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52)화 (53/163)

<52화>

니콜라스 무어.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었던 유명한 종군 기록화가다.

참고로 니콜라스 무어는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필명으로, 본명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원작에 묘사된 니콜라스의 인생은 대충 이러하다.

니콜라스는 고아로, 여동생과 함께 단둘이서 힘겹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 당시 니콜라스의 그림은 그리 인기가 없어서, 입에 풀칠이나 간신히 하는 수준이었다고.

두 남매는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마침내 어른이 된다.

그리하여 여동생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찰나.

마족들이 다시 한번 인간계를 침공한다.

여동생과 여동생의 남편은 마족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 당한다.

분노에 찬 니콜라스는 라키어스의 마왕 토벌군에 입대한다.

그 후,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그려 내서 엄청나게 이름을 떨쳤다고.

특히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한 화풍과, 마음을 파고드는 연출력이 유명했다고 하던데.

“…….”

나는 미간을 구겼다.

새삼 인간들이 어째서 마족을 혐오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굳이 이번에도 니콜라스가 그렇게 살도록 둘 필요는 없잖아?’

솔직히 이 니콜라스 무어가, 정말로 원작에 서술된 종군 기록 화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냥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출판사가 이 사람에게 어떤 계약조건을 내밀며 계약을 진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그것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차곡차곡 쌓아 놔야만…….

‘혹시나 내가 마왕이라는 게 들통난다고 해도, 내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아냐?’

게다가.

나는 새침하게 두 눈을 내리깔았다.

‘……내 아빠들도, 정체조차 모르는 반인반마인 나를 딸로 받아들여 줬는걸.’

뭐, 애들은 어른을 보며 배운다고들 하니까.

가끔은 아빠들이 내게 가르쳐 준 대로 행동하는 것도 좋겠지.

탁.

나는 책장을 덮었다.

니콜라스 무어를 찾아볼 시간이었다.

* * *

나는 노라에게 삽화가에게 연락을 취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삽화가와 연락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뭐? 삽화가의 이름이 가명이었다고?”

나는 입을 딱 벌렸다.

가명과 필명은 엄연히 다르다.

필명은 작품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만든 이름으로, 모든 법적인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가명은 아예 신분을 감추기 위해 만든 가짜 이름.

그 말은 즉.

가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예술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노라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직접 연락을 하지는 못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혹시 출판사에는 연락을 해 봤어?”

“그게, 삽화가의 본명은 알려 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거참 이상하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물론 출판사 입장에서는 싫을 수도 있다.

자신들이 먼저 발굴한 삽화가였으니, 뒤늦게 내가 접촉하는 게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

그래서 나는 출판사에게도, 삽화가와 내가 계약할 시에 상당량의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을 해 두었다.

솔직히 삽화가와 출판사의 외주는 단발성일 테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괜히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내가 찾아낸 이 사람이, 원작의 니콜라스 무어가 정말로 맞는 거라면…….

‘그 사람과 계약을 하는 데에 있어, 최대한 문제는 만들고 싶지 않아.’

원작에서는 ‘그림이 그리 인기가 없어서 입에 간신히 풀칠만 하고 살았다’ 정도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겠지.

나와 라키어스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일까, 나는 어떻게든 니콜라스가 무리하는 상황은 피하려고 했다.

“저 삽화가를 우리가 고용하게 된다면, 그에 대해 출판사에게 보상도 해 주겠다고 했었잖아. 그 부분은 확실하게 전한 거야?”

“그럼요. 하지만 출판사 사장이 무척 완강하게 거절하더라고요.”

“으음…….”

이쯤 되니까 뭔가 수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오를레앙 공작가의 이름으로 직접 넣은 요청이었다.

솔직히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민망하기는 한데.

‘보통은 공작가에서 직접 무언가를 질문한다면, 대부분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나?’

게다가 나는 출판사에 피해가 없도록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제안까지 함께 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삽화가가 누구인지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내가 출판사 사장이었다면 곧장 삽화가를 연결해 줄 텐데 말이야.’

오를레앙 공작가에게 빚을 지워 둘 수 있는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는다.

게다가 현시점에서 니콜라스 무어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삽화가.

출판사 입장에서는 별달리 가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공녀와 연결해 주고, 대신 오를레앙에게서 이득을 취한다.

이만큼 남는 장사도 없을 텐데…….

“혹시 이 출판사에 내가 직접 가 볼 수 있을까?”

내 질문에 노라가 생긋 웃었다.

“우리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가능하죠.”

“…….”

우리 아가씨.

애정을 담뿍 담은 그 호칭에, 나는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젠가는 노라와도, 나를 아껴 주는 사용인들과도 헤어지게 되겠지.

나는 마왕이고 이들은 인간이니까…….

“아가씨?”

노라가 걱정스럽게 나를 불렀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차.

파드득 정신을 차린 내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언제쯤 출판사에 가 볼 수 있을까?”

“음, 잠시만요.”

동화책에 적힌 출판사 주소를 확인한 노라가, 내게 방긋 웃어 보였다.

“별로 먼 곳은 아니네요. 당장이라도 가실 수 있어요.”

“그래?”

나는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그럼 지금 출발해도 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마음먹은 김에 후딱 해치워버리는 게 낫지!

“네, 모시겠습니다.”

노라가 선뜻 대답했다.

그러고는 흘끗 나를 내려다본다.

“아가씨.”

“응?”

잠시 머뭇거리던 노라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정말로 괜찮으신 거…… 맞죠?”

“…….”

나는 멈칫했다.

저 다정한 눈빛, 나를 염려하는 목소리.

알고 있었다.

노라는, 내 아빠들은,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정말로 나를 걱정하며 위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리고 난 저들을 기만하고 있어.’

아무리 내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저들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기에.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럼, 당연히 괜찮지!”

난 황급히 표정을 정돈하며 노라의 손을 맞잡았다.

내 밝은 얼굴을 확인한 후에야, 노라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것 같았다.

그런 노라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얼른 가자, 응?”

나는 신이 난 척 맞잡은 손을 흔들어 대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 * *

그날 오후.

나와 노라는 출판사로 향했다.

‘오, 꽤 규모가 큰데?’

막상 도착한 출판사는 생각 이상으로 말끔했다.

제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자금 사정도 꽤 좋은가 보다.

“저, 누구신지요?”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노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를레앙 공작가에서 왔습니다.”

“오, 오를레앙이요?!”

경비 아저씨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우리가 타고 온 마차에 걸린 가문의 문장을 확인하더니, 재차 소스라쳐서 외친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후다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출판사 사장이 허겁지겁 우리를 맞이했다.

몸집이 두툼하고 얼굴에는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흐르는 것이, 딱 보기에도 무척 부유해 보이는 외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를레앙 공녀님.”

사장은 일단 정중하게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다만 정중한 건 인사뿐이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저희 출판사에 방문하시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지 않으신 것 같은데…….”

사장의 좁쌀처럼 조그만 눈이, 나를 탐색하듯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찾아오셔서, 공녀님을 모시는 데에 모자람이 있을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은근슬쩍 내게 눈치를 준다.

아무래도 내 방문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데.

‘아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물론 나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약속을 잡는 게 예의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출판사의 행동이 수상해서 찾아온 마당에, 미리 약속을 잡을 리가 없잖아?

내 방문 소식을 미리 들으면 어떻게 행동할 줄 알고?

게다가.

‘내가 아니라 지크프리트가 방문했어도 이렇게 반응했을까?’

제멋대로 삐죽삐죽 튀어나오려는 심술을 애써 억누르면서.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꾸며내어 대꾸했다.

“죄송해요, 사실 제가 삽화가님의 팬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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