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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마왕님은 용사 아빠들이 너무 귀찮아 (63)화 (64/163)

<63화>

“그야…….”

지크프리트와의 단절된 관계가 마음에 걸려서, 어떻게든 다시 연을 이어 보려고 그런 거지만.

그를 솔직히 고해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답할 말이 궁해진 백작 대부인이 황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그, 그런데. 제도에는 웬일로 방문하신 거예요? 몇 번이나 오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공작령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시더니.”

그 질문에 노공작의 표정이 흐려졌다.

무언가 깊은 고민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다.”

노공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알겠어요.”

어차피 불편한 부분을 지적당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노공작과 대화를 나누어서 혼만 나기보다는, 차라리 자리를 피하는 쪽이 나을 터.

“저는 이만 나가 볼게요.”

그렇게 백작 대부인이 꽁무니를 뺀 후.

노공작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지크프리트.’

마음 깊이 사랑했던 아내가 남긴 유일한 아들.

그래서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순순했던 지크프리트는, 처음으로 노공작의 말을 거역했다.

‘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존중해 주시지 않는군요.’

처음이었다.

지크프리트가 그렇게 실망스러운 눈초리로 노공작을 바라보았던 건.

‘됐습니다. 아버지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어요.’

그 말을 끝으로, 지크프리트는 검 한 자루만을 쥐고 마족과의 전쟁에 몸을 던졌고.

훌륭한 동료들을 만나서 온갖 전공을 쌓아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섯 마왕까지 토벌해 냈다.

‘……인류의 영웅이라.’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칭호를 얻는 과정에서, 지크프리트가 겪었을 수많은 고난들을 떠올리면.

아버지로서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갑자기 양녀를 들였다니.

‘타티아나라고 했던가.’

듣자하니 마계에서 핍박받던 아이를 데려왔다고.

뭐, 어렸을 적부터 동정심이 많던 성격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한.

‘아이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겠지.’

지크프리트는 물론이고, 세자르와 키리오스까지도 아이에 대해 별다른 위험한 점을 느끼지는 못한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상황이 영 수상해.’

사실 노공작은 지크프리트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

처음에는 편지로 상황을 전할까 고민했으나, 문제는 그들 부자의 관계였다.

지크프리트가 마족을 토벌하러 뛰쳐나간 이래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서로 연락을 취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살갑게 편지를 나누기에는 역시 멋쩍었다.

그래서 기베르티 백작 대부인의 초대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직접 제도까지 올라온 건데.

‘만약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노공작은 고개를 내저어 애써 생각을 털어냈다.

‘아니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으니까.’

그러나 노공작의 이마에 새겨진 주름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깊어지기만 할 뿐.

* * *

그리하여 약속 당일.

나는 지크프리트와 함께 기베르티의 타운하우스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오를레앙 공작님. 이렇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베르티 백작 대부인을 필두로.

기베르티 백작 부부와, 백작 부부 슬하의 두 남매가 우리를 맞이했다.

지크프리트에게는 사뭇 살갑게 인사를 건넨 백작 대부인이, 나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공녀님도요.”

아무래도 기베르티 백작 대부인은, 모처럼 지크프리트와 관계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은 듯하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훨씬 더 정중했다.

꼬박꼬박 공녀님이라고 불러주다니, 장족의 발전이네.

“안녕하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기베르티 일가의 세 어른에게 밝게 인사를 건넨 후.

나는 두 남매 쪽을 바라보았다.

저쪽이 내게 초대장을 보냈던 리즈벳, 그 옆은 기베르티 소백작인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두 남매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소백작의 이름은 볼프렌이라고 했던가.’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다소 심술궂어 보이는 외양이 쏙 빼닮았다.

그리고 그 곁에서, 지크프리트도 한 중년 신사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그래.”

아, 저 사람이 오를레앙 노공작님이신가?

중후한 분위기를 가진,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였다.

훤칠한 외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젊었을 적에는 여러 레이디들을 울렸을 것 같다.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와 금빛 눈동자는 지크프리트를 쏙 빼닮았다.

아니지, 저쪽이 아버지니까.

지크프리트가 노공작님을 닮은 거겠지?

“…….”

“…….”

