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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24)화 (25/163)

<24화>

‘차라리 상한 부분을 다 잘라내고 새로 기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아가씨 생각은 어떠세요?’

뭐, 나야 머리가 길건 짧건 별달리 상관없었으므로.

‘노라 마음대루 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노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선언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으, 응?’

‘제가 가주님께 아뢰어서, 제국 최고의 미용사를 수배할 테니까요!’

솔직히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다듬기만 하는 건데, 제국 최고의 미용사까지 필요한가 싶었지만…….

뭐, 예쁘게 잘라 준다는데 굳이 트집을 잡을 이유가 있나?

그러한 사연으로 단발머리가 된 것이다.

나는 책상에 뺨을 기댄 채, 노라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노라가 날 너무 예뿌게만 봐 줘서 그런 거 아니구?”

“아니요, 그럴 리가요.”

노라가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우리 아가씨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기님인걸요?”

“으음…….”

나는 괜히 손가락만 꼼질거렸다.

날 바라보는 노라의 시선은,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달콤해서.

저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정말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은 낯부끄럽다고나 할까?

한편 내 침묵을 무어라 해석했는지, 노라가 재차 내게 질문을 던졌다.

“졸리세요? 낮잠을 좀 주무시는 건 어때요?”

“갠차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라의 품 안에 고개를 폭 파묻었다.

빵을 굽는 것 같은 고소한 향기가 났다.

따스한 손길이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아니면 간식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주방에서 머핀을 새로 구웠다던데…….”

그런데 그때.

“야, 꼬마!”

도서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날 쩌렁쩌렁하게 불렀다.

‘앗, 이 목소리는?!’

난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게다가 남의 집임에도 저 거침없는 행보를 보아하니……!

“키리오스 님!”

키리오스였다!

“마탑주님을 뵙습니다.”

노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한편 내 몽실몽실한 단발머리를 바라보며, 키리오스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뭐야, 꼬마 머리 잘랐네?”

“웅, 머리가 너무 상해서 관리하기 어렵대요.”

“…….”

순간 키리오스의 얼굴이 먹구름 낀 하늘처럼 흐려졌다.

‘아니, 이번에도 또 내가 뭐 잘못 대답했나?’

찔끔한 내가 키리오스의 눈치를 살폈다.

동시에 키리오스의 뒤편으로 온화한 인상의 은발미남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잘 있었나요, 타티아나 양?”

“네!”

도도도 달려간 내가 세자르의 무릎을 꽉 끌어안았다.

인사하려는 노라를 눈짓으로 만류하며, 세자르가 나를 향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요새 몸은 좀 어떠신가요?”

“갠차나요!”

정말로 괜찮았다.

사실 마기만 안정되어 있으면 내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다만 그 마기가 가끔 제멋대로 움직여서, 내 몸을 공격할 때가 있어서 그렇지.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뜯어보던 세자르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괜찮아 보이는군요. 다행입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조금 긴장한 것 같던 키리오스도, 세자르의 확답을 듣고 나서 긴장을 풀었다.

그와 함께 뒤에서 지크프리트가 걸어 들어왔다.

“타티아나의 몸 상태가 괜찮다고?”

어라?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프리트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으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정말 잘됐어.”

지크프리트는 정말 기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그것도 잠시.

그가 휙 소리가 나도록 세자르와 키리오스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네 녀석들은 마탑과 대신전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나?”

미간을 와락 좁히며 두 사람을 노려보는 표정은, 온 세상의 근심걱정을 모조리 끌어안은 것처럼 어두웠다…….

키리오스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답했다.

“에이, 우리 사이에 정 없게 왜 그래?”

“우리 사이가 도대체 무슨 사이지?”

지크프리트가 정색하자, 세자르가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사이긴요, 다섯 마왕을 함께 토벌한 전우이지요.”

“그래, 전우. 좋지.”

지크프리트가 한 음절 한 음절 힘을 주면서, 아드득 이를 갈았다.

“다만 내가 전우들을 진심으로 반가워할 수 있도록, 네놈들도 좀 상식적으로 행동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고는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키리오스와 세자르를 노려본다.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사전 연락조차 없이, 내 집에 무작정 쳐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한데!”

“……저, 지크프리트?”

그제야 지크프리트의 저조한 기분을 눈치챈 키리오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으나.

지크프리트의 언성은 이미 한껏 높아져 있었다.

“마탑주와 대사제쯤 되는 인간들이, 마탑과 대신전에 언질조차 안 주고 훌쩍 빠져나와?!”

