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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21)화 (22/163)

<21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웃어 주시면 돼요. 아셨죠?”

“웅!”

뭐, 고작 그런 걸로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면야.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침내 대망의 놀이교육 날이 다가왔다.

나는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 선 채, 내 옷차림을 점검하고 있었다.

때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 새카만 제복 원피스와, 그 위로 걸친 새하얀 에이프런.

걸어 다니는 데에 불편하지 않은 자그마한 단화까지…….

어딜 보아도 완벽한 꼬마 하녀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타티아나 아가씨.”

나를 요모조모 살펴보던 노라가 황홀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붙였다.

“너무 귀여우세요!”

“정말?”

“그럼요!”

노라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양팔을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나를 꼭 끌어안고 싶어 하는 듯하다.

물론 그런 격렬한 반응은,

“노라.”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의 사나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말끔히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요새 백작대부인은 나를 거의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원사와의 일 때문에 내가 더더욱 싫어진 것 같은데.

‘뭐, 그래 봤자 무슨 상관이람?’

이번 내 놀이교육만 끝나면, 모가지가 날아갈 텐데 말이야.

나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 그럼 가실까요?”

한편 백작대부인의 살벌한 눈총에, 찔끔하며 표정을 고친 노라가 내게 양팔을 뻗었다.

나를 안아 들려 함이었다.

“가주님과 마탑주님, 그리고 대사제님께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계세요.”

그런데 그때.

탁!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노라의 손을 탁 쳐 냈다!

“어딜 끼어들려 해?”

“네?”

“아가씨는 내가 모셔다드릴 거다.”

……허 참.

그 속 보이는 행동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보세요, 기베르티 백작대부인.

당신 나 싫어하잖아?

세 용사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자리에서만 자꾸 세심하게 시중드는 척하기야?

평소에는 나더러 빨리 쫓아오라면서 구박이나 했으면서!

“이리 오세요.”

백작대부인이 내 몸을 달랑 들어 올렸다.

워낙에 성의 없이 안아 들었기에, 내 몸은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지려 들었다.

‘아이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백작대부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자세가 너무 불안정한 나머지 당장이라도 바닥에 떨어질 것 같다.

그 와중에 내 시선을 잡아챈 건.

‘……부드럽네.’

나는 유심히 백작대부인의 드레스를 살폈다.

다른 하녀들이 입는 하녀복들과는 다르게, 백작대부인이 차려입은 옷은 팔에 감기는 감촉부터가 달랐다.

부드러우며 착 달라붙는다.

‘자기 혼자만 고급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으면 다인가?’

속으로 빈정거리던 나는, 때마침 들려오는 백작대부인의 핀잔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옷을 그렇게 잡아당기세요?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

그쪽이 날 너무 허술하게 안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이건 생존 본능이거든?!

애초에 그렇게 핀잔을 줄 시간에 잘 붙들어 주던가!

‘에효, 됐다 됐어.’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백작대부인을 붙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어쩐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모양새가 되었으나, 일단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난 세 용사가 기다리는 응접실로 향했다.

* * *

“가주님.”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정중하게 지크프리트를 불렀다.

“타티아나 아가씨를 모셔왔습니다.”

나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솜털처럼 보드라운 목소리였다.

“꼬마가 왔다고?”

“타티아나 양!”

정작 집주인인 지크프리트보다도 손님인 키리오스와 세자르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참고로 두 사람은 며칠째 계속 오를레앙의 타운하우스에 머무르고 있었다…….

‘공사다망하신 마탑주와 대사제께서는 왜 아직도 내 타운하우스에 계시는 건가?’

참다못한 지크프리트가 그렇게 핀잔을 주었으나,

‘용사 노릇하느라 마탑을 비운 지도 몇 년인데. 며칠 더 비운다고 마탑 안 무너지거든?’

키리오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대꾸했고.

‘제 휘하의 사제들은 모두 능력이 출중하니까요. 대신전을 믿고 맡길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세자르 또한 유들유들하게 말을 받아쳤다.

두 사람의 대응에 지크프리트는 할 말을 잃었고.

‘우리도 꼬마의 보호자니까, 꼬마가 놀이교육을 어떻게 받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잖아?’

그 틈을 타 키리오스가 반격했다.

