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아, 응?”
“괜찮아? 아까 전부터 표정이 계속 안 좋네.”
라키어스가 대번에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재차 내게 물었다.
그렇다고 라키어스더러 ‘바르톨로아 일족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몰라서 힘들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보다 노라, 아빠들은 어디 계셔?”
“아, 그건…….”
잠시 애매한 얼굴이 되었던 노라가, 얼른 라키어스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보다 아가씨, 정말로 괜찮으신 거예요? 아까 전부터 계속 표정이 어두우세요.”
“에이, 괜찮다니까?”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노라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다정했다.
“물론 전 아가씨를 믿지만…… 그래도 뭔가 고민이 있으시다면 꼭 말씀해 주세요. 아셨죠?”
“…….”
순간 난 지그시 입술을 당겨 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저 시선에 서린 애정을 모르지 않았기에.
노라에게 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일은, 아마도 평생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응!”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주방이 있는 1층으로 발을 들이자, 복도에서부터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음, 이 냄새는?’
킁킁 냄새를 맡던 내가 예리하게 눈을 빛냈다.
‘케이크 굽는 냄새 아니야?’
허투루 여섯 해 동안 타운하우스의 갖가지 달콤한 음식을 섭렵한 게 아니라 이거야!
정신연령이 몸의 나이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고작해야 케이크 굽는 냄새 하나만으로, 다소 침울했던 기분이 단박에 밝아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얼른 가 보자, 라키!”
나는 신이 나서 라키어스의 손을 잡아당겼다.
“주방에서 내 생일케이크를 굽나 봐!”
“티티, 좀 천천히 가! 아까 노라가 넘어진다고 했잖아!”
입으로는 그렇게 나를 타박하면서도, 라키어스는 내 보폭에 맞춰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그리하여 난입한 주방에는,
“뭐야, 왜 아빠들이 여기 있어요?”
세 아빠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주방이라니.’
뭐랄까, 우리 아빠들과는 너무 안 어울리는 장소 아니야?
“헉, 뭐야.”
키리오스가 허를 찔린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꼬마가 왜 여기 있어? 아직 수업 듣고 있을 때 아니야?”
……저기,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만.
세 아빠들은 노란색 병아리가 새겨진 앞치마를 야무지게 차려입은 것으로도 모자라.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온통 반죽 범벅이었다.
“……혹시 케이크 반죽이랑 싸우기라도 한 거예요?”
내 미심쩍은 질문에, 세 아빠들이 서로서로 눈치를 살폈다.
‘야, 네가 말해.’
‘왜 나한테 떠넘기고 그러나?’
‘어휴, 이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
그 격렬한 눈치싸움 끝에,
“그, 오늘은 우리 티티 양의 생일이잖아요?”
세자르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생일 선물을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고요.”
“네, 그랬죠.”
“모처럼 티티 양이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했는데, 되는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타티아나 네게, 직접 구운 생일케이크를 먹여 줄 생각이었다.”
지크프리트가 특유의 무뚝뚝한 어조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 맞아. 우리가 꼬마 입맛은 딱 알잖아?”
키리오스도 냉큼 맞장구를 쳤다.
“…….”
그리고 나는 어쩐지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난 하도 아빠들이 내 생일 선물을 신경 쓰기에.
딱히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물건도 없었기에,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보내자는 뜻이었는데…….
‘내 생일에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줄 줄은 몰랐어.’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져서, 나는 괜히 치맛자락을 꾹 움켜쥐며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러지 않으면 코맹맹이 소리를 낼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스승님들, 도대체 그 병아리 앞치마는 뭡니까?”
때마침 라키어스가 질색하며 물었다.
그러자 키리오스가 가슴을 쭉 펴며 대답했다.
“뭐긴 뭐야, 우리 꼬마가 직접 골라 준 앞치마지.”
“…….”
나는 다시 한번 침묵했다.
다만 침묵의 이유는 사뭇 달랐다.
아니, 방금 전까지 나를 그렇게 감동시켜 주더니.
곧바로 이렇게 황당하게 만들기야?!
아니, 애초에 그걸 골라 줬다고 할 수가 있는 걸까?
난 그냥,
‘꼬마는 강아지와 병아리 무늬 중에 뭐가 더 좋아?’
……라고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병아리를 골랐을 뿐이라고!
“왜, 라키어스. 부럽냐?”
키리오스가 씩 눈매를 휘어 보이며 깐족거렸다.
“너는 이런 거 없지?”
“…….”
그러자 라키어스가 입술을 꾹 다무는가 싶더니, 휙 나를 돌아보았다.
붉은 눈동자에는 서러움이 가득 담겨 있어서.
