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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58)화 (59/163)

<58화>

“연속된 그림으로 책을 구성하다니, 상상조차 못 했어.”

라키어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정말 대단해, 티티.”

“아하하…….”

차마 전생 버프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냥 어색한 웃음만을 흘렸다.

라키어스가 책 표지를 톡톡 두드리며 내게 질문했다.

“이 위인전을 소책자로 만들어서 서점에 배부했다고 했었지? 스티커도 그렇고.”

“응,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국에서는 만화와 스티커의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서점들에 의뢰하여 조그맣게 부스를 만들어 놓았다.

부스에 비치해 둔 물건은 바로, 스티커와 소책자.

위인전의 초반부를 소책자로 만들고, 스티커 샘플 일부도 함께 놓아두었다.

아이들이 직접 무료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후, 소책자 내용은 일부러 제일 재밌는 부분에서 끊어 두었는데…….

‘뭐, 둘 다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았었지.’

다만 그 반응이 매출과 직결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솔직히 조금 초조하기는 하다.

“근데 괜찮아? 소책자도 그렇고, 스티커 샘플도 무료로 제작하여 뿌린 거잖아.”

라키어스가 걱정스럽게 내게 물었다.

“금액이 꽤 들었을 것 같은데.”

“뭐, 그 정도는 투자로 생각해야지.”

아직 제국에는 만화도, 스티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대중들에게 저 물건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만화와 스티커 개념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순간, 내 사업은 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잘한 금액을 아끼다가 큰 손해를 보느니, 초반에 확실히 투자하는 편이 나아.”

또한 새로운 물건을 최대한 빨리 이해시키려면, 직접 사용해 보는 게 제일이고 말이다.

점착 메모지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마탑에서도 그리 내켜 하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사용해 보고 나서는 완전히 반응이 뒤바뀌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때.

“우리 아가씨, 정말 대단하시지 않나요?”

누군가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노라였다.

“사업 수완도 수완이지만, 사람이 귀한 줄을 아세요.”

노라는 뿌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토니오 남매를 어찌나 살뜰하게 챙겨 주시던지, 제가 다 감동받았다니까요?”

“그, 노라?”

“새 집도 구해 주고, 계약 또한 어찌나 깔끔한지요! 기본급 지급에, 위인전과 캐릭터 상품 관련 인세 배분까지…….”

노라는 손가락까지 꼽아 가며 줄줄이 말을 이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기요, 너무 내 얼굴에 노골적으로 금칠해 주는 것 아닌가요?

“자, 잠깐만. 굳이 그렇게 설명해 줄 필요는 없잖아?”

그러자 노라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왜요? 우리 아가씨께서 이렇게 대단하신 분인데, 당연히 1황자 전하께도 알려 드려야지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 노라인데.

어째서 아빠들을 대하는 듯한 기시감이 드는 걸까?

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라키도 지루할 거 같고.”

“나 안 지루한데?”

내 필사의 항변은, 라키어스의 어리둥절한 목소리에 단번에 가로막혔다.

“오히려 노라가 이렇게 설명해 줘서 좋은걸.”

“…….”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라키어스는 무척 진지한 얼굴이었다.

“티티 넌,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어떡해, 쟤 진심인가 봐…….

나는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손발 잘 붙어 있지?

오그라들다 못해 사라진 건 아니지?

“그렇죠? 1황자 전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럼. 그래서 티티가 뭘 더 했는데?”

“아, 그렇지. 안토니오가 혼자 고생하지 않도록, 안토니오 휘하의 보조 작가들도 구해 주셨어요!”

“그래? 보조 작가라니, 세심하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노라가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아가씨, 한 번 서점에 가 보지 않으시겠어요?”

“서점은 왜?”

“왜긴요, 오늘은 위인전이 서점에 깔린 첫날이잖아요!”

노라는 무척 신이 난 기색이었다.

다만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으음, 그렇기는 한데.”

데록데록 눈동자만 굴리던 내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아직까지 서점 측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잖아?”

“네?”