그리고 세자르는…….

‘맞습니다. 요새 키리오스가 옳은 말을 하는 횟수가 늘었군요.’

‘뭐야?!’

뭐어, 그렇게 이런저런 입씨름이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두 사람은 내 놀이교육이 시작되는 날까지 타운하우스에 눌러앉아 있게 된 것이다…….

“우리 타티아나 양, 너무 귀엽고 깜찍한데요?”

세자르가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래, 세자르의 작은 동물과 아이를 향한 사랑은 유명하지.

다만 의외였던 점은.

“……뭐, 역시 어린애라서 그런가. 뭘 입어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네.”

언제나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키리오스까지, 별다른 트집 없이 나더러 칭찬을 해 줬다는 점이다.

“잘 어울리는군.”

심지어는 지크프리트까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어쨌든 다들 예쁘게 봐 주는 건 고맙구나.

“감사함미다!”

나는 보란 듯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치맛자락이 풍성하게 부풀어 오르며 종아리에 감기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그 후,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해사하게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 옷 너무 조아!”

그러자.

“타티아나 양은 역시 신께서 내려보내 주신 천사인 거죠?”

세자르는 가슴을 부여잡았고.

“크흠, 흠!”

키리오스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으며,

“흡.”

지크프리트는 짧게 숨을 들이쉬더니, 갑자기 옆에 놓여 있던 육아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는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좋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지금이야.

사용인 의복비에 대한 비밀을 밝혀낼 타이밍 말이야!

나는 흥분한 척 목소리를 높였다.

“티티 옷 너무 예뻐요!”

여기서 포인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게 주어진 옷에 기뻐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심받지 않을 테니까.

나는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꾸며냈다.

“단추도 뜯어지지 않구, 옷두 안 망가져서 조아요!”

“……옷이 찢어져?”

순간 지크프리트가 멈칫했다.

좋아, 걸려들었어.

나는 사악하게 두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일부러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시무룩하게 말을 잇는다.

“웅! 저번에 티티가 노라 앞치마를 잡아당겨서, 찢어져 버렸거든여…….”

그 후.

표정을 감출 겸, 나는 지크프리트에게 배꼽인사를 했다.

“그래두 이 옷은 튼튼하니까 안 찢어질 거야. 티티 조심해서 잘 입으께요!”

“……그래.”

지크프리트의 대답은 다소 늦게 흘러나왔다.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려 지크프리트의 표정을 살핀 나는, 남몰래 씩 웃었다.

역시 좀 미심쩍기는 한가 보지?

단추가 뜯어진다, 옷이 망가진다.

고작해야 어린아이의 힘으로 잡아당겼을 뿐인데, 노라의 앞치마가 찢어져 나갔다…….

정상적인 의복이라면 당연히 저럴 리가 없으니까.

처음부터 내가 노렸던 건 딱 하나다.

지크프리트의 마음에 의심의 불씨를 지피는 것.

‘좋아, 그건 성공적으로 이룬 것 같으니까…….’

나는 슬쩍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응접실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여유 만만했던 백작대부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런 백작대부인을 향해 사악하게 눈매를 휘어 보였다.

그러고는 천진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입을 연다.

“있자나요, 총 관리인님.”

“네? 아, 네. 아가씨.”

백작대부인이 허둥지둥 대답했다.

‘허, 참. 아가씨라.’

너무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바뀌는 것 아니니?

속으로 코웃음을 치던 나는, 일부러 두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졌다.

“티티, 관리인님이랑 똑같은 옷 입어서 조아요.”

“……네?”

“노라 옷은 티티가 잘못 잡아당겨서 찢어졌는데, 관리인님 옷은 튼튼하자나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니까 관리인님이 티티 신경 써 주셔서, 관리인님이랑 똑같이 만드러 주신 거지요?”

“아, 아니. 아가씨…….”

“감사함미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배꼽 인사.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싸늘한 목소리로 백작대부인을 불렀다.

“기베르티 백작대부인.”

“네, 네! 가주님!”

화들짝 놀란 백작대부인이 지크프리트를 돌아보았다.

지크프리트가 턱짓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잠시 이야기 좀 할까?”

그 말에, 백작대부인의 얼굴 위로 핏기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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