으로, 엉망으로 뜯어져 너덜거리는 노라의 앞치마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제도 목깃이 찢어져서 떨어져 나갔었잖아?

무슨 옷이 부직포도 아니고?

“미, 미아내…….”

하지만 내가 옷을 찢어먹은 건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일단 사과부터 했다.

그러자 노라가 얼른 나를 달랬다.

“괜찮아요! 흔한 일인데요 뭐!”

“……흔해?”

아니, 옷이 찢어지는 게 흔한 일이라고?

나는 유심히 노라의 하녀복을 살펴보았다.

그 후 내린 판단은.

‘확실히 질이 떨어져.’

나 자신이 평생 거적 같은 옷만 입고 살았었기에, 옷의 질에 대해서는 더 예민하게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 입으로 직접 말하는 건 좀 낯부끄럽긴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현재 내게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노라는, 가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나를 곁에서 직접 보살피는 하녀였고 말이다.

그 말은 즉.

노라는 다른 사용인들에 비하여 고위 사용인이라는 뜻이다.

그런 노라가, ‘옷이 찢어지는 건 흔하다’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노라만 저런 질 낮은 하녀복을 입는다기보다는, 이 타운하우스의 모든 사용인들이 저런 옷을 지급받는다는 건데.’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지크프리트의 성격상, 하인들에게 지원하는 예산을 아끼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돈을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나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터.

그도 그럴 것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돈이며 시간이며 인력이 어마어마하게 드니까 말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세 용사는 용사답게 올곧은 성격이었다.

자신을 모시는 사람들에게 박하게 굴 리가 없다는 소리다.

이 상황에서, 사용인들에게 배정된 의복비용 예산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타운하우스의 총 관리인인 기베르티 백작대부인.’

그녀 외로는 없었다.

물론 내가 쓸데없이 의심이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공작가의 예산에 손을 댄 것이 사실이라면, 지크프리트에게 넌지시 언질이라도 줘야만 할 텐데…….

그렇다고 내가 지크프리트에게 직접 말할 수도 없고 말이야.

“에효.”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고작해야 네 살배기 꼬마아이였으니까.

그런 내가 ‘사용인의 의복 비용이 착복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주장한다 한들, 누가 믿겠어?

내가 지크프리트여도 안 믿겠다!

“이 도서관에 있는 장서들은 모조리 귀한 것들이에요.”

때마침 삐딱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붙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장서들을 조심해서 다루도록 하세요. 함부로 손대지 말고요.”

“…….”

말 하나하나를 저렇게 짜증 나게 하는 것도 재주다.

내 손이 닿으면 장서들이 썩어 문드러지기라도 하나?

나는 제멋대로 구겨지려는 미간을 애써 펴면서 백작대부인을 바라보았다.

백작대부인의 뚱한 얼굴을 응시하다가, 백작대부인이 차려입은 드레스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고급 옷감으로 옷을 지었는지, 치맛자락 위로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른다.

……노라와는 다르게.

그런데 그때.

“타티아나 아가씨!”

하녀 한 명이 쪼르르 이쪽으로 달려왔다.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하녀를 돌아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수선이지?”

“죄, 죄송합니다. 마탑주님과 대사제님께서 타운하우스에 방문하셨는데……!”

하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덧붙였다.

“두 분께서 아가씨를 찾으세요.”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키리오스랑 세자르가?

반갑기는 한데, 연락조차 없이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다고?

그렇게 의문을 느끼고 있던 차.

나는 내 눈높이가 갑자기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백작대부인이 나를 달랑 안아 든 것이다.

‘으잉?’

나는 질겁하여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을 돌아보았다.

백작대부인이 나를 향해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 가실까요, 아가씨?”

우와, 목소리 사근사근해지는 것 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든 지크프리트는 물론이고, 키리오스와 세자르에게 눈도장을 한 번 찍어 보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하지만 네 살짜리 연약한 꼬마가 백작대부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은 요원했으므로.

‘망할.’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백작대부인에게 달랑달랑 안겨 갔다.

