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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19)화 (20/163)

<19화>

“그럼 티티는 하녀 놀이!”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하녀 놀이요? 왜 하필이면 하녀입니까?”

세자르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되물었다.

후후, 하지만 저 질문에는 이미 대답이 마련되어 있지!

“하녀 언니들이 티티 보살펴 주자나요!”

나는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꾸며내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하녀 언니들이 무슨 일 하는지 배우고 시퍼요!”

“……하녀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는 건가.”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찡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더니, 손을 뻗어 내 등을 토닥였다.

“기특하군.”

으음, 그건 사실 꿈보다 해몽인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그냥 어색한 미소로 때웠고,

“좋아,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지.”

이내 지크프리트의 허락이 떨어졌다!

‘좋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남몰래 사악하게 두 눈을 반짝였다.

* * *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은 하루 종일 기분이 저조했다.

“어휴, 귀찮게!”

백작대부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쿵쿵거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오늘 지크프리트는 타티아나의 놀이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말을 전해 왔다.

그러면서 타티아나가 입을 만한 조그마한 하녀복을 맞춰 주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도대체 공작님께서는 저 계집애를 언제까지 데리고 있으실 생각이신 거야?’

놀이교육이네 뭐네, 정말로 제 딸을 키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극정성이지 않은가.

자기 친조카들에게나 그렇게 관심을 쏟을 것이지!

벌컥!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거친 손길로 방문을 밀어 열었다.

그러고는 새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인다.

“노라!”

“네, 총 관리인님.”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노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대부인이 삐딱하게 명령했다.

“그 계집애 말이야, 하녀복이나 한 벌 맞춰 줘.”

……계집애라니.

언사가 어찌나 거칠고 무례한지, 노라가 되래 놀랄 정도였다.

“가주님께서 그 쪼끄만 계집애한테 놀이교육을 시켜 주신다고 하시니까 말이야.”

백작대부인은 들으란 듯이 투덜거렸다.

“왜 하필이면 하녀를 고른 거람? 누가 천한 계집애 아니랄까 봐, 정말!”

그 투덜거림을 끝으로.

쾅!!

거세게 문이 닫혔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던 노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가씨에게까지 저렇게 함부로 굴어도 되는 거야?’

말랑말랑하고 발그레한 뺨.

동그란 하늘색 눈동자.

한 입 베어 물면 솜사탕처럼 달콤한 맛이 날 것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까지.

어딜 보아도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인데…….

‘정말, 나라도 잘해 드려야지.’

노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최근 나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왕 놀이교육까지 확정된 마당에, 이 기회를 통해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을 고발하기에 앞서.

다른 사용인들의 의복이 어느 정도 상태인지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은근슬쩍 노라에게 접근했는데…….

“노라.”

무심결에 치맛자락을 꾹꾹 잡아당기자, 투두둑 하고 실밥이 뜯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아니, 어떻게 이 정도로도 옷자락이 뜯어질 수가 있지?’

난 흐린 눈으로 그 소리를 외면하며 입을 열었다.

“티티 이번에 하녀 놀이하기로 해써.”

“네, 그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답니다. 우리 아가씨가 입으실 하녀복도 준비 중이에요.”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노라가, 문득 몽롱한 눈빛이 되었다.

“정말, 우리 아가씨께서 하녀복을 차려입으시면 얼마나 귀여우실지…….”

“…….”

거참, 부담스럽네.

나는 그냥 내 용건이나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티티 오늘은 다른 사용인들도 만나구 시퍼.”

“네? 다른 사용인들이요?”

“웅. 앞으로 하녀 놀이 말구, 요리사 놀이랑 정원사 놀이랑 이거저거 할 수도 있자나.”

나는 최대한 초롱초롱하게 두 눈을 빛내며 노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만나 보고 시픈데, 안 대?”

솔직히 내가 말하면서도 조악한 핑계라고 생각했는데.

노라는 오히려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안 되겠어요? 당연히 되죠!”

그렇게 외친 노라가 나를 답삭 안아 들었다.

나는 노라에게 달랑달랑 안겨 타운하우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들르게 된 곳은 주방이었는데.

“안녕하세요, 아가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주방 사람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러면서도 내 갑작스러운 등장에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는데.

그 의문은 노라가 아주 쉽게 해결해 주었다.

“우리 아가씨께서 글쎄, 주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하시지 뭐야?”