나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아니, 라키어스 너는 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건데?
마치 내가 널 배신이라도 한 것 같잖아!
* * *
어쨌거나 아빠들이 케이크 반죽과 사투를 벌인 보람이 있기는 했다.
마침내 완성된 케이크는 꽤 그럴듯한 모양이었다.
초콜릿 시트 위에 생크림을 바르고, 설탕 시럽을 바른 딸기를 얹어 두었다.
나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케이크를 구경했다.
“이것 봐, 라키. 진짜 맛있어 보여!”
“……뭐, 스승님들께서 여러모로 힘내셨네.”
라키어스까지도 마땅찮은 얼굴로나마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때마침 케이크 반죽을 씻어 낸 후 식당으로 되돌아오던 아빠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제각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케이크가 마음에 드나?”
“그럼요! 아빠들, 진짜 멋져요!”
지크프리트의 질문에, 나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짝짝짝 쳤다.
기세등등해진 아빠들의 양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다만 라키어스는 못내 눈꼴이 시리다는 표정이었다…….
“타티아나, 이리 와라.”
그러거나 말거나 지크프리트는 나를 털방석이 깔린 의자에 앉혀 주었고,
“추우니까 이거 두르고 있어.”
키리오스가 양어깨에 두툼한 숄을 걸쳐 주고,
“차부터 좀 마셔 봐요, 그러면 좀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세자르는 내 손에 따끈따끈한 차가 담긴 찻잔을 쥐여 주었다.
“…….”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세 아빠들을 바라보았다.
타운하우스 내부는 난방이 빵빵할뿐더러, 심지어는 최근 난방공사까지 모조리 새로 한 상태였다.
참고로 멀쩡한 난방공사를 왜 새로 했느냐.
그건 바로, 내가 코가 간질간질해서 재채기를 한 번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초봄이라고.’
내가 자주 골골대는 통에, 아직까지 난방을 하기는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까지 꽁꽁 싸매 둘 날씨가 아니란 말이야!
“그,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내가 머쓱하게 중얼거리자, 키리오스가 대번에 도끼눈을 떴다.
“꼬마, 혹시나 감기에 걸려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
아뇨, 솔직히 조금 더울 정도인데요…….
그러한 항변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나는 그냥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기로 했다.
다만 아빠들은 내게만 관심을 기울일 뿐, 계속해서 라키어스를 투명인간 취급할 기세였기에.
“라키, 이리 와.”
보다 못한 나는 라키어스를 손짓으로 내 곁에 불러다 앉혔다.
동시에 라키어스와 세 아빠 사이에 희비가 교차했다.
“응, 티티.”
라키어스는 흡사 험난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쥔 지휘관이라도 된 양, 당당한 걸음걸이로 내 곁에 앉았다.
세 아빠의 표정은 나란히 살벌해졌다.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럴 때에는 라키어스와 세 아빠를 중재하려고 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래서 티티 넌 누구 편인데?’라는 유치한 질문을 듣기 십상이란 말이지.
그러니 이럴 때에는…….
‘무시가 답이야.’
그러한 판단하에.
나는 서로서로 격렬한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네 사람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케이크는 언제 먹어요?”
“아, 그렇지. 잠시만 기다려라.”
퍼뜩 정신을 차린 지크프리트가 빵칼을 쥐었다.
케이크를 자르는 그 눈빛이 어찌나 신중한지, 적장을 앞에 둔 장군도 저런 표정은 짓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속으로 탄식을 감추지 못했는데.
‘소드마스터라고 해서, 빵칼까지 잘 다루지는 못하나 봐…….’
케이크가 어찌나 비뚤배뚤하게 잘려 나갔는지, 모양이며 크기까지 제각각이었다…….
“……야, 소드마스터면 모든 날붙이는 잘 다뤄야 하는 것 아니냐?”
“저희는 케이크를 자르라고 했지, 분해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보다 못한 키리오스와 세자르까지 한마디를 할 정도였다.
“시끄러, 빵칼은 검이 아니란 말이다.”
지크프리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정색을 했다.
그러고는 접시에 케이크를 담아서 제일 먼저 나와 라키어스에게 건네주었다.
“자, 받아라.”
그리고 난 깨달았다.
나와 라키어스 몫으로 내민 케이크는, 비뚤배뚤한 케이크 조각들 중에서 제일 예쁜 모양을 골라 담았다는 것을.
‘뭐야, 정말.’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라키어스까지 꼬박꼬박 챙겨 주고 있잖아?
어린아이를 배려할 수 있는 어른들이라니.
역시 내 아빠들은 꽤 멋진 사람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