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그렇다면…… 조금만 더 고민해 봐도 될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뭐든 꼬마 마음대로 해!”
“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는 말아라. 알았지?”
세 아빠들은 나란히 나를 향해 웃어 주었다.
내게 향하는 그 미소들이 너무나도 따스해서, 나는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떡해,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표정을 감출 겸, 괜히 세자르의 품에 고개를 폭 파묻었다.
내 등을 쓸어내리는 세자르의 손길은 무척 부드러웠다.
* * *
사람이 부를 쌓게 되면, 명예도 얻고 싶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최근 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골몰하고 있었다.
‘뭐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게다가 점착 메모지 관련 금액은 너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키리오스가 메모지 제작과 유통을 맡아 해 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 말은 즉.
내 아빠들이 메모지 관련 수익이 얼마나 나는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독립을 위해 나만의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내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자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내가 아빠들에게 칭찬과 응원을 받아서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니라고.
지, 진짜로 아니라니까?
‘다만…… 아무런 생각도 안 나는 게 문제지.’
에효.
나는 소파 위에 축 늘어진 채, 몇 번째일지도 모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실 점착 메모지야 뭐…… 거의 얻어걸린 것에 가까운걸.’
전생에서도 이미 대히트한 상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건, 이번에도 그렇게 얻어걸리는 것이다.
전생 기억을 통해 어떻게든 꿀을 빨 수는 없을까? 제발!
내가 속으로 양심에 털 난 기도를 하고 있던 그때.
“오늘도 고민이 많아 보이네, 티티.”
다정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붙였다.
소파에서 부스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라키어스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아직 검술 수업을 하고 있을 시간 아니야?”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어. 지크프리트 스승님께서 도무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시더라고.”
“왜?”
“네 자랑 하느라.”
“……아하.”
라키어스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랬다.
요즘 세 아빠들의 취미는, 내 점착 메모지 사업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주변에 자랑하는 거였다…….
“하, 대충 흘려들어 줘…….”
나는 얼굴을 감싸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라키어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 나도 네가 무척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착 메모지 사업 말이야, 내가 진행했다기보다는 거의 둘째 아빠가 맡아서 한 거야.”
“아니지, 키리오스 스승님께서는 제작과 유통을 맡으신 것뿐이잖아.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네 것이었다고 들었는데?”
라키어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불퉁한 어조로 말을 덧붙인다.
“물론 스승님께서도…… 그런 아이디어를 단박에 실용화하신다는 점에서는 대단하시긴 해.”
“그, 라키?”
“그래도 네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점착 메모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라키어스가 딱 잘라 말을 맺었다.
그러고는 내가 엎드린 소파에 몸을 기대며 비스듬히 나를 내려다본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거야?”
“……으음.”
솔직히 라키어스에게 묻는다 한들,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들 하니까.
나는 별 기대 없이 라키어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라키. 라키가 생각하기에는, 물건을 많이많이 판매하려면 어떤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뭐야, 벌써부터 매출 증대를 고민하고 있는 거야?”
라키어스가 피식 미소 지었다.
어쩐지 조금 씁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너는 정말 대단해. 그래서, 가끔은 네가…….”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고 가냘파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라키어스에게 되물었다.
“응? 뭐라고 했어, 라키?”
라키어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로?”
“그럼.”
나는 라키어스의 낯빛을 유심히 관찰했다.
라키어스는 상냥한 표정으로 내 의심의 눈초리를 맞받았다.
그 표정은 언제나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어쩐지 쓸쓸해 보였던 것 같은데…….
나는 미간을 좁혔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티티 네가 한 질문에 대답하자면.”
라키어스는 잠시 말끝을 흐리며 고민했다.
그 후.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잇는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이지만, 수집욕을 자극하는 편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수집욕?”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라키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만 해도 그렇잖아. 희귀한 우표를 얻으려고 경매장까지 돌아다닌다던데?”
순간 번개처럼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점착 메모지의 기술과 접목할 수도 있고, 수집욕도 자극할 수 있는……!