한편 지크프리트와 노공작은 나란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찌나 거북한 분위기인지, 보는 내가 숨이 막힐 정도다.

‘에효, 정말.’

나는 지크프리트 곁에서 고개를 쏙 내밀며, 해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노공작님! 타티아나 폰 오를레앙입니다!”

순간 백작 대부인과 백작 부부는 물론이고, 소백작과 백작영애까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날 노려보았다.

아마 내가 ‘오를레앙’이라는 성으로 나 자신을 소개해서 그런 거겠지?

하기야, 내가 정식으로 양녀가 된 이상.

기베르티 일가에게 오를레앙 공작위가 넘어갈 일은 더더욱 요원해졌을 테니까.

“이 애가…… 네가 입양했다는 아이냐?”

한편 노공작님께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셨다.

동시에 지크프리트가 내 어깨를 감쌌다.

“예, 제 딸입니다.”

그러고는 경계의 눈초리로 노공작님을 쏘아본다.

“아버지가 무어라 하셔도 타티아나가 제 딸인 건 바뀌지 않습니다.”

“뭐라?”

“그러니 절 설득할 생각이라면 그만두십시오.”

아니, 왜 갑자기 급발진하고 그러세요?!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솔직히 노공작님 입장에서는 내가 맘에 안 들 수밖에 없지 않아?

제국 최고 명문가의 가주가, 갑자기 출신조차 모르는 고아 소녀를 입양한 것이나 다름없는걸.

노공작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헉, 화내시려나?’

내가 꼴깍 마른침을 삼키던 그때.

“아니, 누가 저 아이가 네 딸이 아니라더냐?”

……어라?

나는 두 눈이 동그랗게 떴다.

‘잠깐만, 지금 날 지크프리트의 딸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거야?’

노공작님은 계속해서 성을 내셨다.

“입양을 했으면 당연히 네 딸이지! 왜 날 그렇게 편협한 사람 취급을 하느냐?”

“…….”

순간 지크프리트의 눈에 희미하게 놀라움이 서렸다.

“됐다, 이 배은망덕한 것!”

노공작이 성질을 내며 휙 돌아서려다가,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헉.’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양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두 분, 혹시 지금 싸우시는 거예요?”

“…….”

“…….”

순간 두 부자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련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혹시 사이가 안 좋으신 거예요?”

“타티아나, 괜찮다. 걱정할 필요 없어.”

지크프리트는 당장에 화를 억누르며 나를 내려다보았고,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노공작 또한 짓눌린 목소리로 말을 거들었다.

아마도 아이 앞에서는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듯한데.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두 사람, 닮았네.’

어린아이를 보호하려는 저 사고방식 자체가 꽤 닮았다.

누가 뭐래도 두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 건 맞나 보다.

때마침 두 사람의 험악한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기베르티 백작대부인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 일단 거실로 이동할까요? 다들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가장 연장자인 노공작님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다 함께 백작가의 타운하우스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보호자로 따라온 어른들은 다른 방에서 따로 담소를 나누러 떠나고.

나는 기베르티 백작영애와 함께 티룸으로 향했다.

다만 티룸에 도착하기까지 5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내게는 아주 고역이었다.

‘어휴, 정말.’

나는 커다랗게 한숨을 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억눌렀다.

‘귀에서 피 날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기베르티 백작영애가 오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고 있었으니까.

“이번에 새로 마차를 샀는데요, 그 마차가 얼마나 화려한지…….”

“이 그림 예쁘죠? 아주 유명한 화가가 그린 거예요! 프란시스코라고 아실까요?”

“최근에 제가 드레스를 한 벌 맞췄거든요. 최고급 레이스를 썼더니 가격이 좀 나가더라고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런저런 자랑과 잘난 척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저는 엄선된 레이디만을 우리 모임에 초대한답니다.”

“아, 그런가요?”

“당연하죠. 레이디들은 모두 제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서 안달인걸요.”

“네, 그렇군요.”

나는 영혼 없이 대답했다.

“뭐, 공녀님께서는 아직까지 이런 사교모임에는 참석한 적 없으시겠지만…….”

나를 위아래로 뜯어본 기베르티 백작영애가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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