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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43)화 (44/163)

<43화>

* * *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생일이었다.

“우, 배불러…….”

나는 너무 많이 먹어서 동그래진 뱃가죽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녁은 물론이고, 내일 아침까지 굶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키리오스가, 선물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자, 꼬마. 받아라.”

“이게 뭐예요?”

나는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생일 선물은 케이크 아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어리둥절해져서 되묻자, 키리오스가 엄중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케이크는 케이크고 선물은 선물이지.”

“그, 그런 거예요?”

“그럼, 꼬마는 우리가 그렇게 박한 사람으로 보여?”

그, 그런가?

주변을 둘러보자, 세자르와 지크프리트도 제각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라키어스까지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얼른 풀어 봐.”

키리오스의 채근에, 나는 상자를 묶은 리본을 풀어냈다.

그 안에서 드러난 물건은…….

“지갑?”

어린아이가 들고 다닐 법한 조그마한 손지갑이었다.

폭신폭신한 재질의 노란 병아리 지갑은, 당장이라도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래, 내가 직접 공간 확장 마법과 무게 감소 마법, 물건 분류 마법까지 모조리 걸어 놨지.”

키리오스가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총 용량은 서랍장 하나 분량 정도야. 들고 다니고 싶은 건 다 쑤셔 넣어도 돼!”

대박.

나는 두 눈을 빛냈다.

그 말은 즉, 이 안에 내 개인 재산을 숨겨 놓을 수 있다는 거 아냐?

현금은 물론이고, 금이라거나 보석 같은 현물들도 다 넣어 둘 수 있는 거야!

그렇다면 언젠가 독립할 순간이 올 때, 이 지갑만 들고 가면 되니까…….

“…….”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비록 아직까지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용사들이 처단해야 마땅할 마왕이니까.

언젠가는 떠날 생각도 하고 있어야 해.

병아리 지갑을 움켜쥔 손아귀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탁.

세자르가 내 앞에 웬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제 선물도 열어 봐야지요?”

아, 그렇지.

나는 황급히 표정을 정리하며 꾸러미를 뜯어 보았다.

코르크 마개로 밀봉된 유리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목에는 예쁜 리본이 매어져 있고, 병 안으로는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감싸인 동글동글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흡사 사탕 병을 연상시키는 깜찍한 모양새였으나…….

‘뭔가 불길한데.’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동시에 세자르가 산뜻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영양제예요.”

헉.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재료부터 제가 엄선했답니다.”

지, 직접요?

“그럼요. 약초의 배합 하나하나까지 우리 티티를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세자르는 그야말로 한 송이 백합처럼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마주하며, 나는 직감했다.

‘이거, 진짜 어마어마하게 쓸 거야.’

여태까지의 내 경험상, 약의 쓴맛과 세자르의 화사한 미소는 비례했었다…….

“그, 라키어스는 매번 고되게 훈련하잖아요? 그러니까 영양보충은 저보다는 라키어스 쪽을 해 주는 게…….”

미안하다, 라키어스!

난 라키어스를 팔아넘기면서까지, 어떻게든 영양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시도했으나.

“라키어스 녀석도 제가 따로 챙겨 먹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세자르는 가차 없이 내 도주로를 틀어막아 버렸다.

지, 진짜로?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나는 간절하게 라키어스를 바라봤는데.

“…….”

라키어스는 어느새 해탈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건…… 영양제의 맛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다…….

한편 내 절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자르는 홀로 해사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 영양제는 오로지 티티 양의 몸에 맞춰 제작한 거라서, 다른 사람의 몸에는 안 맞을 거예요.”

흑.

이건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잖아?

“감사합니다…….”

결국 나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 이건 내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지크프리트가 식탁 위에 선물상자를 내려놓았다.

어라, 이건?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른 선물상자의 뚜껑을 들어 올리자,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은…….

“오르골?”

평소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지크프리트답지 않게.

의외로 상자 안에서는 예쁘게 세공된 오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골 뚜껑을 열자, 섬세하게 세공된 네 가지 조각들이 빙글빙글 춤을 추며 나를 맞이했다.

나와 지크프리트, 세자르, 키리오스를 형상화한 조각들이었다.

달콤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어린아이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였다.

“우와아…….”

나는 멍하니 오르골 안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정말로…….

‘사이좋은 가족들 같아.’

악의 축인 마왕.

그리고 그런 마왕을 처단하고,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울 용사들이 아니라.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가족 말이다.

“…….”

나는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커다랗고 따스한 손이 내 정수리를 토닥였다.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다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크프리트였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그때.

지크프리트가 라키어스에게 흘끗 시선을 돌렸다.

“라키어스.”

“예, 스승님.”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르게 하는 라키어스에게, 지크프리트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뭐 하나? 타티아나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예?”

허를 찔린 라키어스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동시에 세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요, 며칠 전부터 티티 양에게 무슨 선물을 줄지 고민하고 있었잖아요?”

“그, 그렇기는 하지만.”

“뭐야, 왜 이제 와서 빼는 건데?”

키리오스 또한 능글맞게 말을 거들었다.

‘뭐야, 이 분위기?’

나는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한편 라키어스의 표정은 구름 낀 하늘처럼 어두워졌다.

“그…….”

말끝을 흐리던 라키어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아예 주지 않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럼?”

“다만 조금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

“…….”

세 용사들이 미묘한 표정으로 라키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크프리트가 딱 잘라 입을 연다.

“네 선물이 초라하다거나, 혹은 타티아나의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

아무래도 정곡을 찔렸나 보다.

라키어스가 흠칫 어깨를 굳히는가 싶더니,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어?’

나는 입을 딱 벌리며 라키어스를 돌아보았다.

세 용사들은 아무래도 나와 크게 심정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제각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크프리트가 한숨을 푹 쉬며 라키어스를 불렀다.

“라키어스.”

“……예.”

“너도 그렇고, 타티아나도 그렇고. 원래 어린애들은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이 많나?”

아니, 거기서 왜 나를 끌어들이는데?

나는 도끼눈을 뜨며 지크프리트를 노려보았으나, 솔직히 저 말 자체에는 동감이기는 했다.

라키어스 녀석, 쪼끄만 게 무슨 저렇게 고민이 많아?

“애초에 너는 아직 아이고, 우리는 어른이잖은가.”

지크프리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걸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타티아나도.”

지크프리트가 슬쩍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원하지 않을 거고.”

맞아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지크프리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휙 라키어스를 돌아본다.

“그래서 나 선물 안 줄 거야?”

“……아니, 그게.”

“진짜, 진짜로 안 줘?”

일부러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렇게 묻자, 라키어스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리고.

“이, 이건 내 선물인데.”

결국 내가 승리했다!

라키어스가 쭈뼛거리며 내게 길쭉한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그를 냉큼 빼앗아 들었다.

“고마워! 이거 지금 풀어 봐도 돼?”

끄덕끄덕.

라키어스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긴장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게, 영 선물이 자신이 없는 모양새인데…….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네.’

나는 내심 혀를 쯧쯧 찼다.

무려 미래에 내 목을 날려 버릴 용사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잖아?

돌멩이 하나를 받아도, 기뻐 죽겠다는 표정을 지을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뭐, 물론 저 녀석이 그렇게까지 센스 없이 굴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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