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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46)화 (47/163)

<46화>

‘뭐야, 키리오스도 부끄러워할 때가 다 있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다만 우리 부녀의 훈훈한 분위기를 마주하며, 이름 모를 마법사는 그야말로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때마침 내게 주스를 내밀었던 조각상이, 마법사에게도 주스를 권했다.

“주스 한 잔 드시겠습니까?”

“…….”

순간 마법사는 자리에 멈칫 멈춰 섰다.

기겁한 얼굴로 제게 주스 잔을 건네는 조각상을 응시한다.

마법사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서, 설마…… 조각상에 걸려 있던 방어마법 수식까지 변경하신 겁니까?”

“아, 시끄러.”

딱!

그러나 키리오스는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길 따름이었다.

“마탑주님, 당신 정말-!!”

마법사가 누군가가 밀쳐내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죽 밀려났다.

“언젠가는 진짜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어어억-!!!”

그 외침을 끝으로, 마법사는 복도로 완전히 밀려났고.

쾅!

호화로운 문이 부숴져라 닫혔다.

그와 함께 키리오스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마탑 구경 가자, 꼬마.”

“…….”

나는 흐린 눈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님, 제가 못난 아버지를 두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 * *

나와 키리오스는 본격적으로 마탑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흥미로우며 즐거운 관람이었다.

가끔씩 초췌한 몰골의 마법사들이 툭툭 튀어나와 항변하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니, 마탑의 구조가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겁니까?”

“뭘 어떻게 구조를 변경하셨기에, 식당과 온실이 연결될 수가 있는 거예요?”

물론 키리오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마법사들을 퇴치해 버렸다.

“아, 다들 며칠 굶은 돼지 새끼도 아니고. 왜 이렇게 꽥꽥거리지?”

야멸찬 핀잔은 덤이었다…….

‘그, 마족들을 처리할 때도 저것보다는 유하게 대할 것 같은데?’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별개로 마탑은 무척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담?’

나는 홀린 듯이 주변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온갖 식재료가 그득하게 차 있는 주방의 문을 열었더니, 느닷없이 약초를 키우는 온실로 연결되었다.

햇빛이 잘 드는 온실 안에서는 갖가지 약초들이 쌉싸름한 향기를 풍긴다.

물뿌리개가 허공을 날아다니며 약초들에게 물을 주었다.

그 물뿌리개를 따라 걷다 보면, 온실 구석에 뜬금없이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더니, 갑자기 탑 꼭대기에 다다르는 식이었다.

“세상에!”

탑 꼭대기에 다다른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분명 밖에서 봤을 때에는 야트막한 높이의 탑이었는데, 탑 꼭대기에 서자 주변 풍경이 까마득하게 멀어 보인다.

새파란 하늘 아래, 성냥갑만 하게 보이는 제도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와, 황궁이 보여요!”

나는 신이 나서 난간에 찰싹 달라붙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제도 중앙에 위치한 황궁이었다.

황궁 지붕이 햇빛을 담뿍 머금어 황금빛으로 빛난다.

‘라키어스의 머리카락 색깔이 꼭 저런데.’

금실처럼 반짝이는 예쁜 머리카락.

고양이의 털처럼 보드라운 그 감촉이 손안에 맴도는 것 같아서.

“라키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나는 무심결에 입을 열었다.

그러자 키리오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흘겨보았다.

‘응? 왜 저렇게 쳐다보지?’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키리오스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꼬마, 넌 마탑까지 와서도 라키어스 녀석 얘기나 하고 있어?”

키리오스가 뚱한 목소리로 내게 핀잔을 주었다.

‘아차.’

아무래도 화제를 잘못 정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럴 때에 키리오스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은!

나는 키리오스의 팔에 답삭 매달리며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었다.

“둘째 아빠.”

아빠, 라는 호칭에 키리오스의 입가가 조금 느슨해졌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덧붙였다.

“저, 둘째 아빠의 방도 보고 싶은데.”

“라키어스 녀석을 생각하느라, 내 방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건 아니고?”

“에이, 그럴 리가 있어요?”

나는 최대한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아빠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걸요!”

“흥.”

그제야 키리오스가 못 이기는 척 내 어깨를 감쌌다.

