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59)화 (60/163)

<59화>

“안토니오야말로 정말 고생 많았어! 이쪽은 여동생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공녀님.”

안토니오보다 두어 살 어려 보이는 소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녀님께서는 정말…… 저희의 은인이세요.”

“에이, 서로서로 돕는 거지.”

타티아나가 손사래를 쳤다.

“나도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받았는걸. 나야말로 고마워.”

“공녀님…….”

안토니오의 여동생은 뭉클한 얼굴로 타티아나를 바라보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로요.”

안토니오는 입술을 꾹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편 그 화기애애한 모습을 바라보는 라키어스는…….

‘……어째 자꾸만 경쟁자가 늘어나는 기분인걸.’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유치하게 굴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타티아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자꾸만 초조해하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그래도…… 티티는 티티뿐인 걸.’

별것도 아니었던 조언을 기억해 주고, ‘네 덕이었다’라고 말하며 웃어 주는 사람.

오로지 타티아나뿐이었다.

“…….”

마치 수렁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타티아나의 다정함은 마치, 만물에 공평하게 뿌려지는 햇빛과도 같아서.

더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데 그때.

‘응?’

라키어스는 진열되어 있는 만화 위인전들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시어도어 대왕>

‘잠깐, 이 사람은…….’

붉은 눈이 조금 커졌다.

카롤링거의 건국왕이자, 유일하게 대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왕이었다.

전설에 따르자면 별의 인도를 받고 카롤링거의 옛 수도에 도착하여, 카롤링거 왕국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카롤링거 땅은 수시로 마족들이 침입해 왔었는데, 시어도어 대왕은 오랜 사투 끝에 마족들을 완전히 몰아냈다고.

그리고 그 옆에 진열된 책은…….

<알렉산드로 3세>

순간 라키어스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외조부님.’

알렉산드로 3세.

라키어스의 외할아버지이자, 카롤링거의 마지막 왕.

알렉산드로 3세는 카롤링거를 마족에게서 끝까지 지키다가 전사했다.

다만 자신이 전사했을 시의 미래를 대비하여, 그는 하나뿐인 딸을 데카르트 제국의 황후로 보냈다.

카롤링거가 마족에 대항하여 전 인류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 기억의 증표로 국혼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하여 데카르트 황제가, 카롤링거 국민의 안전까지 보장해 주기를 바랐지만…….

“라키, 무엇을 그렇게…… 아.”

때마침 라키어스 근처로 걸어오던 타티아나가 발길을 멈추었다.

라키어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위인들은 모두 네가 선정했다고 했지?”

“응, 맞아.”

타티아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시어도어 대왕과, 내 외할아버지도…….”

“내가 선정한 거야.”

“…….”

라키어스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 타티아나가 출시한 위인전은 총 다섯 종이었다.

타티아나의 양부인 세 용사가 포함된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고.

남은 인원은 대충, 제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유명인들을 주로 선정했으려니 짐작했었는데.

‘사실 티티 입장에서는 굳이 카롤링거의 위인까지 넣어줄 필요도 없었을 텐데.’

현 황실에서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사실 제국에서는 카롤링거에 대해 잘 모르잖아?”

고작해야 전 황후의 출신국이자, 마족에 의해 멸망당한 국가라는 것만을 알 뿐.

카롤링거의 왕족들이 대대로 자신들의 국민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마족들이 침공했을 때, 국왕부터 분연히 일어나 왕국민들을 지키다 산화했다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데카르트 황실에서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마족에게 끝까지 항전하다 죽은 카롤링거와, 세 용사에게 인류를 보호하는 것을 떠맡긴 황실.

그 자체로 너무나도 차이가 나니까.

“이렇게라도…… 제국민들이 카롤링거의 희생을 조금 알아줬으면 좋겠어서.”

타티아나가 배시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국에 마족들이 들이닥치지 못한 건, 모두 카롤링거 덕택이니까.”

“……티티.”

“그 빚을 갚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알기는 해야 하잖아.”

처음이었다.

카롤링거에게 이만큼의 존중을, 존경을 보내 주는 사람은.

타티아나가 살며시 라키어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카롤링거의 영웅들도 선정했는데…… 혹시 내가 괜한 일을 한 건가?”

“아니.”

라키어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고마워.”

또렷하게, 흔들리지 않고 말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목이 메어 왔다.

그래서일까.

힘겹게 입 밖으로 밀어낸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카롤링거의 사람들을 잊지 않아 줘서.”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타티아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쏘아붙였다.

“너를 만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카롤링거에게 감사할 이유는 차고도 넘쳐.”

“…….”

“넌 내 제일 친한 친구인걸.”

“아가씨!”

때마침 노라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너무 많네요. 다 둘러보셨으면 이만 타운하우스로 돌아갈까요?”

“응,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타티아나가 당연하다는 듯이 라키어스의 손을 맞잡았다.

“돌아가는 길에 맛있는 거 먹자. 네가 조언해 준 것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쏠게.”

조막만한 손 너머로 번져오는 온기가 따스하다.

라키어스는 저도 모르게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래서.’

어쩐지 울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어서.

라키어스는 일부러 더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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