“세상에, 라키! 정말 고마워!”
오랫동안 체해 있던 게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라키어스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라키어스가 당황했는지 빳빳하게 굳어졌다.
“티, 티티?”
라키어스의 얼굴이 훅 붉어졌다.
으이구, 부끄러워하기는.
친구끼리 너무 낯을 가리는 거 아냐?
나는 라키어스의 등을 팡팡 두들기며 재차 외쳤다.
“라키, 너는 천재야!”
* * *
막혔던 부분이 한 번 뚫리자, 구상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내가 떠올린 건 바로 스티커 시리즈였다.
왜, 포x몬스터나 카x오프렌즈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 시리즈 있잖아.
나 때는 말이야, 저런 스티커들을 어마어마하게 모아 댔다니까?
저 스티커 시리즈가 너무나도 인기가 높았던 바람에, 어린아이들이 빵은 사서 버리고 스티커만 모으는 게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지.
이왕 점착 메모지의 뗐다 붙였다 하는 접착제를 개발해 뒀으니까, 이 접착제로 스티커 시리즈를 만들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다만 문제는, 저런 스티커가 인기를 끌려면 꼭 필요한 게 하나 있다는 거다.
그건 바로 스티커의 기반이 되는 캐릭터들.
포켓x스터나 카카x프렌즈 스티커들이 대히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캐릭터들이 기존에 이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일단 인기가 있는 캐릭터들부터 제작한 후, 스티커 제작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건데…….
“후후.”
나는 악동처럼 웃었다.
걱정 마시라, 그 문제는 이미 해결책이 마련되어 있으니까!
나는 침대 맡에 놓아둔 오르골을 집어 들었다.
오르골 뚜껑을 열자, 달콤한 자장가가 울려 퍼졌다.
오르골 가운데에서 지크프리트와 세자르, 키리오스를 형상화한 조각들이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봐, 여기 있잖아.’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조각들을 응시했다.
‘제국, 아니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들 말이야!’
마족들의 마수에서 인류를 구한 세 용사들.
세 용사들이 누리는 인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황제가 왜 저렇게 용사들을 견제하는지, 어찌 보면 이해가 될 정도라니까?
참고로 이미 아빠들에게 허락도 다 구해 놨다.
‘글쎄요, 티티 양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지만…….’
‘솔직히 우리가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인물들을 골라 보는 게 낫지 않겠나?’
세상 물정 모르는 아빠들은 다소 떨떠름한 반응이었지만, 모르는 말씀.
자신할 수 있다.
점착 메모지보다도 스티커 시리즈가 훨씬 더 히트할걸?
하지만 아빠 3인방만으로는 아무래도 수집할 수 있는 스티커의 숫자가 부족하니까…….
‘더 많은 캐릭터들을 확보할 겸, 제국에서 유명한 위인들에 대해 만화를 그려 보는 거야.’
나는 의욕적으로 두 눈을 빛냈다.
이 세계에는 아직 만화라는 개념이 없다.
또한 실질적으로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이지.
그러니 이 스티커 시리즈 사업이 성공하려면, 어른들에게도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일종의 위인전 같은 거지.
“음, 음.”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셀링 포인트도 대충 잡아 뒀다.
‘위인의 삶을 공부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는다.’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만화책을 내면서 디자인된 위인들의 캐릭터는, 고스란히 스티커로 만드는 거다.
책을 한 권 구매할 때마다 스티커를 무작위로 한 종씩 증정하는 거지.
그럼 아이들은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책들을 계속해서 구매하게 될 거고.
어른들도 일반적인 장난감보다는, 위인들의 삶을 공부할 수 있는 위인전에 혹하겠지?
‘처음에는 세 용사의 위인전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 후 계속해서 새로운 위인들을 추가하여 후속작을 낸다면……!
“후, 후후후, 후하하하하하…….”
나는 사악한 소악마처럼 나지막이 킬킬거렸다.
들린다, 돈 쌓이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