“아니, 그게…….”

“마탑과 대신전에서 매번 네놈들을 찾아달라며 징징거리는 편지가 온단 말이다!”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맹수처럼 포효했다.

“네놈들은 타티아나와 재밌게 놀면 그만이지만, 네놈들 뒷감당은 내가 해야 한다고!!”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세자르는 물론이고 평소 깐족거리던 키리오스까지 얌전히 입을 다물 정도였다.

잠시 후.

키리오스가 슬그머니 지크프리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야, 야. 너무 그러지 말고. 내가 엄청난 걸 갖고 왔다니까?”

“…….”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입을 꾹 다문 채, 여전히 사나운 시선으로 키리오스를 쏘아볼 따름이었다.

키리오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들고 온 서류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아니,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나는 일단 눈부터 비볐다.

그 후, 두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눈앞의 풍경을 살폈다.

키리오스의 서류 가방은 고작해야 서류 몇 장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 안에서 웬 구두 상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심지어는 처음부터 선물용으로 챙겨 온 건지, 구두 상자에 예쁘게 리본 장식까지 해 두었다!

‘아무리 봐도 구두 상자가 들어갈 만한 크기가 아닌데?’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키리오스를 올려다보았다.

그새 콧대가 높아진 키리오스가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공간 확장과 무게 감소 마법을 걸어 둔 가방이야.”

“공…… 모라구요?”

“공간 확장과 무게 감소 마법. 연구 서류와 실험도구들은 물론이고, 책상이랑 의자랑 간이침대까지는 가뿐히 들어가는데…….”

……도대체 책상이랑 의자랑 간이침대는 왜 들고 다녀야 하지?

솔직히 나는 가장 먼저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대단하다고 박수부터 짝짝 쳐 줬다.

“정말 멋져요! 대다내!”

“그렇지? 나 멋있지?”

키리오스의 양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망할 마탑주께서 얼마나 멋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고.”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키리오스에게 되묻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엄청난 걸 갖고 왔다고 하지 않았나?”

“아, 그러니까…….”

찔끔한 키리오스가 구두상자를 들어 내 품에 안겨 주었다.

“풀어 봐.”

내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던 나는, 일단 상자에 매여 있는 리본부터 풀었다.

커다란 뚜껑을 낑낑거리며 들어 올리자…….

“어머나.”

곁에 서 있던 노라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조그마한 어린아이용 구두였다.

동그란 에나멜 구두코와 앙증맞은 리본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구두?”

눈썹을 치켜 올리는 지크프리트를 향해, 키리오스가 요사스럽게 속살거렸다.

“이 구두, 요새 제도 아이들에게 엄청 유행하는 거래.”

“…….”

“그래서 오늘 꼬마에게 이 구두를 신기고 같이 산책하려고 했어. 엄청 귀여울 것 같지 않아?”

“…….”

“솔직히 지크프리트 너도, 꼬마가 구두 신은 모습은 보고 싶잖아. 응?”

지크프리트는 내내 침묵을 지켰으나, 살벌했던 표정은 어느새 사르르 풀려 있었다.

……용사의 섬세한 마음이란 가끔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지크프리트가 구두를 집어 들고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럭저럭 디자인이 귀엽기는 하지만, 그냥 평범한 구두 아닌가.”

“야, 너 나 무시해? 제국 마법사들의 수장, 마탑의 주인을 뭘로 보고!”

그러자 키리오스가 정색을 했다.

“설마하니 내가 꼬마한테 주는 선물을 평범한 걸 갖고 올 거 같아?”

“그럼 뭐가 다른데?”

“이제 입씨름은 그만 좀 하시지요.”

한편,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꼴을 차게 식은 눈으로 지켜보던 세자르가 입을 열었다.

“그럴 시간에, 타티아나 양에게 빨리 신겨 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 세자르 너 말 잘했다!”

키리오스가 엄지와 검지를 탁 소리 나게 퉁기며 나를 돌아보았다.

“자, 꼬마. 신어 봐!”

“…….”

갑자기 내게 쏠린 네 쌍의 눈동자에, 나는 그만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아니, 노라는 언제부터 날 열렬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심지어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던 지크프리트까지도, 지금은 묘하게 기대에 찬 눈빛이지 않은가!

‘아휴, 못 살아.’

어른들이 주는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를 회피할 겸, 나는 구두를 신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두가 발에 잘 맞는지를 살피기 위해, 두어 걸음 거닐어 보려고 했는데…….

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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