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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34)화 (35/163)

<34화>

“1황자님 보고 시퍼요. 1황자님이 티티한테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슬쩍 황비와 루돌프 모자의 눈치를 살피는 척을 했다.

그러고는 괜히 양어깨를 움츠리며, 지크프리트의 옷깃을 움켜쥔 손에 지그시 힘을 준다.

‘지크프리트야, 보이니? 지금 내가 황비와 루돌프 때문에 이렇게 겁먹고 있단다!’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팔을 뻗어 보호하듯이 내 어깨를 감쌌다.

“아무래도 타티아나가 조금 긴장한 것 같으니, 1황자 전하께서 함께 계셔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오를레앙 공. 그건…….”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이미 아이가 많이 무리했습니다.”

지크프리트가 싸늘하게 되물었다.

“폐하께서는 저희 타티아나에게 사과하시기 위해, 지금 이 자리를 마련하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러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 정도 배려는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크프리트의 서슬 퍼런 시선에, 결국 황제 부부는 라키어스를 불러들였다.

조금 기다리자,

똑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울리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선 라키어스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 그리고 세 용사님들을 뵙습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쩐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라키어스는 황제더러…… 아바마마가 아니라 황제 폐하라고 부르는구나.’

그래도 피를 나눈 친부인데.

저 얄미운 루돌프 녀석은, 분명 황제더러 아바마마라고 불렀었는데…….

“라키어스, 자리에 앉거라.”

황제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동시에 황비가 두 눈에 불을 켜고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설마, 우리와 같은 자리에 앉을 생각은 아니겠지?’

마치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이.

눈치 빠른 라키어스가 그 무언의 압박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라키어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출입문 근처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으려 했다.

응접실 안에서 제일 말석인 자리였다.

담담한 표정을 보아하니, 평소에도 저런 대우를 일상적으로 받아왔던 것 같고.

‘내가 우리 라키어스가 저렇게 무시당하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볼 줄 알고?’

나는 두 눈에 날을 바짝 세웠다.

“1황자님!”

내 부름에, 라키어스가 놀란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내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1황자님은 티티 옆에 계시면 안 대요?”

순간 내 세 보호자들이 이쪽을 홱 돌아보았다.

으아, 옆얼굴이 따끔따끔해!

그 뜨거운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라키어스를 향해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티티는 1황자님이랑 같이 앉고 시픈데!”

“…….”

그 말에, 내내 무표정했던 라키어스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마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시…… 1황자님은 티티 시러요?”

괜히 시무룩한 표정을 꾸며내며 그렇게 묻자, 라키어스가 얼른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뇨,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라키어스의 뺨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나는 냉큼 라키어스의 손을 붙들고 잡아당겼다.

“그럼 여기 앉아요!”

그렇게 라키어스는 얼떨결에 내 옆에 앉게 되었다.

다만 라키어스가 상석에 앉는 모습을 보자마자, 황비와 루돌프가 잔뜩 분한 표정이 되기는 했는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나는 두 사람을 가뿐하게 무시하며, 라키어스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남자주인공아, 내가 이렇게 너를 신경 쓰고 있단다.

앞으로도 잘할게.

그러니까 추후에 내 목을 날리는 것만 자제해 주렴, 알았지?

* * *

잠시 후.

어른들끼리 좀 더 담소를 나눈다고 하기에, 어린이들은 먼저 밖으로 빠져나왔다.

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루돌프 녀석이 온몸을 배배 꼬아 대서 그런 거지.’

나는 흘끗 루돌프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어른들의 대화가 시작된 지 딱 5분 만에, 루돌프는 지루해 죽겠다는 티를 팍팍 내기 시작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쟤 때문에 이 자리가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얼마나 오냐오냐 자랐으면 눈치도 없이 저런담?

황비가 루돌프에게 몇 번이나 눈총도 주고, 무어라 귀엣말도 하는 듯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보다 못한 황비가,

‘아무래도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으니, 아이들끼리 따로 놀고 있으라고 할까요?’

라고 제안했고.

