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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49)화 (50/163)

<49화>

“그, 붙였다 뗐다 하는 메모지 더 없습니까?!”

마법사의 눈동자에서 희미하게 광기가 일렁거렸다.

“점착 메모지라 했던가요? 이제 그 메모지 없이는 마법 수식 수정을 할 수가 없어요!”

“아니, 그건…….”

“제가 어떻게 지금까지 그 메모지 없이 살아왔던 걸까요? 아,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마법사들이 우르르 멜빈에게로 달려왔다.

“멜빈 님!”

“메모지 좀 주십시오!”

“메모지! 메모지!”

모두 입을 모아 메모지만을 외쳤다.

흡사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약물 중독자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멜빈은 수많은 마법사들에게 둥글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 알았으니 다들 진정 좀 하게! 지금은 물량이 없지만, 최대한 빨리 제작할 테니까……!”

“잠깐만요, 지금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물량이 없다고요?!”

마법사들의 얼굴 위로 절망이 번졌다.

“최대한 빠르다는 게 언제입니까?!”

“저는 지금 당장 필요하단 말입니다!!”

좀비처럼 밀려드는 마법사들의 기세에, 멜빈은 기겁하여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조, 조금만 더 기다리게! 알았나?”

쾅!

멜빈은 허둥지둥 다시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마를 감싸 쥐며 앓는 소리를 낸다.

“하, 이거 철야 각인데…….”

아무래도 멜빈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라도, 당장 메모지 생산에 돌입해야 할 것 같다.

* * *

약 한 달 후.

타운하우스에 갑자기 갖가지 선물들이 바리바리 실려 왔다.

“이, 이게 다 뭐예요?”

나는 얼이 빠져서 선물들을 바라보았다.

선물들은 그야말로 다종다양했다.

태엽을 감아서 걸어 다니는 곰 인형, 유리병에 들어 있는 온갖 사탕들, 꽃다발 등등.

선물과 함께 들이닥친 키리오스가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뭐긴 뭐야, 우리 꼬마한테 은혜를 입은 마법사 녀석들이 보낸 거지.”

응? 이건 무슨 소리람.

나는 어리둥절하여 키리오스를 올려다보았다.

“저한테…… 은혜를 입어요?”

“그 메모지 있잖아.”

키리오스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뗐다 붙였다 하는 메모지 말이야. 점착 메모지라 했던가? 그거 반응이 엄청 좋아.”

“반응이 좋다고요?”

“아, 내가 말 안 했나? 마탑 녀석들, 그 메모지에 완전히 눈이 돌아갔어.”

아니, 그건 거의 없던 일로 된 거 아니었어?

나는 경악했다.

내 기억으로는, 특허출원 업무를 보는 마법사가 굉장히 시큰둥해했었던 것 같은데?

한편 키리오스는 흐뭇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꼬마가 마탑에 다시 놀러 오면 엄청 놀랄걸? 책상이며 벽면이며 그 메모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거든.”

“네?”

“나도 아이디어 메모를 할 때 써 봤는데, 확실히 효율적이기는 해. 지우거나 할 필요 없이 바로 메모만 교체하면 되니까.”

“네?”

“진짜, 녀석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마 꼬마가 바닥을 기어 다니라고 하면 그대로 따를지도?”

“네?”

도저히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나는 ‘네?’만 연발했다.

하지만 키리오스의 폭탄 발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래서 그 메모지, 내가 꼬마 이름으로 특허를 냈거든.”

“트, 특허요? 그걸 진짜로 냈어요?”

“그래. 그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그냥 방치하는 건, 마법사로서도 아빠로서도 절대로 좌시할 수 없어.”

나는 솔직히 키리오스가 농담을 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키리오스가 저렇게 진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줄이야.

“특허 사용료는 꼬마의 계좌에 이체하도록 설정해 뒀으니, 나중에 확인해 봐.”

……저런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나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키리오스!!”

지금쯤 집무실에 갇혀 있어야 할 지크프리트가, 허겁지겁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타티아나의 계좌에 갑자기 거액이 들어왔는데, 이건 도대체 뭔가?”

지크프리트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키리오스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듣기로는 네가 타티아나의 대리인으로 특허출원을 냈다고 하던데, 그 특허 사용료인가?”

“맞아.”

키리오스는 산뜻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그렇군.”

키리오스의 대답 한 마디에 깔끔하게 납득해 버렸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니, 평소에는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로도 키리오스를 잡아먹으려고 들면서.

왜 이번 일에는 저렇게 시원시원한데?

