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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26)화 (27/163)

<26화>

아무리 그래도 황실에서 직접 열어 주는 승전축하 파티 아닌가.

그 말은 즉.

세 용사들이 주인공이라는 소리다.

정말로 나 때문에 세 용사들이 파티에 불참하기라도 하면, 황실과 세 용사들의 사이가 더더욱 벌어지겠지.

……지금도 그리 사이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말이야.

나는 필사적으로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느니 그냥 조용히 참석해서, 남자주인공이랑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시점의 남자주인공은 고작해야 여덟 살짜리 꼬맹이일 뿐.

아직 용사도 아니잖아?

나 또한 마왕으로 각성하지는 않았고 말이야.

그러니 당장 남자주인공과 마주친다 한들, 곧바로 내 목이 날아가지는 않을 거고…….

그런데 그때.

세자르가 내게 살갑게 말을 붙였다.

“타티아나 양처럼 어린 숙녀는, 민폐네 뭐네 그런 생각 하는 게 아니에요.”

“맞아, 그런 생각을 왜 하고 있지?”

지크프리트 또한 한 마디를 거들고 나섰다.

“너처럼 어린아이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돼.”

나는 울상이 되어서 세 용사를 올려다보았다.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는 거야?

나를 배려해 주는 게 눈에 보이니까, 나도 내 입장만 생각하면서 이기적으로 굴 수가 없잖아!

“……가께요.”

결국 나는 따끔거리는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항복 선언을 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된다.”

“동감입니다.”

“맞아, 꼬마 편한 대로 해.”

그 뒤로 세자르와 키리오스까지 나란히 입을 모았다.

하지만 난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태였다.

“아냐, 티티 용사님들이랑 같이 있으면 갠차나요.”

그제야 세 용사들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그래, 쫄지 말자.’

나는 굳게 마음을 다졌다.

지금의 남자주인공은 여덟 살짜리 꼬맹이일 뿐이야.

그 쪼그만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내 목을 날려 버리기라도 하겠어?

* * *

일주일 후.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황궁으로 가는 마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무려 황실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는 거였는데도, 용사들은 그저 태평하기만 했다.

‘긴장할 필요 없다, 그냥 편하게 있다 오면 돼.’

지크프리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고,

‘꼬마,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냥 우리를 불러.’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좋으니까요. 알았죠?’

그렇게 말해 주는 키리오스와 세자르도 꽤 든든했다.

다만 의외로 복병은 다른 곳에 존재했는데.

‘정말, 드레스를 고르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네…….’

아휴.

나는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 채, 세 용사가 격렬하게 토론하던 모습을 회상했다.

아마 세 시간 동안 입씨름을 했었지?

‘꼬마의 머리 색깔은 분홍색이니까, 장미색 쪽이 더 예쁘지 않아?’

‘그보다는 눈동자 색에 맞추는 편이 나아.’

‘아니, 누가 요새 그런 식으로 색을 고릅니까? 사람이 센스가 있어야죠, 원.’

내 몸단장을 도와주기 위해 기다리던 노라가, 안절부절못하며 시계를 흘끗거렸다.

참다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다들 그만해요.’

세 용사가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이러다가 파티 못 가겠서요, 티티가 입고 시픈 거 입을 거야.’

그렇게 선언한 내가 옷장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전 제도의 의상실에서 쓸어오다시피 한 드레스들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으와, 이거 한 벌에 도대체 얼마야?’

꼴깍 마른침을 삼킨 난, 바로 눈앞에 걸려 있는 연노랑 공단 드레스를 골랐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눈앞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티, 노랑색 드레스 입을래.’

‘그, 그래.’

‘꼬마가 입고 싶은 거 입어야지.’

‘미안해요, 저희가 좀 배려심이 없었군요.’

흥!

나는 콧김을 뿜어냈다.

‘야, 꼬마. 그래도 머리핀 정도는 이걸 꽂아보는 게…….’

그 와중 미련을 버리지 못한 키리오스가 슬그머니 레이스 리본 머리핀을 내밀었으나.

‘안 됩니다.’

세자르가 키리오스의 손등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매몰차게 내리쳤다.

‘타티아나 양이 직접 고르도록 두십시오.’

