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37)화 (38/163)

<37화>

내 친부모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어째서 날 홀로 두었을까?

하기야 마족과 인간의 혼혈이라면, 나라도 꺼려 할 것 같긴 하지만…….

심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정말, 책 속에 빙의했으면 뭐해?’

내 첫 번째 기억은, 노예 관리장에서의 힘겨운 일상.

그리고 날 찾아낸 고위 마족들의 비열한 미소였다.

그 이전의 기억은 누군가가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른 책 빙의자들은 갓난아이 때부터 모조리 기억하던데, 나는 도대체 뭐냐고!

하지만.

나는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 친부모가 나를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상관없어.

나는 나인걸.

비록 내가 친부모가 없다고 한들, 남이 날 무시할 권리가 생기는 게 아니라고!

“티티가 고아건 말건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루돌프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2황자님께서 저한테 그러케 말씀하실 자격은 없……!”

그 순간.

누군가가 성대하게 난입했다.

“우리 꼬마가 왜 부모가 없어!!!”

키리오스였다.

“마, 마탑주?”

당황한 루돌프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키리오스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루돌프를 노려보았다.

“내가! 아빠야!!”

황족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집어치운 채, 키리오스는 마치 맹수처럼 포효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람?’

나는 기겁했다.

하지만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키리오스와 합류한 세자르가, 당연하게 나를 품 안에 안아 올렸다.

“저도 타티아나 양을 제 친딸처럼 여기고 있답니다.”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그 미소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니 예쁨 받는다고 잘난 척을 한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어 보이는군요. 타티아나 양은 실제로 예쁨을 받고 있으니까요.”

“타티아나의 입양 문제는 오를레앙에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뒤에서 걸어 나온 지크프리트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바짝 날이 선 금안이 루돌프를 쏘아보았다.

“입양 절차가 끝나면, 타티아나는 오를레앙의 하나뿐인 공녀가 될 예정이니.”

“오, 오를레앙 공.”

“2황자께서 방금 하셨던 말씀에 대하여…… 마땅히 사죄하셔야겠지요?”

루돌프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갔다.

뒤늦게 허겁지겁 황제 부부가 달려 들어왔다.

“루돌프, 이게 무슨……!”

황비가 놀란 얼굴로 냅다 루돌프부터 끌어안았다.

“어, 어마마마!”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루돌프가 황비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저 녀석이 이번에도 또 눈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네?!

아무리 선즙필승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내가 두 눈에 불을 켜고 루돌프를 노려보던 그때.

“아무래도 2황자께서는 저희 타티아나를 아주 싫어하시나 봅니다.”

지크프리트가 가시 돋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전에는 손찌검을 하려 하시더니, 이번에는 고아라면서 막말을 쏟아내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황비가 다급하게 변명하려 했으나, 때마침 누군가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오해가 아닙니다.”

응?

이 목소리는?

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

라키어스는 다소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그럼에도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황비를 바라보았다.

“루돌프가 직접 제 입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1황자!”

황비가 새된 목소리로 라키어스를 불렀으나, 라키어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루돌프는 비록 나이는 어리나, 제국의 황자로서 만인을 보살펴야 하는 위치입니다.”

“지금 1황자가 이 어미를 가르치려 하는 것입니까?”

어미라.

나는 심각한 상황조차 잊고 기가 막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언제부터 어머니 노릇을 했다고, 어미네 뭐네 떠들어 대는 거람?

라키어스더러 꼬박꼬박 1황자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선을 긋는 거나 다름없잖아.

아무래도 라키어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 것 같았다.

“가르치려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이보세요!”

“미래의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황위 계승권자라면, 마땅히 제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텐데.”

깨진 루비 파편처럼 날카로운 눈동자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황비를 똑바로 응시했다.

“루돌프가 타티아나 양에게 고아라며 압박하는 건, 여러모로 적절치 못한 처신 아닙니까?”

황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따로 반박은 하지 못했다.

“그러니 저는, 루돌프가 타티아나 양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키어스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라키어스가…….