한편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지크프리트가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뭐, 특허를 낼 때에는 키리오스 이상의 전문가도 없으니까.”

“그, 그런가요?”

“그래. 제국에서 가장 특허를 많이 낸 사람이 바로 키리오스일 거다.”

그러고는 키리오스를 휙 돌아보았다.

그, 있잖아.

어쩐지 지크프리트의 금빛 눈동자에 광기가 일렁거리는 것 같은데.

……이건 내 착각일까?

“그래서 그 메모지는 어디서 구매할 수 있지?”

“뭐?”

“내 휘하 사용인들이 당장 그 메모지를 구매해 달라고 아우성이야.”

지크프리트가 질색하며 말을 이었다.

“그 메모만 있으면 서류 작업에 엄청나게 효율이 날 거라면서, 어찌나 나를 들들 볶아 대는지…….”

“그럼 일단 발주부터 넣어 보는 게 어때? 메모지 제작은 마탑에서 맡고 있거든.”

키리오스가 악동처럼 짓궂게 눈매를 휘어 보였다.

“그래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테지만.”

“뭐? 어째서?”

“네가 한발 늦었거든. 세자르 녀석이 먼저 발주를 넣었어.”

“아니, 대신전에서 메모지를 사용해 봤자 얼마나 사용한다고?”

지크프리트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때.

“지크프리트, 그 말은 대신전의 수장으로서 묵과할 수가 없군요.”

경쾌한 목소리가 울렸다.

세자르였다.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온 세자르가, 냅다 지크프리트에게 핀잔을 주었다.

“대신전에서 얼마나 서류 업무를 많이 하는지 아십니까? 뭐든지 예산안을 짜는 게 기본이라고요.”

“셋째 아빠!”

나는 폴짝폴짝 세자르에게 달려갔다.

“티티 양!”

세자르가 냉큼 나를 품 안에 안아 들었다.

지크프리트를 대할 때와는 달리, 그야말로 봄볕처럼 따사로운 태도였다.

“이번에 메모지 관련 특허를 냈다면서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 둘째 아빠가 맡아서 해 주신 거예요.”

“그래도 기본 구상은 티티 양이 해낸 것 아닙니까.”

세자르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답했다.

“키리오스는 그냥 잡일만 한 거지요. 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은 티티 양입니다.”

아니, 키리오스에게 이렇게까지 신랄하게 말해도 돼?

괜히 찔끔한 내가 키리오스를 곁눈질했다.

하지만.

“맞아, 맞아. 이건 다 꼬마가 잘한 거라고.”

오히려 키리오스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황궁에서도 발주가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니까? 우리 꼬마는 사업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아!”

키리오스가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저, 황궁에 제가 메모지를 영업해서 발주를 따 온 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런 항변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니, 정말 놀랐습니다.”

“내 딸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타티아나는 천재가 아닐까 싶군.”

어느새 세자르와 지크프리트 또한 나란히 입을 모으고 있었다…….

솔직히 난 민망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정말로 키리오스가 떠먹여 준 걸 그대로 받아먹기만 했을 뿐인데.

그런데 갑자기 불똥이 내게 튀었다.

“우리 꼬마, 그러고 보니 돈을 한번 벌어 보고 싶다고 했지?”

“네? 그, 그렇기는 하지만.”

키리오스의 질문에, 나는 데록데록 눈동자만 굴렸다.

내 원래 계획은 투자 자금을 마련한 후, 그를 발판으로 독립 자금을 마련하려 한 거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독립 자금은 다 벌고도 남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얌전히 특허 관련 수익만 정산받으면서, 팽팽 놀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뭔가 따로 하고 싶은 일은 없어?”

응?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도대체 뭘까?

어째 나보다도 키리오스가 더 의욕적인 것 같은 이 느낌은…….

“돈을 버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며.”

“아뇨, 그건…….”

세상에, 노라에게 아무렇게나 했던 변명이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나는 속으로 질겁했다.

“앞으로도 특허 사용료가 꾸준히 들어올 테니, 투자 자금으로는 충분할 거야.”

“그, 그래도요. 돈이 모자랄 수도 있고…….”

“뭘 그런 걸 다 걱정하고 그래? 모자라면 우리가 지원해 주면 되지. 안 그래?”

키리오스가 힐끔 지크프리트와 세자르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두 사람은 아주 당연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오스가 재차 말을 이었다.

“실패해도 전혀 상관없어. 다만 난 꼬마가 다양한 경험을 해 봤으면 해서 그래.”

“저도 동감입니다.”

“혹여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순간 나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내가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구김살 없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눈빛.

그래서일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내 입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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