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55)화 (56/163)

<55화>

나는 니콜라스 무어를 찾아내려고 한 것뿐인데, 어째 일이 점점 커지는 기분이지만…….

하지만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크프리트 아빠가 직접 처리한 건이니까.

‘알아서 잘했겠지?’

나는 그쯤에서 치안대원들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내 앞에 굳건히 서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정말 궁금했었다.

왜 출판사 안에 그렇게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이유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아니, 치안대원들은 왜…….”

출판사 건물을 삼엄하게 둘러싼 치안대원들을 마주하며, 경비 아저씨는 무척 곤혹스러운 낯이었다.

“오, 오를레앙 공녀님?”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경비가, 우리를 알아보고는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니, 이게 무슨 소동이랍니까?”

“비키시오. 치안국에서 나왔소.”

치안대를 통솔하는 치안대장이 엄격하게 경비를 만류했다.

그런데 그때.

“타티아나.”

응?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빠들?”

지크프리트와 키리오스, 그리고 세자르였다.

나는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오늘 아침만 해도 분명 봤단 말이야.

집사 아저씨가 지크프리트에게 매달려, ‘오늘은 꼭 서류를 마감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애원하는 모습 말이지.

키리오스와 세자르도 별반 다른 처지는 아닐 텐데?

그래서 당연히 오늘은 아빠들이 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물론 치안대원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

짧게 헛기침을 한 지크프리트가 말을 이었다.

“네가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너를 노라와 단둘이 보낼 수 있겠나?”

“지크프리트 이 자식이 얼마나 안절부절못하던지, 보다 못해 내가 따라와 준 거 아니겠냐.”

키리오스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가 정색을 했다.

“마치 넌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무슨 소리지? 난 아주 태연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꼬마 노래를 부르면서 내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게 누구지?”

“야, 웃기지 마. 내가 언제 그랬는데?”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는, 용사로서의 체면조차 모조리 내려놓고 아웅다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심함이 가득 담긴 혼잣말이 들려왔다.

“정말, 저 머저리 같은…….”

세자르였다.

쯧쯧 혀를 찬 그가 냉큼 나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벌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티티 양, 무섭지는 않았어요?”

“네, 호위 기사들도 있고 노라도 있는걸요!”

“씩씩하네요.”

세자르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키리오스와 지크프리트는 어느새 나란히 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세자르는 승리자의 미소로 그 살벌한 시선을 묵살해 버렸지만 말이다.

그러고는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본다.

“지금 출판사 안은…… 티티 양이 보기에는 다소 험한 모습일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나는 세자르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아빠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렇게 말해 주다니 기쁘군요.”

세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등을 가볍게 도닥이며, 세자르가 눈짓으로 출판사 건물을 가리킨다.

“이제 우리도 슬슬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 * *

우리가 들어갔을 즈음에는, 이미 치안대원들이 웬만큼 내부를 정리해 둔 상태였다.

“아, 이것 놔!!”

사무실 안은 온통 엉망이었다.

치안대원들이 서랍이며 뭐며 샅샅이 뒤져서 자류들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현장의 자료들은 모조리 추가 증거물로 채택될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챙기도록!”

치안대장은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지휘했다.

출판사 사장은 치안대원들에게 강제로 끌려 나오고 있었고.

반면 직원들은 잔뜩 얼어붙은 채 눈치만 살피는 중이었다.

마치 찔리는 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처럼 선량하고 적법하게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이던 사장이, 문득 나를 발견했다.

사장의 불그죽죽한 얼굴 위로 분노가 서렸다.

“오를레앙 공녀?!”

사장이 좁쌀만 한 두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설마 저 쪼끄만 계집애가?!”

솔직히 저런 저열한 모욕에는 반응하는 것 자체가 귀찮았는데.

오히려 세자르가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오를레앙의 단 하나뿐인 공녀더러 쪼끄만 계집애, 라는 모욕이라니.”

사르르 눈매를 접어 내리며 대꾸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쪽은 참 독특한 목표를 가지고 있군요.”

“뭐? 목표?!”

“그럼요. 감방에 처박혀 있는 시간을 두 배 이상 늘리고 싶지 않고서야…….”