* * *

잠시 후.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뭔가, 뭔가……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눈앞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 책들은 도대체 뭐지?’

호화로운 응접실 안에,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황급히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책의 제목들을 읽어보았다.

<아이의 맞춤형 교육>

<자라나는 아이의 모든 것>

<현명한 부모가 귀담아 들어야 할 101가지 조언>

……이게 도대체 다 뭐야?

나는 차게 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키리오스와 세자르가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왔냐, 꼬마.”

키리오스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아는 척을 해 왔고,

“고작해야 하루를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군요. 잘 계셨습니까?”

세자르는 다정하게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두 사람에게 양손을 쭉 뻗었다.

“키리오스 님, 세자르 님!”

반갑기는 무지 반갑네!

세자르가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에게서 덥석 나를 받아 안았고.

“타티아나, 나는 안 보이나?”

묘하게 서운한 표정의 지크프리트가 내게 말을 붙였다.

나는 찔끔해서 얼른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서요?”

“그런데 왜 내게는 아는 척을 안 하는 거지?”

“…….”

지크프리트가 억울하다는 양 항변했다.

나는 그냥…… 할 말이 없었다.

그거야 지크프리트랑은 하루 종일 같은 집에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러자 세자르가 질색을 하며 지크프리트를 불렀다.

“지크프리트.”

“뭐지?”

“아무리 타티아나 양이 귀엽다 한들, 너무 유치하게 굴지 마십시오.”

“…….”

그제야 지크프리트는 찔끔한 표정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곁에서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크프리트를 바라보던 키리오스가, 냅다 내 코를 꼬집었다.

“그건 그렇고, 꼬맹이 너 말이야.”

“애오?(왜요?)”

“아직 네 살짜리가 무슨 도서관이야? 그냥 재밌게 놀기나 할 것이지.”

아우, 정말! 마왕님 체면 다 구기네!

나는 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티티 어른들하테 도움대고 시퍼요.”

다만 키리오스에게 여전히 코가 붙잡혀 있었기에,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

“…….”

“…….”

뜻밖에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으응?’

나는 움찔했다.

키리오스는 물론이고, 지크프리트와 세자르까지 묘하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다들 왜 내가 말만 하면 저런 눈빛인 거야?

나 정말, 이 싸한 분위기에는 적응을 못 하겠어!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의 책을 손가락질로 가리켰다.

“그, 그래서 저 책들은 모에요? 티티두 읽어도 대요?”

“꼬마가 무슨 책을 읽는다고 그래?”

내게 핀잔을 준 키리오스가 육아서 하나를 집어 들고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는 옆에서 간식이나 먹어. 알았어?”

아휴, 다행이야.

이제야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 용사들은 재차 제각기 육아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곁에서 간식도 주워 먹고, 폭신한 소파 위에서 뒹굴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다가…….

“그러고 보니, 보육원을 담당하는 사제들에게 타티아나 양의 교육을 문의해 봤었는데.”

으응? 내 교육?

어쩐지 내 이름이 들린 것 같아서, 나는 비몽사몽한 채로 귀만 쫑긋 세웠다.

그러고 보니, 신전에서는 부모를 잃어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 보살핀다고 했었지?

“아직 타티아나 양은 나이가 어리니까,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놀이 형식으로 개념을 가르치는 정도가 좋다고 조언해 주더군요.”

“놀이?”

“예. 직업을 일일 체험해 보는 놀이교육 같은 것 말입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조금 시큰둥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놀이교육이야?

비록 육신의 나이는 네 살이지만, 정신연령은 전생까지 따지면 스무 살도 넘는다고!

날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거 아냐?

‘아니, 잠깐만.’

속으로 투덜대던 것도 잠시.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직업을 일일 체험하는 놀이교육이라면……!’

이거, 잘하면 지크프리트에게 넌지시 알려 줄 수 있는 기회 아니야?

하녀들에게 지급되는 하녀복의 질이 완전 쓰레기라고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