……그, 저는 저런 말까지 한 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저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방 사람들이 일시에 나를 기특해하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그냥 그런 걸로 치기로 했다.

“티티 요리해 볼래.”

내 말 한 마디에, 주방 사람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런, 아가씨께 무엇을 챙겨 드려야 하지?”

“칼이랑 불을 쓰는 건 절대 안 돼!”

사람들이 수선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키리오스 생각이 났다.

마왕성에서 세자르를 위해 요리를 하려고 했던 적, 키리오스도 저랬었지.

내가 다칠까 봐 걱정하다 못해, 무려 대마법사쯤 되는 사람이 손수 조리대에 섰었다.

뭐, 비록 입으로는 매번 뾰족하게 핀잔을 주었지만 말이다.

잠시 후.

내 앞에 우묵한 반죽 볼이 놓였다.

그 안에는 하얗고 말랑말랑한 밀가루 반죽이 담겨 있었다.

내가 다칠까 봐 섬세하게 신경 썼다는 게 훤히 보여서, 어쩐지 가슴이 따스해졌다.

하지만 내 본 목적은, 다른 사용인들의 의복이 멀쩡한지를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티티한테는 앞치마 안 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주방 사람들이 난감한 표정이 되어서는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새 앞치마 여분은 없어?”

“여분이 있을 리가 있어요? 총괄 관리인님께서 최근에도 옷감을 아껴 쓰라고 잔뜩 화를 내셨잖…….”

무심결에 투덜거리던 하녀가,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내 쪽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재차 물었다.

“앞치마 업서? 그럼 언니 앞치마 티티 빌려주면 안 대?”

“네? 이 앞치마는 오늘 계속 제가 써서 더러워요. 게다가 아가씨의 몸에는 너무 클 텐데…….”

“갠차나.”

나는 네 살배기 어린아이다.

네 살이라서 아직 제대로 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까 마음껏 떼를 쓸 수 있다.

전혀 창피해할 필요 없다…….

나는 필사적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하녀를 똘망똘망하게 바라보았다.

이 눈빛 공격이 은근 효과가 좋더라고?

“아니, 그래도 정말 불편하실 텐데…….”

“티티 갠차는데.”

“하, 하지만.”

“진짜, 진짜루. 웅?”

결국 하녀는 내 반짝거리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앞치마를 벗어서 내게 입혀 주었다.

최대한 앞치마의 허리끈을 바투 묶어 주었으나, 앞치마 자락이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어서.

내 꼴은 객관적으로 아주 형편없어 보였지만…….

“와아, 앞치마다!”

나는 잔뜩 신이 난 척,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투두둑.

앞치마의 겨드랑이 부분에서, 실밥이 뜯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 역시.’

나는 이제 놀라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아까 앞치마 여분조차 없다고 말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주방 사람들의 의복도 노라와 그리 상태가 다르지 않은 듯하다.

* * *

나는 노라의 품에 안겨 타운하우스를 한 바퀴 쭉 돌았다.

그 결과.

‘……다들 옷 꼴이 말이 아닌데?’

의복들 상태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나빴다.

단추가 떨어진 건 예사요, 옷감 자체가 연약해서 바느질을 아무리 꼼꼼하게 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특히 옷뿐 아니라, 신발들의 질도 상당히 안 좋아서.

마구간을 관리한다거나 정원을 청소하는 등, 외부 활동을 하는 하인의 신발 밑창은 온통 닳아 있었다.

심지어는 부츠에 매는 신발 끈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러던 중.

‘어라?’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정원 저 멀리에서 시끄러운 고함 소리가 들린 탓이었다.

“내가 빨간 장미를 심어 두라고 했잖아!”

……응? 이 목소리는?

나는 황급히 노라를 채근했다.

“노라, 나 내려 조.”

“네? 하지만…….”

노라가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한껏 짜증을 부리고 있는 사람은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괜히 내가 백작대부인의 눈에 띄어서, 싫은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스러운 것 같은데.

“빨리.”

나는 재차 노라를 재촉했다.

결국 노라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나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이건 분홍 장미잖아!”

“과, 관리인님. 그건…….”

“이 장미를 빨간색이랍시고 심어놨다니, 당신 제정신이야?!”

한편 백작대부인의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고함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도도도 달려 나가던 나는, 문득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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