‘어떡해, 너무 안쓰러워.’

나는 입술을 꾹 당겨 물었다.

여기서도 라키어스는 스스로를 방어하기는커녕, 오로지 내 편만 들어주고 있었다.

‘부모가 없다’는 모욕은, 나뿐 아니라 라키어스도 함께 들었는데도.

황제가 굳은 얼굴로 명령했다.

“루돌프. 당장 타티아나 양에게 사과하거라.”

“아바마마!”

“어서!!”

황제가 와락 언성을 높였다.

루돌프가 울먹이며 황비를 돌아보았으나, 황비 또한 이번에는 루돌프의 시선을 외면했다.

“……얼른 사과하고 오렴.”

황비가 이를 악물며 루돌프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서도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아무래도 분해서 속이 뒤집어졌나 보다.

다만 세 용사의 눈치가 보여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과를 시키는 것뿐일 터.

‘흠, 그렇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있자나요, 티티는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런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황실 가족을 향해, 내가 질문을 던졌다.

“왜 티티한테만 사과하시는 고예요?”

“타티아나 양, 그게 무슨 소리죠?”

“1황자님한테두 사과해야죠.”

순간 황실 가족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왜 사과해야 하지?’

노골적으로 그런 의문을 품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들에게는…… 라키어스는 아예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사람인 거야.’

저 반응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라키어스도 상처받고, 외로워하는 어린아이인데.

어째서 그 누구도 라키어스를 존중해 주려 하지 않는지…….

“티티뿐 아니라, 1황자님한테두 ‘부모 없는 것’이라고 했자나요.”

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바짝 날이 섰다.

“그러면 1황자님한테도 사과해야 하는 고 아녜요?”

“타티아나의 말이 맞습니다.”

때마침 지크프리트가 내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러고 보면 2황자께서는, 승전축하 파티 때에도 제대로 1황자 전하께 사과드리지 않았었죠.”

차가운 금빛 눈동자가 루돌프를 흘끗 바라보았다.

“물론 제가 보지 않는 곳에서 사죄하셨을 수도 있으나…….”

“…….”

루돌프는 반사적으로 눈을 피했다.

그 꼴을 바라보던 지크프리트가 이내 피식 조소했다.

“역시 그러시지는 않은 것 같군요.”

“…….”

정곡을 찔렸는지, 루돌프가 흠칫 어깨를 굳혔다.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가차 없었다.

“이참에 그때의 무례까지 함께 사과하시지 그러십니까?”

“오, 오를레앙 공. 저는…….”

“사과, 안 하실 겁니까?”

지크프리트가 재차 압박했다.

루돌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를레앙 공작!”

그와 동시에 황비가 다급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희 아이가 타티아나 양에게 저지른 무례는, 제가 정중하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운을 뗀 황비가,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라키어스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1황자의 일은…… 형제들 간의 일이지 않습니까. 제가 잘 다스릴 테니…….”

“어마마마.”

루돌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비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라키어스 자식은 제 멱살까지 잡았다고요!”

그 와중에도 깨알같이 일러바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으, 진짜 싫다.’

나는 부르르 양어깨를 떨었다.

아무래도 용사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가 보다.

제각기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 보다 못한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만하시오, 황비.”

“화, 황제 폐하.”

황비는 흡사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황제를 돌아보았다.

“우리 루돌프더러 1황자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야말로 애끓는 외침이었다.

아니, 누가 보면 루돌프더러 죽으러 가라고 한 줄 알겠어?

나는 속으로 빈정거렸다.

“황비, 정신 좀 차리시오!”

황제가 와락 언성을 높였다.

“세 용사들 앞에서 언제까지 추태를 부릴 거요?!”

“…….”

한편, 황비는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초조한 눈빛으로 세 용사를 번갈아 바라보던 황비가, 마지막으로 사나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뭐, 그렇게 째려봐서 어쩔 건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황비의 시선에 겁을 먹은 척 세자르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몸을 움츠렸다.

세자르가 걱정 말라는 것처럼 내 등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싸늘하게 입을 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