세자르는 산뜻하게 말을 이었다.

“티티 양의 보호자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막말을 지껄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아니, 지금 무슨 헛소리를……!”

“귀족 모욕죄, 협박죄.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더 불러 드릴까요?”

두 눈을 껌뻑이던 사장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다, 당신 누구야?”

세자르는 보란 듯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방금 말했잖습니까. 티티 양의 보호자라고요.”

“보, 보호자라고?”

사장은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한 얼굴을 했다.

세자르는 거기에 못을 박았다.

“세자르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그리 반갑지는 않네요.”

“헉!”

사장이 헛숨을 들이쉬었다.

세자르.

전 인류가 추앙해 마지않는 영웅.

대신전의 수장이자 대사제이며, 제국 사제들의 구심점인 남자.

다섯 마왕을 토벌하고 인류를 구원한 세 용사들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지크프리트, 반성 좀 하십시오.”

한편 세자르는 샐쭉한 시선으로 지크프리트를 흘겨보았다.

“저따위 버러지가 우리 티티 양에게 계집애네 뭐네 지껄이지 않습니까. 제국 유일 공작가의 체면이 이게 뭡니까?”

“오, 오를레앙 공작이라고요?!”

사장은 다시 한번 대경실색하여 지크프리트를 바라보았다.

제국 유일의 공작가인 오를레앙 공작가의 수장.

기사들의 정점에 선 그는, 검기를 자유자재로 발현하는 소드마스터의 경지로도 그 이름이 높다.

또한.

‘나를 공식적으로 입양한 법적 아버지이기도 하지.’

난 흥미진진하게 사장의 창백한 얼굴을 구경했다.

“네 녀석이 그렇게 핀잔을 주지 않아도, 이미 가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지크프리트가 뚱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고는 흘끗 사장을 돌아본다.

“감히 오를레앙의 단 하나뿐인 공녀이자, 내 딸더러 그따위 모욕적인 말을 지껄이다니.”

금빛 눈동자가 악귀처럼 흉흉하게 빛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 버리고 싶지만…….”

지크프리트가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사나운 미소였다.

“제 기분에 따라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건, 저 끔찍한 마족들이나 할 법한 짓이니.”

순간 난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마족.

그 단어에 어려 있는 혐오에, 나는 반사적으로 세자르를 끌어안은 양팔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내 아빠들은 마족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지…….’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냉정하게 말을 맺었다.

“나는 상식이 있는 인간답게, 형량을 늘리는 것으로 보답해야겠지?”

“고, 공작님! 저는……!”

사장이 허겁지겁 지크프리트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사장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붉은 머리를 길게 묶어 내린 미청년이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의 등 뒤로는 비쩍 마른 소년 한 명이, 공중에서 목덜미를 붙들린 채로 함께 따라 나오고 있었다.

라키어스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순한 인상의 소년이었다.

“저쪽 창고에서 발견했어.”

키리오스가 턱짓으로 소년을 가리켰다.

소년은 공포에 질려서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사, 살려 주세요! 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알아. 네가 한 게 아니라 저 사장 녀석이 했겠지.”

시큰둥하게 대꾸한 키리오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소년이 바닥에 풀썩 내려섰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소년이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

‘음, 그나마 바닥에 냅다 떨어뜨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지?’

나는 흐린 눈을 했다.

“이 녀석 말이야, 창고에 갇혀 있더라고.”

키리오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애는 3일에 한 끼도 못 먹은 것처럼 깡말랐지, 옷 꼴은 도대체 저게 뭐야? 게다가 창고에 사람을 가둬 두는 게 말이나 돼?”

“오, 오해입니다!”

순간 사장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저는 저 녀석을 도와주려고 한 것뿐입니다!”

“뭐? 도와줘?”

키리오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사장을 돌아보았다.

“그, 그렇습니다!”

사장이 목이 떨어져라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제가 아니면 누가 저 더럽고 미천한 평민 새끼를 거둬 먹이겠습니까?”

허.

세 아빠는 물론이고, 노라와 치안대원들까지 모조리 기가 찬 얼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