“꽉 잡아라, 꼬마.”

그리고.

“헉.”

나는 헛숨을 들이쉬었다.

오늘은 정말 자주 놀랄 일이 생기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에 주변 풍경이 바뀐 것이다!

“바, 방금 우리…… 공간이동을 한 거예요?”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키리오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키리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별것도 아니야. 공간이동은 마탑 내부에서만 가능하거든.”

“그래도 정말 대단해요!”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번만큼은 입 발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여태껏 가장 위대한 마법사들도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간과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공간을 다루는 마법사가 탄생했으니.

그 사람이 바로 키리오스였다.

나는 제국의 유명한 위인들을 설명해 주던 가정교사의 얼굴을 문득 떠올렸다.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선생님께서는, 내 병아리 지갑을 바라보며 거의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 되었었다.

‘이 지갑 자체가 최고위 마법의 정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공간 확장 마법, 무게 감소 마법, 그리고 물건 분류 마법까지.

세 종류의 마법을 중첩하여 영구적으로 사물에 고정시키는 것만 해도 무척 어려운 일인데, 심지어는 공간 관련 마법까지 걸었다면서.

거의 10분이 넘도록, 내 병아리 지갑이 얼마나 혁명적인 물건인지를 설파했었는데.

‘내 병아리 지갑을 무슨 성물 대하듯 경건하게 대했었지.’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렇게나 지갑을 굴리던 내 평소 생활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하튼.

그런 키리오스도 공간이동 마법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생명에 직접적으로 마력을 개입시키는 건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굳이 따지자면 신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공간이동 마법을 성공시킨 거예요?”

“그야 마탑은 온전히 내게 속해 있는 공간이니까.”

그렇게 대답한 키리오스가, 문득 정색을 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공간이동 마법은 엄청 위험한 거야.”

“네?”

“우리 꼬마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야무진 건 알지만, 그래서 아주 혹여나 독학으로 마법을 배우게 되더라도.”

“……네에?”

“그래도 공간과 시간 관련 마법은 시전할 생각조차 하지 마. 알았어?”

“…….”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키리오스를 올려다보았다.

저기요,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빠들은 애초에 제게 마법의 ‘ㅁ’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셨잖아요?

그도 그럴 것이, 마족은 마력이 아니라 마기로 마법을 구현하니까.

나는 현재 마기 제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내가 함부로 마법을 배웠다가, 마기를 제어하는 데에 무리라도 가게 되면 큰일이었기에.

나는 아빠들의 전문 분야인 검술이며 마법이며 신성력 같은 건 근처에도 못 갔다.

그런 나더러, ‘공간과 시간 관련 마법은 시전할 생각조차 하지 말아라’라고 신신당부해 봤자…….

‘이건 뭐, 걸음마도 못 하는 아이더러 하늘을 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하는 꼴 아닌가?’

하지만 키리오스를 포함한 세 아빠들이, 평소 나를 얼마나 과보호하는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네에.”

나는 그냥 얌전히 대답했다.

“그래서 여기가 둘째 아빠의 방이에요?”

“뭐, 정확히는 연구실에 가깝지.”

키리오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흡사 거대한 서재와 침실과 연구실을 뒤섞어 놓은 듯한 방이었다.

햇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너른 창문, 내가 앉으면 몸이 푹 파묻힐 것 같은 팔걸이 의자.

커다란 호두나무 책상 위로는 온갖 서류들과 마법 서적들이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마법진을 아무렇게나 그리다 만 종이들은, 구깃구깃 구겨진 채 침대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었고.

잉크가 마른 펜 두어 자루가 책상 위를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키리오스는 뒤늦게 다소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 원래 이렇게 더럽지는 않아.”

키리오스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서류들이 차르륵 날아가더니 책상 구석에 차곡차곡 쌓였다.

책들도 책장에 착착 꽂히고, 펜들도 뚜껑이 닫히더니 필기구 정리함에 가지런히 꽂힌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정리정돈까지 마법으로 하다니.’

이건 너무 재능 낭비 아냐?

그러던 중.

‘어라, 저건?’

침대의 머리맡,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벽면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근데 액자 안의 그림이…… 어쩐지 조금 익숙한데?

나는 종종걸음으로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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