‘쳇.’

키리오스가 조그맣게 투덜거렸으나, 어쨌든.

결론적으로 지금의 난 자잘한 꽃무늬가 흩어진 노란 드레스를 입고, 키리오스가 내밀었던 머리핀을 꽂는 것으로 타협했다.

때마침 나와 시선이 마주친 세자르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타티아나 양, 오늘 너무 사랑스럽네요.”

“…….”

하지만 난 세자르의 저 천사 같은 미소에 속지 않았다.

키리오스가 쥐여 준 머리핀을 머리에 꽂자마자, 세자르가 그야말로 잡아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키리오스를 노려보았거든.

그 시선이 어찌나 살벌한지, 괜히 나까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아 참, 이따 대연회장에 들어갈 때 말이야. 우리 중 한 명이 꼬맹이를 에스코트하면 좋을 것 같은데. 누가 할래?”

키리오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지크프리트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건 내가…….”

“넌 일단 빠져.”

키리오스가 미간을 좁히며 톡 쏘아붙였다.

“저도 키리오스의 말이 옳다고 여깁니다.”

세자르 또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티아나는 이미 오를레앙 공작가에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럴 때라도 양보의 미덕을 보여 보시지요.”

“그게 일주일에 5일 이상을 내 타운하우스에서 머무르는 네놈들이 할 소린가?!”

그렇게 항변하는 지크프리트는 정말 억울해 보였다…….

하지만 세자르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꾸했다.

“타티아나 양은 키리오스가 고른 머리핀을 착용했고, 평소 지크프리트의 타운하우스에서 거주하고 있죠.”

“아니, 그게 무슨……!”

“이미 당신들은 충분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소립니다.”

지크프리트의 항의를 묵살하며, 세자르가 재차 생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에스코트는 내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오소소 어깨를 떨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눈앞의 세자르는 분명 온화하게 웃고 있는데…….

‘어째서 마차 안에 한기가 도는 거지?’

* * *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세자르의 손을 잡고 연회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래, 맞다.

세자르가 기어이 내 에스코트를 쟁취해 냈다…….

‘우와아.’

나는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려는 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여기가 바로 황성 대연회장이구나!’

찬란하게 빛을 흩뿌리는 샹들리에,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잘 닦인 대리석 바닥, 군데군데 장식된 금 세공품까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대연회장의 화려함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거였다.

대신 그들은 내 보호자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대단하기는 하네.’

나는 힐끔 곁눈질로 세 용사들을 올려다보았다.

은발회안을 가진 우아한 사제님과, 불꽃처럼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의 대마법사.

그리고 조각 같은 외양의 과묵한 기사는, 사실 그 조합만으로도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세상에, 저분들은…….”

“오를레앙 공작님과 마탑주님, 그리고 대사제님께서도 오셨네요!”

세 아빠들을 바라보는 선망의 시선이 어찌나 반짝이는지 모른다.

그에 비해 나를 향한 시선은 어떠하냐면.

“저 애는 뭐죠?”

“이번에 오를레앙 공작께서 아이를 하나 보살피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그 아이인가 봐요.”

“아, 그 마왕성에서 주워 왔다는 아이요?”

비록 대놓고 나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소곤거림에는 분명 적의가 서려 있었다.

그런데 그때.

“잠시 실례할게요.”

가벼운 목소리와 함께, 세자르가 훌쩍 내 몸을 안아 들었다.

‘뭐야, 뭔데?!’

화들짝 놀란 내가 반사적으로 세자르의 목을 끌어안았다.

동시에 세자르가 주변에 들으란 듯이 입을 열었다.

“타티아나 양, 사람 많은 곳에는 처음 와 봐서 많이 놀랐죠?”

“…….”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세자르는 지금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몸소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세자르가…… 나를 이렇게나 신경 쓰고 있다고.

나는 세자르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렇구나, 나 긴장하고 있었구나.’

솔직히 세자르가 나를 안아 들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는데.

내 손바닥은 어느새 차게 식어 있었다.

“아녜요.”

나는 붕붕 고개를 내저었다.

“용사님들이 제 옆에 있으시자나요. 티티 갠차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세자르가 눈매를 접으며 사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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