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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57)화 (58/163)

<57화>

“맞나 보네요.”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세자르가 달래듯 말을 이었다.

“니콜라스 군의 처지를 보고 있자니, 저도 마왕성이 생각나더군요. 그러니 티티 양은 더하겠죠.”

“……셋째 아빠.”

“자연스럽게 그런 걱정을 하게 된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세자르가 차분하게 내게 되물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티티 양도 마왕을 토벌한 우리를 아빠로 받아들여 주었잖아요?”

“네? 그건…….”

“마족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미울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세자르가 반달 모양으로 눈매를 휘어 보였다.

“그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순간 나는 가슴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내 아빠들이, 마족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 거라면.

그렇다면, 내 아빠들은…….

‘마왕인 나도 받아들여 줄까?’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아요.”

“세자르의 말이 옳아. 너를 미워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널 거두지도 않았을 거다.”

지크프리트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러고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나를 채근한다.

“코코아가 다 식겠다, 얼른 마셔라.”

“아, 네.”

나는 얼결에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따끈한 코코아가 목 뒤로 흘러들어가자, 잔뜩 긴장했던 몸이 저절로 노곤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꼬마, 입에 코코아 묻었어. 칠칠맞기는.”

키리오스가 손수건을 꺼내 들어 내 입가를 닦아 주었다.

툴툴거리는 목소리와는 달리, 너무나도 다정한 손길이어서.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욕심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라면, 마왕인 나도 가족으로 받아들여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

* * *

며칠 후.

나는 직접 니콜라스를 대면했다.

“오를레앙 공녀님을 뵙습니다.”

니콜라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처음에 출판사에서 만났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니콜라스는 꽤나 진정된 모습이었다.

“여동생도 함께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녜요, 제가 원해서 한 걸요.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나는 자리를 권했다.

니콜라스가 긴장된 얼굴로 내 맞은편에 앉았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 말씀 놓으십시오.”

으음,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오빠더러 말을 놓기는 좀 그렇기는 한데…….

“그럼 그럴게.”

뭐,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냉큼 고개를 끄덕인 내가 질문을 던졌다.

“있지, 왜 동화책 삽화를 그린 사람이 니콜라스라는 걸 숨겨 달라고 했어?”

순간 니콜라스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만.”

순간 나는 조금 숙연해졌다.

오, 그렇구나.

저 악덕 사장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고아 청소년이라고 엄청 등쳐 먹었구나…….

“그렇다면 이제, 니콜라스 무어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해 보고 싶지는 않아?”

순간 니콜라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 그대로야. 난 니콜라스의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거든.”

“제 그림이…… 마음에 드신다고요?”

내 대답을 들은 니콜라스는 무척 놀란 눈치였다.

아니,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응. 그래서 니콜라스를 고용하고 싶어.”

“……진심이세요?”

“당연하지. 뭐하러 그런 시간낭비를 하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러자 니콜라스의 표정이 천천히 무너지는가 싶더니, 푹 고개를 수그린다.

‘응? 왜 저러지?’

나는 당황하여 니콜라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숙인 고개 아래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게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뭐어?”

“그래서 그림을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나도 모르게 정색을 했다.

니콜라스가 그림에 재능이 없다면, 세상 그 누가 재능이 있을 수 있겠어?

넌 말이지, 원작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유명한 종군 화가였거든?

물론 지금은 내가 원작 못지않게 유명한 만화가로 만들어 줄 예정이지만 말이야!

“사장님께서 그러셨거든요. 사장님이 아니면 누가 제 그림을 사 주겠느냐고요.”

오,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네.

나는 혀를 차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여태까지는 여동생을 건사해야 해서 그림을 그려 오기는 했지만, 수입도 너무 적고…….”

나는 가타부타 말을 얹는 대신, 조용히 니콜라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니콜라스는 양어깨를 움츠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했더니…… 잔뜩 화를 내시는 바람에.”

“……그랬구나.”

가끔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러니까, 니콜라스도.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면 좋을 텐데.’

어찌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앞의 소년은 벌써부터 고단한 표정이었다.

제게 딸린 가족을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만 하는 가장의 얼굴.

……아직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원작에서도 그랬다.

종군 화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니콜라스 무어는 딱히 예술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저런 사정이 있어서였어.’

출판사 사장에게 저렇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살았으면, 정말로 자기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처음에는 마왕 토벌군으로 입대했던 니콜라스가, 어떻게 종군 화가로 활약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저런 거라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니콜라스에게는 재능이 있어.”

나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니콜라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얼굴에 서려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채 버리지 못한 희망이었다.

……내가 아빠들에게 품고 있는 희망과도 같은.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니콜라스의 재능을 알아본 나를 믿도록 해.”

“…….”

니콜라스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거, 한 번 확인해 볼래?”

“이, 이건?”

“계약서야. 변호사 아저씨가 그러는데, 독소 조항이 없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다고 했어.”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잘 살펴봐. 필요하다면 변호사의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

니콜라스는 묵묵히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계약서의 맨 윗면에는 나와 니콜라스,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니콜라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는…… 니콜라스 무어라는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아요.”

“왜?”

“사장님께서 지어 주신 필명이거든요.”

니콜라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나마도 저는 필명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필명으로 등록조차 해 주지 않으셨다고 했으니…….”

계약서를 붙든 니콜라스의 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실체가 없는 가짜 이름일 뿐이죠.”

니콜라스 무어.

여태껏 눈앞의 이 소년을 착취해 왔던 이름.

그 이름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나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이 소년에게 약속할 수 있는 건…….

“그럼 니콜라스의 진짜 이름은 뭐야?”

“제 이름은…….”

잠시 머뭇거리던 니콜라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안토니오 크리스탄센입니다.”

“좋아.”

나는 씩 웃었다.

“장담할게. 네 이름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가 될 거야.”

뭐, 비록 종군 기록 화가는 아니겠지만.

여동생을 잃고 마왕 토벌군에 투신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위인전 만화작가로 명성을 떨치는 게 낫지 않을까?

겸사겸사 가장 유명한 캐릭터들의 아버지도 되고 말이야.

* * *

몇 달 후.

이제 완연한 초여름 날씨였다.

활짝 열어 둔 창문 너머로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밀려들었다.

나는 라키어스와 함께 소파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인류를 구한 세 영웅, 소드마스터 지크프리트>

라키어스가 붙들고 있는 책은 지크프리트의 인생을 만화로 표현한 위인전이었다.

‘재밌나?’

나는 힐끔 라키어스를 곁눈질로 관찰했다.

‘꽤 열심히 읽는 것 같기는 한데…….’

붉은 눈동자는 시종일관 책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후.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히 읽은 라키어스가, 탁 소리 나게 책을 덮었다.

“이거 진짜 재밌는데?”

라키어스가 감탄했다.

“솔직히 나, 우리 스승님들에 관한 위인전은 어렸을 적부터 읽어 봤거든.”

“그래?”

“뭐, 아무래도 스승님들만큼 대단한 분들도 없잖아? 위인전 나오기에 딱이지.”

라키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읽어 본 위인전 중에서도 이게 제일 재밌네.”

하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만화 위인전은 정말 잘 뽑히기는 했다.

당사자인 세 용사들마저 수치심에 어깨를 떨면서도, 책이 재미있다고는 인정해 줄 정도랄까?

고증 문제도 완벽했다.

당연하다.

내가 자문을 구한 사람들은 바로 내 세 아빠들이었으니까.

참고로 나는 이 고증을 셀링 포인트로 삼아서, 위인전들을 홍보하는 데에 알차게 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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