순간 노라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나는 시무룩한 기색을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로 책 판매가 잘 되고 있다면, 이미 내게 연락이 왔어야 하는 거 아냐?”

내 질문에, 노라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이걸 먼저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응? 뭘?”

“방금 전에 연락이 왔어요. 아가씨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요.”

“그, 그게 정말이야?”

나는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노라가 흡족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이미 품절된 책도 많아서 새로 인쇄를 들어가고 있대요.”

“그, 농담 아니지? 나 심장 떨어질 것 같은데.”

“아가씨께서 이번 일에 얼마나 신경을 쓰셨는지 아는데, 설마 그러려고요.”

노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이걸 말씀드리려고 아가씨를 찾아뵌 건데, 하필 대화에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짧게 혀를 찬 노라가 재차 나를 채근했다.

“그러니까 얼른 가 봐요. 네?”

“으, 응.”

나는 얼떨결에 몸을 일으키다 말고, 라키어스를 돌아보았다.

“같이 가자, 라키.”

“응? 나도?”

라키어스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네가 조언을 해 줘서, 나도 이번 일을 진행할 수 있었는걸?”

진심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특히 캐릭터 스티커를 제작하기로 한 건 오로지 네 덕이야. 그러니까 결과도 같이 봐야지. 안 그래?”

“…….”

내 대답에, 라키어스는 어쩐지 먹먹한 얼굴이 되었다.

그 후.

“……너는 정말.”

한숨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왜?”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라키어스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라키어스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항상 고맙다고.”

갑자기 저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람?

더 캐물어 보고 싶었으나, 내 질문보다 라키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빨랐다.

“가자, 티티.”

흠,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만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라키어스의 표정이 꽤나 밝은 것을 보면 내가 딱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는 듯하니.

“응!”

나는 냉큼 라키어스의 손을 맞잡았다.

* * *

“……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타티아나는 드물게 놀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점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으니까.

“엄마, 나 지크프리트 위인전!”

“나도, 나도!”

아이들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목청을 높여 떼를 쓰고.

“위인전 전질을 사러 왔는데요.”

“키리오스 전기는 없나요?”

“우리 아이가 꼭 세자르 전기는 사 와야만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아, 밀지 말아요. 제가 먼저 줄을 섰다고요!”

부모들까지 아우성이었다.

“지금은 세 용사의 전기들은 완판되었습니다. 재고가 들어오는 즉시 안내해 드릴 테니…….”

서점 직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손님들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아, 그리고 용사 스티커? 책을 사면 그걸 준다던데요.”

“우리 애가 꼭 받아다 달라고 했어요.”

“이 스티커 말고 다른 건 없나요?”

라키어스가 이채 서린 눈빛으로 타티아나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티티는 정말 대단해.’

점착 메모지도, 스티커도, 만화도.

여태까지 존재한 적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눈앞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호감을 품고 있지 않은가.

“오를레앙 공녀님?”

때마침 누군가가 타티아나를 아는 척했다.

뒤를 돌아본 타티아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안토니오!”

하늘색 시선 끝에는 키가 멀쑥하게 큰 소년, 그리고 조그마한 소녀가 서 있었다.

생김새를 쏙 빼닮은 것을 보아하니, 딱 봐도 남매였다.

두 남매가 보호자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이쪽으로 걸어왔다.

“뭐야, 너희들도 반응을 살펴보러 온 거야?”

타티아나가 두 남매를 반겼다.

‘안토니오.’

그리고 라키어스는 타티아나가 친밀하게 불렀던 그 이름을 곱씹었다.

‘안토니오라 하면…… 저 만화 위인전을 그렸다는 사람이었지?’

휘하 보조 작가들이 배경 같은 건 도와준다고 하지만.

인물만큼은 무조건 안토니오가 그린다고 들었다.

그리고 스티커 작업에 들어가는 캐릭터화도 모조리 안토니오가 맡아서 한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공녀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안토니오는 타티아나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조아려 보였다.

“아냐,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안토니오의 작화 덕택이야.”

타티아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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