그리하여 나와 라키어스, 루돌프는 따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라키어스와 함께 걷던 나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왜 루돌프 자식이 우리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고 있는 거지?’

나와 시선이 마주친 루돌프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너와 놀아 줄 테니, 감사하게 여기라고.”

“…….”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와,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나는 미간을 좁히며 루돌프에게 되물었다.

“왜 제가 2황자님이랑 놀아야 해요?”

“뭐?”

내 질문에, 순간 루돌프가 허를 찔린 표정을 했다.

“그야 내가 너한테 사과했잖아. 그러니까……!”

“아, 그쵸. 2황자님께서 사과는 하셨져. 근데 그렇다구 해서…….”

나는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소악마처럼 씩 웃었다.

“티티가 2황자님이랑 꼭 놀아야만 하는 건 아니자나요?”

“……뭐라고?”

“저, 2황자님이랑 놀기 시러요.”

나는 얄밉게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1황자님이랑 오붓하게 둘이서 놀 거야. 2황자님은 끼어들지 마라요.”

“너, 너……!”

잠시 얼이 빠진 얼굴이었던 루돌프가, 얼굴을 확 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라키어스의 손을 꼭 붙들었다.

“티티는 1황자님하고만 놀고 시픈데. 1황자님은 어때요?”

내 은근한 질문에, 라키어스가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춰 내게 속삭였다.

“타티아나 양께서는 루돌프를 떼어 놓고 싶으신 건가요?”

“네, 마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어리둥절했다.

저런 건 왜 물어보지?

그런데 그때.

“그렇다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응?

동시에 내 몸이 휙 위로 들렸다.

“꺄악!”

나는 반사적으로 라키어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양팔로 단단하게 나를 받쳐 안은 라키어스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호화로운 복도의 풍경이 훅훅 뒤로 밀려난다.

아니, 내 짤따란 다리로 달려 봤자 루돌프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거라는 건 알겠는데.

‘세상에, 이 속도 뭐야?’

이게 여덟 살짜리 소년이 보일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란 말이야?

한 세계의 남자주인공 정도가 되면, 이런 재능은 기본으로 갖고 있는 건가?

당황하여 두 눈을 깜빡이던 나는, 문득 저 멀리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루돌프를 발견했다.

루돌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그리고 저 일그러진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사이다 한 병을 원샷한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것을 느꼈다.

까마득히 멀어지는 루돌프를 향해, 나는 보란 듯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주었다.

“2황자님, 잘 있서요! 안녕!”

아, 기분 째진다!

* * *

그렇게 루돌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

라키어스는 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주었다.

“갑자기 안아 들어서 죄송합니다.”

“…….”

그러고서는 대뜸 한다는 말이, 또 사과다.

에효, 정말.

나는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냈다.

황실에서 얼마나 눈칫밥을 줬으면 애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아졌담?

“1황자님은 맨날 사과만 해.”

뚱하니 대답하자, 순간 라키어스가 허를 찔린 표정을 했다.

“티티는 1황자님이 사과하는 것보다, 구냥 티티한테 웃어 주는 게 조은데.”

“……제가 그렇게 안 웃습니까?”

“네.”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라키어스는 괜히 손을 들어 제 입가를 매만졌다.

라키어스의 입술은 일자로 딱딱하게 다물려 있었다.

“…….”

라키어스는 다시 한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쟤, 자기가 매번 무표정한 얼굴이었던 것 자체를 몰랐던 듯한데.

“그래도 갠차나요.”

나는 라키어스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앞으로 자주 웃으면 대지.”

“자주…… 웃어요?”

“웅. 그러니까 티티랑 자주 놀아줘야 대요. 그래야 티티가 1황자님 마니 웃게 해 주지. 알았져?”

나는 사심을 꽉꽉 담아서, ‘자주 놀아 줘야 한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우리 자주 좀 보자.

그래야 안면도 익히고, 정도 쌓고.

장차 네가 내 목을 얌전히 보존시켜주지 않겠니?

“……예.”

잠시 얼떨떨해하던 라키어스가 어설프게 나를 따라 웃었다.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예쁜 미소였다.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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